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빠마> 관련 이미지.

영화 <빠마> 관련 이미지. ⓒ 섹 알마문

 
한국에 온 지 20년을 훌쩍 넘긴 그는 인생의 절반을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으로 채웠다. 그리고 그중의 또 절반을 문화예술가로 살아오고 있었다. 2013년 첫 단편 영화 연출 이후 벌써 그가 발표한 영화만 10여 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2009년 귀화한 섹 알마문 감독은 오롯이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으로 소수자 문제를 꺼내들어 화두를 던지는 중이다.
 
지난해 연출한 단편 <빠마>는 그간 감독이 천착해온 노동자 인권 문제에 더해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여러 편견을 여실히 드러내며 허를 찌르는 작품이었다. 한 시골 마을로 시집온 니샤라는 캐릭터를 두고 아이를 낳으라 강요하는 시어머니, 그리고 돈만 벌면 언제든 한국을 떠날 이방인 취급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은 슬픈 한국의 일면이다.
 
출산 강요가 상징하는 것

16일 오후 서울 문래동 이주민 문화예술공간 프리포트에서 만난 섹 알마문 감독은 "한국 여성에게 대놓고 못하는 요구가 당사자만 바뀌어 계속 되는 것"이라며 <빠마>에 담긴 의도에 대해 운을 뗐다.
 
"신체적으로 아이를 낳는 건 여성이지만 출산과 육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일절 책임지지 않으면서 요구만 해왔다. 30~40년 전 한국 여성이 그 대상이었다면 이젠 이주 여성에게 옮겨진 거지.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제자리라는 걸 뜻한다. 이주 여성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영화엔 이주 여성을 향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편견이 반영돼 있었다. '돈을 모으면 언제든 고국으로 떠날 것'이라는 동네 이웃의 말부터, '국제결혼이라고 해서 영어 좀 배울까 했는데 아니네'라는 또 다른 이웃의 반응 등 현실감 있는 대사가 그 방증이다. 친한 한국인 친구들, 여러 이주 여성 상담 사례 등을 보며 구성한 결과물이었다. 섹 알마문 감독은 영화 과정에서 한국인 스태프들의 헌신과 도움이 컸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영화진흥위원회 사전 제작 지원금을 받게 되며 숨통이 트인 경우였다.
 
 영화 <빠마> 관련 이미지.

영화 <빠마> 관련 이미지. ⓒ 섹 알마문

  
제가 아직 한국어로 시나리오 쓰는 건 서투르다. 정소희 피디님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여성 스태프분들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시어머니 캐릭터도 그렇고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니까. 다만 우리 사회 시스템이 출산과 육아를 주저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를 인권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그저 인력으로만 보는 태도가 이주여성에게 반영된 경우라고 본다.
 
사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다양하다. 이주여성 입장에서 한국 가면 좀 더 잘 살 것이라 생각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나. 그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해달라는 건데 TV 프로에 비치는 건 시어머니와 갈등하는 며느리 모습뿐이다. 모든 다문화 가정이 그런 모습이면 우리 사회가 못 돌아가지. 스스로 꾸려서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사는 분들도 많다. 영화는 그런 다양한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소개하자는 의미다.

10년 넘게 문화예술로 때로는 투쟁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온 그는 있는 그대로 사회 구성원 중 하나인 이주민들을 바라봐달라는 말을 건네왔다. 지난해 말 비닐하우스에서 목숨을 잃은 캄보디아 출신 속헹씨 사망 사건은 20년 넘도록 바뀌지 않은 노동 환경, 이주노동자 인권 실태를 뼈아프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주노동자 문제만큼은 거의 바뀐 게 없다. 법으로 제정된 것과 행정상 처리되는 게 다르다. 사업장 문제, 비자 문제 등 모든 권리가 사장에게 있다. 관할 센터에서 문제를 인지하면 사장에게 경고한다. 신고한 사람은 노동자인데 사장이 개선 의지를 보이면 그냥 거기서 일하게끔 만든다. 그게 맞는 걸까. 신고한 사람과 고발당한 사람이 어떻게 같이 일하나.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간단해진다. 문제가 있으면 옮기면 되고 사장 입장에서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으면 자발적으로 환경을 개선할 텐데 말이지.

한국을 바라보는 타자의 눈
 
 영화 <빠마>를 연출한 섹 알마문 감독.

영화 <빠마>를 연출한 섹 알마문 감독. ⓒ 섹 알마문

 
그런 의미에서 한 달도 남지 않은 제20대 대선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꾸준히 이주노동자 문제, 인권 문제를 말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는 일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소수자 관련 공약들에 대해 그의 생각을 물었다. 

특히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의 외국인 건강보험료 발언은 섹 알마문 감독에겐 절망적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윤 후보는 지난 1월 자신의 SNS에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인 노동자를 특정했지만 사실상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자극하는 발언이었다(관련기사: "이주노동자, 보험료 내도 병원 거의 못 가... 윤석열 사과해야").
 
다섯 손가락 중 하나가 아프면 잘라내고 네 손가락으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정치인이잖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할망정 거짓말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는 있어도 혐오 감정을 퍼뜨려 사람들을 갈라놓는 건 인간으로서도 해선 안 되는 일이다.
 
현재 대선 후보들 공약을 보면 이주노동자 관련 정의당에서 공약까진 아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말은 있었고 나머지는 아무 말이 없다. 국제결혼이나 이주 여성에 대한 말도 없고. 심각한 일이라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라면 우리 사회 전반에 필요한 공약을 내야지 표를 얻기 위해 정책을 내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주민 정책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지금 상황을 보면 표를 얻기 위한 전쟁 같다.
 
한 아내의 남편, 영화감독, 그리고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섹 알마문 감독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철의 노동자' 노래 가사에 빠져 노조 일을 시작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귀화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였지만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가 생기면서 영상을 배웠고, 영화를 하나둘 내놓기 시작했다. 첫 단편 <파키>(2013)부터 <빠마>까지 그는 이주노동자 인권에서 여성과 한국 사회 전반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었다. "영상을 배우고 영화를 하며 좀 더 뭔가를 깊게 보게 되고 고민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영화 아카데미를 나왔거나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즐거움으로 작업했기에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극장 개봉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개봉한다고 다 주목받는 건 아니거든. 그냥 감독의 스펙이 될 뿐이다. 언젠가 개봉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여러 영화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문화예술의 힘은 참 강하다. 투쟁 현장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듣는 사람들, 싫어하는 사람들이 다 있지만 영화관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찾는 곳이잖나. 속마음을 그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다. 내겐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2015년 <하루 또 하루>라는 영화로 인디포럼 관객분들을 만났는데 한 관객이 울먹이면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주노동자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하셨다. 투쟁과 문화예술이 결합하면 굉장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다. 문화예술은 누구에게 강제로 먹일 수 있는 게 아니잖나. 보고 듣고 싶은 사람이 다가오니까 말이지. 제겐 같은 주장이라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통로다.
 
<빠마>로 국내 여러 영화제를 돌고자 하는 게 올해 섹 알마문 감독의 작은 목표이자 바람이었다. 이와 별개로 현재 복수의 이주노동자를 관찰하고 추적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3년째 해오고 있다고 한다.

"가장 시급한 건 차별금지법 제정이고, 이주노동자 입장에선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그는 산적한 이주민 인권 문제를 인터뷰 말미 짚었다. 그의 영화가 분명 우리 사회에 건강한 긴장감을 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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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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