'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에 응원을 보내는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에 응원을 보내는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 제주4.3 관련 장‧단편 총 6편을 상영한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가 기획 단계에서 제일 먼저 접촉한 극장이 바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였다.

영화제든 기획전 특별 상영이든, 아무리 OTT 시대라 할지라도 영화 상영의 첫 번째 조건이 바로 극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8년 제주4.3 70주년 당시 '제주 4.3 제70주년 특별상영: 끝나지 않은 세월' 기획전을 개최하고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를 포함해 6편의 4.3 영화를 상영했던 인디스페이스는 최적의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침 인디스페이스는 지난달 3월 7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새 출발한 상태였다. 2달 여 동안 상영이 밀린 한국 독립예술영화 개봉작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는 인디스페이스가 재개관 이후 나름 첫 번째 외부 기획전 성격의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에 이름과 공간을 내줬다.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과 영화제 기획이 한창이던 지난달 17일 만나 '4.3과 친구들 영화제' 및 인디스페이스 재개관, 독립영화계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 관장은 지난 2일 '4.3과 친구들 영화제' 단편 섹션 <메이.제주.데이> <헛묘>, <뼈> 상영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기도 했다. 
 
 지난 2일 4.3과 친구들 영화제 단편 섹션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좌).

지난 2일 4.3과 친구들 영화제 단편 섹션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좌). ⓒ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4.3과 친구들 영화제 함께한 인디스페이스

"우리는 제안이 들어와서 참 좋았다. 4.16도 같은 시기에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들이 참 많다는 반증인데, 어쩌면 우울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제주4.3 70주년 때도 인디스페이스는 자발적으로 관련 기획전을 준비하고 4.3을 기억하는 관객들과 만났다. 서울극장 시절이었다. 지금보다 4.3의 전국화나 대중화가 진척됐지 않았던 4년 전, 독립영화전용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셈이다. 이번 영화제를 흔쾌히 수락한 의미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인디스페이스의 존재 필요성이 확인되는 상영인 것 같다. 이런 행사는 일반 관객들보다는 관련 사회문제 피해자들을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런 피해자들을 보면 문화적인 뭔가를 즐기지 못하고 사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한국에서 국가범죄 피해자들은 부유하지 않고 여유가 없다. 그들이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것이 문화생활이다. 피해자들이나 관련된 분들이 평소에 못 보던 영화들을 좋은 기회에 극장에 가서 보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많이들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

단편 섹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원 관장은 4.3 관련 독립예술 영화의 현황, <헛묘>를 포함해 제주 독립 영화 및 <끝나지 않는 세월> 복원 등의 중요성, 4.3 피해자들의 증언을 그림 치료와 연결 지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로 결합시킨 <메이.제주.데이>의 보편성 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런 원 관장에게 따로 재개관 기념 상영회 등을 마련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실제 재개관 형식은 아니니까. 처음 문 여는 것도 아니고 이전해서 문을 여는 건데. 처음엔 이사 와서 특별 프로그램 같은 걸 해 보자 생각도 해 봤는데, 2달 동안 극장을 못 열었으니까 개봉작들을 빨리 상영하는 게 더 시급하다 싶었다. 오픈한다고 하니까 상영작 쪽에서 행사 요청이나 대관 요청이 오더라. 그걸 빨리하고 싶었다. 유명한 작품만 개봉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간 독립영화가 관객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이 됐고, 더 많은 상영 기회를 주는 게 좋겠다 싶었지."
 
 지난 3월 7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 재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홍보 포스터.

지난 3월 7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 재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홍보 포스터. ⓒ 인디스페이스

 
종로에 이은 홍대 시대

인디스페이스는 종로 서울극장 시대를 마치고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시대를 맞았다. 서울아트시네마와 나란히 독립예술 영화 관객들을 맞던 종로와 달리 한때 '인디 문화'의 상징과도 같던 홍대입구에서 새 출발을 다짐하는 중이다. 인디스페이스가 멀티플렉스 안에 '입주'한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멀티플렉스 안에 독립영화전용관이 들어가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느낌도 있다. 부산이나 전주처럼 국제영화제에 가면 독립영화도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잖나. 생각보다 스크린도 크고. 개인적으론, '개봉할 때는 그 정도 스크린에서 독립영화를 못 보는 거지?'란 생각을 했었다.

멀티플렉스들 내 예술영화전용관도 규모가 대체로 작고. 감독들의 경우, 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볼 수 있는 환경과 조건들은 일반 상영관에서 왜 어려운가 아쉬워하더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은 인디스페이스가 입주했던 상영관 중에서 스크린이 제일 크다. 상영관 환경에 대해 서울극장 시절부터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점은 좋은 것 같다."


그러면서 원 관장은 예전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가 동교동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렸다(현재 한독협은 아현동에 위치해 있다). 인디의 상징과도 같던 그때 그 시절 '홍대 앞'을 회고하는 한편 젊음의 거리로 여전한 홍대의 위상과 독립예술 영화 관객층과의 접점을 의식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홍대는 인디의 상징과도 같지 않았나. 개인적으론,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인디스페이스가 계속 만나려고 하는 관객층들이 홍대를 중심으로 많이 모이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고. 지난번 대선 때 마지막 유세를 민주당과 정의당이 다 한 것도 같은 맥락 아니겠나. 민주당은 박지현씨 덕분에 급하게 잡은 것 같지만. 2030 여성들, 사회 변화를 원하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홍대라는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 유세 장소를 그렇게 잡은 것이겠지. 저희가 계속 관심을 가져왔고,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대상이 여성 관객들인데 잘 왔구나 싶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건 없지만(웃음)."

교통이든 독립영화관 분포 지형이든, "홍대가 최선의 선택"이었단다. 2007년 11월 처음 문을 연 인디스페이스 역사를 통틀어 상영 조건도 가장 좋다고 했다. 3시간 무료 주차도 그런 좋은 환경 중 하나라는 원 관장. 2년 후 재계약을 해야 하는 기본 조건은 다름이 없지만, 그는 여러모로 현재 재개관 조건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향후 홍대입구에 인디스페이스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 숙제"라는 전망도 잊지 않았다.

"우린 아트시네마가 아니라 상영 포맷이나 환경이 워낙 다르지 않나. 아트시네마는 극장이라기보다는 전시관이나 미술관 같은 느낌이 더 강하고. 우리는 개봉관이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영화를 틀어야 한다. 인디스페이스는 사람들이 많이 다닐만한 곳에, 다른 영화도 상영하는 곳에 자리하는 게 더 좋은 거 같다."
 
 지난 3월 7일 재개관한 인디스페이스 로비 풍경.

지난 3월 7일 재개관한 인디스페이스 로비 풍경. ⓒ 인디스페이스

 
코로나19 시대, 독립영화전용관으로 살아남기

원 관장은 이후 재개관과 함께 관객 멤버십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예매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꽤나 공들여 설명했다. 기존 후원회원과 다른 관객회원(멤버십)의 개발에 새로운 예매 시스템이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이었다.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 강릉 신영 극장 등 몇몇이 같은 시스템을 이용 중이라고.

그러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과거 시행하던 독립영화 예매 시스템이 종료된 데 대한 아쉬움으로까지 대화가 발전됐다. 과거 영진위가 퇴행을 거듭하던 시기, 고민이 후퇴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결국 "지속가능한 방식의 사업 설계"가 요원해지면서 민간이 예매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원 관장은 "일단 예산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부연했다.

"작년 관련 (예매 시스템 관련) 영진위 사업 예산이 남은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할 건지 설계를 잘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사업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은데 간단하게 온라인 예매 시스템 만들고 하는 거면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한다면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갈 거다. 처음에 사이트를 만들면 유지하고 홍보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게 더 어려운 일일 거다. 이런 사업을 공적으로 하는 게 장단점이 확실하다. 잘 한 예가 많지 않기도 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극장 관람 문화를 낯선 것으로 만들었다. 벌써 2년이 훌쩍 흘렀다. 독립예술영화 관객이라고 코로나19를 피해갔을 리 만무한 법. 그렇다면 인디스페이스는 이러한 재난 상황을 어떻게 버텼을까.

"방역을 진짜 열심히 했다. 재작년 2월 코로나19가 처음 막 생겼을 때, 예술영화관의 한 축을 차지하는 지자체 영화관이 거의 다 선제적으로 운영을 준당했다. 방역수칙 때문에. 당시 개봉 영화가 갈 곳이 없어진 거다. 인디스페이스 내부에서도 어떻게 할까 회의를 했다. 우리 설립 목적이 상영할 기회가 없는 영화들에게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안전하게 상영하고 관람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거다. 나름대로 복잡한 방역 수칙을 만들었다. 좌석간 거리두기라거나 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때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게 하는 등 수칙 내용들을 정부보다 선제적으로 적용했다.

관객과의 대화도 이 정도면 안전하다 싶을 때 진행하는 방식으로 휴관 없이 상영을 이어갔다. 원래는 하루 5회, 6회 상영을 했는데 사이사이 상영관 소독하고 환기시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일 4회 상영으로 횟수를 조정해서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가장 큰 걱정은 티켓 팔고 극장 운영하는 스태프들이 누굴 만날 지 모르는 거잖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는 그들이 확진될 수 있으니 걱정이었는데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서 운영했다."


그 2년이란 시간은 독립예술영화 관객들에게 인디스페이스의 여전한 역할을 확인 받는 여정이기도 했다. 2019년 말 입장료를 천원 인상한 것도 의도치 않게 지난 2년을 버티는 버팀목이 됐다. 실제 축소된 관객 수와 비교해 매출이 적게 줄었다. 코로나19 방역도, 독립영화전용관을 지킨다는 목표를 봐도 선방한 게 틀림없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앞둔 지금, 홍대 시대를 연 인디스페이스의 밝은 미래를 전망해 봐도 좋을 듯 싶다.

"오히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민간 운영 독립예술영화관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했던 것 같다. 지자체 영화관에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운영의 책임성 같은 것들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존재 자체가 긍정적인 부분은 있지만 지자체가 공공시설을 운영하는 논리나 재정이나 예산 구조가 다르고 운영 방식도 이질적인 부분이 있어서 책임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오히려 현장에선 영화관이 필요했다. 반면 지자체는 문화예술 활동의 중요성보다는 관객의 가치에만 집중하면서 아예 3년간 문을 닫은 거다. 영진위 지원을 받고도 상영관을 절반 이하의 날짜로 운영하는 건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책임 있게 극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디스페이스나 대구 오오극장, 신영 극장 같은 방식처럼 민간에서 영리 목적이 아니면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사회와 독립영화 시스템을 위해 기여하는 영화관들을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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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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