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3 06:12최종 업데이트 22.04.1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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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세계에 대한 감각을 뒤흔들고 있다. 지금부터의 세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적어도 냉전체제 해체 이후의 30년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적어도 하나의 제도와 규범에 의해 규율되는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졌다.

냉전 체제의 해체 이후에도 전쟁 그리고 그것이 촉발한 인도적 재앙이 적지 않게 발생했는데 유독 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의 세계에 대한 감각에 이처럼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번 전쟁은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고, 무력충돌을 유럽 전체로 확산시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중 전략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전쟁이 군사, 경제, 문화 등 세계질서의 모든 영역에서 균열을 더 뚜렷하게 만들고 있다.

신냉전이 아니라 대혼돈

이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세계질서를 신냉전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치나 제도의 차이가 대국 사이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대립을 강화시키는 상황은 냉전 때와 유사하지만 신냉전 질서가 구축됐다고 단정할 상황은 아니다.

냉전 체제는 국지전의 출현은 막지 못했지만 적어도 대국 사이의 직접적 충돌을 방지하는 다양한 장치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약 30년간 세계질서로 유지될 수 있었다.

지금은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국 간 갈등이 전면화하고 있다. 러시아 지도자는 유럽에 대한 핵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고, 미국 지도자는 러시아의 정권교체를 추진할 것이라는 신호를 발신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도 군비경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타이완 해협의 군사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미국 하원 의장 낸시 팰로시가 타이완 방문을 추진하다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취소됐는데, 만약 이 계획이 실행됐으면 타이완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군인과 소방관들이 3월 1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파괴된 건물을 수색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상황이 이러함에도 미-러 간, 미-중 간 군사채널은 거의 단절되어 있다. 즉 현재 대국들 사이의 관계는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다. 냉전이 아니라 대규모 열전이 출현할 수도 있다.

지금은 기존 질서가 붕괴하면서 불확실성과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이다. 세계 체제론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990년대 초반 냉전 해체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독특한 전망을 한 바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더 좋은 세계 질서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며 이행기에 혼돈이나 무질서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는데, 현재 상황은 이에 더 가깝다.

재앙적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새로운 협력적 질서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냉전이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현재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혼돈은 여러 위험을 낳는다. 가장 큰 위험이 대규모 전쟁이다. 러시아는 합의된 국경선의 변경을 무력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쟁으로 발생한 문제에 주요 책임이 있다. 국가 간 갈등을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냉전 해체의 이면

문제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외교와 협상이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갈등 상황에서 유화적인 태도는 유약하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비판에 민감해서 대외적으로 원칙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현재의 위기도 이런 타성적 태도가 국제 관계를 지배한 결과다.

국제 관계는 외교와 협상 없이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소환되는 두 개의 선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첫째는 1975년 8월 1일 미국, 캐나다, 소련 그리고 32개 유럽 국가들이 서명한 헬싱키 협정이다. 냉전 체제의 해체는 흔히 레이건 행정부의 대소 강경책이 만들어낸 성과로 기억한다. 그러나 과연 냉전 체제의 평화적 해체가 힘의 외교로 가능했을까?

포드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헬싱키 협정이 이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이 협정은 당시 유럽의 국경선을 승인하는 대신 경제·인권 등의 영역에서 서유럽과 동유럽의 교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합의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지배를 인정한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협정에 기초한 동서 간 교류 덕분에 유럽에서 냉전 체제의 평화적 해체가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트로스트시아네츠 마을에서 청소년들이 부서진 러시아 탱크를 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둘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제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깝게 갔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다. 이 사태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당시 알려졌던 것과는 다른 사실들이 밝혀졌다.

우선 소련의 팽창주의만이 아니라 케네디 행정부가 1961년 유럽(터키, 이탈리아)에 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한 것도 이 사태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이 위기의 해결도 케네디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에 소련이 물러선 것이 아니라 막후 협상과 타협(쿠바에 배치된 소련 미사일 철수와 터키에 배치된 미국 미사일 철수)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두 사례에서 우리는 냉전 시기에도 외교와 협상이 전쟁을 막는 데, 나아가 장기적으로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선택을 복기한다면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문제는 전쟁에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진행된 나토의 동진이 유럽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은 러시아의 주장만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계속 제기됐다.

군사동맹 가입 여부는 개별 국가의 주권 사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나토의 동진이 계속 추진됐는데, 군사동맹이 다른 행위자에게는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은 국제정치의 상식이다. 우크라이나로서도 군사 영역보다 경제나 사회를 중심으로 다른 유럽국가와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지난 3월 29일 터키에서 진행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협상에서 우크라이나 측은 서면으로 중립국·비핵 등의 내용을 담은 협상안을 러시아에 전달했다. 물론 중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적 안전보장 방안,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 문제와 관련한 이견은 여전히 크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러시아 병합, 돈바스 지역 두 개 공화국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는 영토 주권에 대한 양보를 거부하면서 크림 반도 문제의 해결을 15년간 미루자는 뜻을 전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역설적으로 외교와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비극의 발생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적대와 대립을 확대하게 된다면 우크라이나의 평화가 요원한 것은 물론이고 세계평화도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드리운 그림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임박했다는 예측은 많았다. 그러나 북한은 예상과 달리 위성 발사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ICBM을 발사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중국이나 러시아는 ICBM 발사와 관련한 추가제재 논의에 더 소극적이 됐고, 미국도 이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한반도 상황이 악화하는 원인에 대한 중·러와 미국 사이의 인식 차이도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형 ICBM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찾아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중·러는 북한이 2017년 11월 이후 핵 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중지한 것에 대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고 있다. 북한은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핵 실험과 대륙간 탄도 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을 밝힌 바 있다. 미국 등은 이를 ' ICBM·핵 모라토리엄'이라고 지칭했다.

러시아와 북한은 군사협력을 더 강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선거 공약 등을 고려하면 한국이 이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할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즉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북의 핵·미사일 능력 증가에 제어장치가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예상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혹은 악순환이 초래할 수 있는 파멸적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이 선제적으로 취한 ICBM·핵 모라토리엄에 상응하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대화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이러한 교착상태가 북한의 ICBM 모라토리엄 폐기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신냉전적 대립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중 신냉전"이라는 표현으로 국제정세를 설명한 바 있고, 지난 3월 24일 ICBM 발사 실험을 참관한 이후에는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반도는 냉전이 시작됐다고 하는 시기에 열전(6.25 전쟁)을 거쳤다. 미와 중·러의 신냉전이 한반도에서는 열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북한이 신냉전 구도를 활용하기도 하면서 한계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냉전 구도 아래서는 북한이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북 정책에 있어 다른 경로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ICBM 모라토리엄 폐기는 이미 소진된 협상카드를 되살리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ICBM 모라토리엄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교환하는 협상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형 ICBM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찾아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핵 축소에 상응하는 조치 필요

물론 한반도 비핵화는 과거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보수정부의 등장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보수정부 아래에서 남북관계가 진전됐던 사례가 없지 않다. 한반도에서 군사긴장이 고조되고 전쟁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은 어떤 정권에도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새 정부는 무엇보다 북한의 정책으로만 제시됐던(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정책적 결정에 의해 취소될 수 있는) 핵 실험과 ICBM 시험 중지를 구속력이 있는 국제합의로 제도화하고, 그에 대해 제재 완화 등을 포함한 상응조치를 합의하는 협상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혼돈의 세계 속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점진적으로 축소해가는 과정에 진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북한에 상응하는 조치를 제공해야 한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해제'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는데 미국은 다른 곳의 우라늄 농축시설 등에 대한 우려를 근거로 거부했다. 이는 과거 제네바 합의 붕괴 때와 같이 완전하고 일방적 승리를 추구하는 논리가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지한 외교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 가능성도 높아진다. 어떤 순간에도 무력충돌을 막고 그 위험성을 낮추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에는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려워지더라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남주 / 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이남주

 

* 필자소개 : 이 글을 쓴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정치를 전공했으며 한반도 평화 관련 연구와 활동도 하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실행위원으로 있다. 또한 계간 <창작과비평> 주간을 맡고 있다.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중국 국가전략의 변화와 한중 관계에 대한 함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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