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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시절의 함세웅.
 신학생 시절의 함세웅.
ⓒ 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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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인 남자는 특별한 장애가 있거나 특별한 배경이 없는 한 누구나 입영하여 군복무를 하게 된다. 함세웅은 21세가 되는 1962년 2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헌병으로 차출되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영천의 헌병학교에 차출되어 갔어요. 거기서 매일 밤 4킬로미터씩 구보를 하니 너무 힘이 들었어요. 거기에다 이도 있고 빈대도 있고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모두 이겨냈습니다. 저는 군생활을 신학교의 연장이라 생각하면서 이겨냈는데, 그런 조금은 어두운 체험을 통해 모순된 사회가 있다는 걸 알고 고민하며 지냈어요. 그러다가 뜻밖에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 발령받았어요. 헌병이니까 수감자들 지키는 일이에요. 처음엔 경비과로 외곽 근무를 하다가 작업과에 배치 받아 서무 일을 했어요. (주석 7)

그가 대학생활과 군복무를 하던 시기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격변이 심한 격동기였다. 이승만이 물러나고 내각책임제 개헌과 총선에 의해 민주당이 집권했다. 민주당은 신구파가 분열하여 신민당이 창당되고 혁신계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내걸었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육군소장 박정희가 정권을 장악, 군사정권이 수립되었다. 함세웅은 군대 내의 각종 비리를 목격한다.

거기선 폐품을 태워 벽돌을 만들곤 했는데 그것을 파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사익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졸병이 보기에도 이런저런 부정이 너무 많았어요. 제가 직접 그런 일을 해야 할 때는 선임하사에게 "저는 신학생인데 이런 일엔 좀 빼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면 저를 헌병감실에 심부름을 보내고, 제가 갔다 온 사이에 자기네들끼리 다 처리하곤 했습니다. (주석 8)

부정비리가 만연한 군대에서 그는 신학도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면서 2년여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그는 후일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나중에 박정희ㆍ전두환 군사독재와 대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찰할 수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독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들이 군대라는 조직을 거쳐 왔기 때문이에요. 계급 높은 사람의 말은 무조건 진리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 불합리한 체제하에서 생각다운 생각도 못해보고, 거기에 몇 년 동안 아주 세뇌되어서 나오잖아요. 

사회에서 아무리 무리한 명령, 불합리한 모습을 봐도 '이보다 더한 군대에서도 내가 참았는데' 하면서 도전하기를 포기해버리잖아요. 그래서 독재가 가능하도록 길들여지는 데가 군대가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주석 9)

실제로 군사문화의 잔재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군사독재가 장기화되면서 문민전통의 오랜 선비문화가 천박한 군사문화로 바뀌어갔다. 

그가 제대하고 대학에 돌아왔을 즈음 박정희는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추진하여 학생ㆍ시민ㆍ야당의 저항을 받았다. 야당의 주도로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반대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1964년 6월 3일에는 1만여 명의 학생들이 광화문까지 진출, 굴욕외교 반대와 박정희 퇴진을 요구했다. 정부는 이날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 물리력으로 반대시위를 진압하기에 이르렀다. 

함세웅이 제대 후 복학한 신학대학은 이번에도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하여 학생들의 현실참여를 막았다.

우리는 바깥 세상에 엄두도 못 냈고요. 그러면 신학교에서 쫓겨나니까요. 그때 독재와 싸우는 대학생들을 보면서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생각했고요. 한일협정 반대 선언문은 신문에서나 접하고 저희는 시위현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지내면서 1965년 들어 유학을 준비했지요. (주석 10)

당시 신학대학은 학생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데 주력했다. 학생들에게 세 가지 원수로 마귀사탄, 육신, 세속을 3구(仇)라 칭하고 기도할 때마다 "3구를 물리치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천주교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의분에 넘쳐 밖으로 뛰쳐나갔다가는 퇴교를 당하게 되고, 결국 신부의 길을 잃게 되기 때문에 함세웅과 신학대생들은 4.19에 이어 이번에도 현실참여를 하지 못한 채 대학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주석
7> 앞의 책, 35쪽.
8> 앞의 책, 35쪽. 
9> 앞의 책, 36쪽.
10> 앞의 책, 3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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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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