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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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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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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래에 제시된 아이들 중에서 어떤 아이의 부모가 되어줄 수 있습니까?

① 어린 나이에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을 포기한 미혼부모의 자녀인 아동
② 알코올중독자인 아빠와 무기력한 엄마에 의해 학대 피해자로 살다가 중학교 2학년생이 되면서 가출하여 떠돌다가 쉼터로 들어온 청소년
③ 아내가 사라진 뒤 살길을 찾다 원양어선을 타게 된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돌봐줄 어른이 없는 한부모가정의 아동
④ 아빠는 중증지체장애, 엄마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서 양육이 거의 불가능한 가정의 아동
⑤ 사업체 부도 이후 아빠는 돌아가시고, 전업주부였던 엄마 혼자 빚을 갚으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가정의 아동
⑥ 부모 모두 사고로 사망하여 갑자기 보호자가 사라진 초등학생 형제
⑦ 파산, 실직, 빈곤, 폭력, 이혼과 재혼 등이 뒤섞이며 자녀 양육을 포기한 부모의 자녀인 아동

언뜻 보면 그럴 것 같은데, 깊이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정 현상도 그렇고, 그것을 대표하는 숫자도 그렇습니다. 2021년 보호대상아동의 숫자는 4000여 명이었습니다. 그해에 새로 발생한 보호대상아동의 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호대상아동이라는 것은 "출산한 부모가 더 이상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다른 누군가의 보호와 양육을 필요로 하게 된 아동"을 말합니다. 현행 아동복지법에서는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보호대상아동을 정의하는 위 문장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부모가 있으며, 둘째, 그 자녀를 대신 양육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고, 셋째, '더 이상'이라는 판단시점이 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주로 이 세 가지 의미들을 중심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첫 번째 의미를 파고들어갈 것입니다.

자신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심지어 상당 기간 양육해 온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태'란 무엇일까요?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면,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변의 보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유기, 부모의 사망, 빈곤, 이혼, 수감, 장애, 질병, 혼전 또는 혼외 출산, 그리고 학대 등입니다. 이것을 공식적으로는 '보호대상아동 발생원인'이라고 부릅니다.

얼핏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가 사망하거나 이혼하거나 가난하거나 교도소에 수감되었거나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어린 나이에 또는 혼인관계가 아닌 기혼남녀 사이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다면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울 테니 위탁가정이나 시설에 맡기거나 입양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나열한 이 원인들이 실제로 자신의 자녀에 대한 친권이나 양육권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나 국가에게 맡길만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보호대상아동이 발생하는 원인과 경로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이와 동일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이혼했거나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교도소에 수감되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자녀 양육을 포기하지 않는 부모가 대부분입니다.

둘째, 각각의 원인이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는 상당히 튼튼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도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정치적인 논쟁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가난하거나 열악한 처지에 놓인 개인과 가족들을 모두 구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도 그 자원을 활용해서 다양한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셋째, 설령 그것이 '지금은' 정당한 이유가 되더라도 영구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여러분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낳은 자녀를 포기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유를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태'라고 수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21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수행한 '보호대상아동 발생경로와 원가정 지원방안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이 기사와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즉 '보호대상아동이 발생하는 실제 원인과 경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답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호대상아동이 발생하는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며, 실제 보호대상아동이 아동보호서비스에 맡겨질 때까지 상당히 긴 기간과 절차를 거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 가지 원인만으로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양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친생부모가 모두 사망했거나 친생부모가 자신을 알리지 않은 채로 아동을 유기한 경우만을 예외로 볼 수 있습니다. 부모 중 한쪽이 사망한 것만으로는, 이혼한 것만으로는, 한쪽 부모가 중증 질환이나 장애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교도소에 수감된 것만으로는, 양쪽 부모가 있든 한부모 가정이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미혼부모의 출산 또는 혼외임신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심지어 심한 학대와 방임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양육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바로 양육할 수 없는 상태라는 판정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짧지 않은 기간에 스스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아동보호서비스제도가 그 부모의 신청을 받아들이고 보호대상아동으로 지정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전업주부였던 가정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일용직 건축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엄마와 미취학 아동인 남매만 남았습니다. '한부모가정'이 된 것입니다. 재해사망으로 인한 보상금, 각종 보험금 등을 받아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0년 간 경력단절 상태였던 엄마는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매는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올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어느 날 가슴에서 낯선 통증을 느낀 엄마는 병원에 갔다가 중증질환 진단을 받습니다. 더 이상 무리하게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하고 남은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중증장애를 가진 한부모 가정'이 된 것입니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진 엄마는 이제 자신과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전에 언뜻 들어봤던 대안들을 떠올려 봅니다. 아마도 그는 '보육원'을 처음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전 경험이나 주변 사람들의 정보 수준에 따라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보육원에 맡긴다는 것이 마뜩잖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알아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보육원을 찾아보고 홈페이지를 뒤적이고, 대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봅니다.

아이들 위해 부모가 되어주고 있는 어른들

여기까지가 흔히 보육원이라고 불리는 '아동양육시설'과 아동의 보호자가 접촉하게 되는 전형적인 경로입니다. 이후의 경로를 더 따라가 볼까요? 현행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양육시설이 직접 아동을 '인수'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화 상담을 한 아동양육시설의 담당자는 위 가정이 거주하고 있는 읍면동의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게 연락해 보라고 할 것입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아동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가정을 방문하거나 센터로 오라고 해서 접수 상담을 하고, 시군구청의 아동보호팀 아동보호전문요원에게 다시 의뢰할 것입니다. 이 요원은 다시 엄마를 만나고 가정을 방문해서 실제로 이 엄마가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지 확인합니다.

만약 이 엄마는 스스로 자녀들을 양육하기 어렵지만,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경우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 요원은 시군구청의 드림스타트센터에 의뢰하거나 다른 사례관리 체계를 연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자녀를 양육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이 요원은 친생부모가 아닌 다른 대안들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것이 아동보호서비스의 레퍼토리들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게 된 중요한 원인은 '양육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흔히 간과되는 또 하나의 결정적 원인이 있습니다. '양육 의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낳은 자녀를 끝까지 양육하겠다는 의지, 만약 당장은 어려워서 다른 곳에 보내더라도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자녀를 데려와서 양육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양육 능력과 양육 의지.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이 둘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겠습니까? 단순한 답은 '의지만으로는 양육할 수 없지만, 의지가 없다면 절대 양육할 수 없다'일 것입니다. 한쪽 부모의 사망, 이혼, 빈곤, 질병, 장애, 수감... 어떤 경우든 남은 부모의 의지가 중요해집니다. 유기, 혼전 임신이나 혼외 출산이 자녀를 포기하는 원인이라면, 의지가 결정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미혼부모나 혼외 출산한 파트너에게는 다른 의미의 의지가 작동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녀를 심하게 학대하거나 방임하는 부모라면 최소한 일정 기간은 그들의 양육 의지를 뜯어말려야 할 것이고, 그들은 양육할 능력도 없지만 오히려 '나쁜 양육'을 하고 있으므로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양육권을 빼앗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맨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일곱 가지 경우에 처한 아이들 중 한 아이를 위해 당신은 부모가 되어줄 수 있습니까? '아동' 앞에 그 아이의 부모가 처한 상황을 수식하는 말들을 모두 지워놓고 나면, 부모를 필요로 하는 한 아이만 남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에게는 양육 능력도, 양육할 의지도 없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다수는 그 부모보다 더 나은 양육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양육 의지만 가지면 됩니다. 1년에 4천 명이나 발생하지만, 그 4천 명을 양육할 4천 쌍의 부모만 있으면 됩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이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되어주고 있는 어른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그 어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태그:#보호대상아동, #발생원인, #발생경로, #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아동보호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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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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