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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함의 발로일까, 평소 소신의 피력일까.

폭주가 따로 없다. 최근 진통 끝에 오는 11일 두 번째 대선 후보 TV토론 참가를 확정 지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연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위 높은 강공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데, 그 대상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 경쟁자가 아닌 촛불 시민과 현 정부였다. 독하고 날선 발언을 통해 여전히 '칼잡이' 시절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조국 사태 때는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앞에 수만 명, 얼마나 되는 인원인지 모르겠는데 소위 말하는 민주당과 연계된 사람들을 다 모아서 검찰을 상대로 협박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어떤 정권도 이런 적 없었다. ...(중략)... 완전히 무법천지다. 과거 같으면 다 사법처리될 일인데 정권이 뒷배가 되어서 그런지 마음대로 한다. 그러니깐 모든 게 다 무너진 것이다."

지난 8일 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서 공개된 정권교체행동위와의 인터뷰 중 일부다(관련기사: 윤석열 "문 대통령, 아주 정직한 분이라 생각했는데..." http://omn.kr/1x9ep). 윤 후보는 2019년 가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및 조국 일가족 수사 당시 서초동을 뒤덮었던 촛불 시민들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규정했다.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2019.9.28
▲ "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2019.9.28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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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근간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서초동 및 여의도로 향했던 시민들은 '윤석열 검찰'의 전무후무한 조국 일가족 강압 수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검찰개혁 및 공수처 설치 등을 주장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평소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듯한 발언을 해온 윤 후보의 이 같은 인식은 그 자체로 퇴행적이다. 윤 후보는 촛불 집회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가. 이 같은 윤 후보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전남 순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두고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온 그런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이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적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문제는 윤 후보의 해당 발언이 여전히 검찰주의자의 편협한 인식 그 자체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국민 여론은 검찰을 개혁과제 1순위로 꼽았다(2017년 5월 2주 차 리얼미터 조사). 본인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후, 그 검찰개혁을 지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사법처리 대상'이라 몰아붙인 윤 후보.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칼잡이' 윤 후보의 인식은 촛불시민을 넘어 현 정부로 향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부정에 정치보복 암시까지

"(적폐청산 수사) 할 거다. 그러나 대통령은 관여 안 한다. 현 정부 초기 때 수사 한 건 헌법 원칙에 따라서 한 거고, 다음 정부가 자기들 비리와 불법에 대해 수사하면 그건 보복인가. 다 시스템에 따라서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다."

지난 7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란 질문에 대해 내놓은 답이다. 앞서 지난 4일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도 윤 후보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건 죄지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생각일 뿐"이라며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청와대가 즉각 발끈하고 여권에선 "정치보복"이란 반발이 나왔다.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윤 후보의 주장은 그 자체론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가 관건일 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징계 절차를 밟다 직을 사퇴하고 대선 판에 뛰어든 문재인 정부 전임 검찰총장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인지는 따져봐야 할 듯 싶다.

조국 일가족 수사뿐만이 아니다. 이후 '윤석열 검찰'은 이른바 청와대 하명 수사 등을 통해 청와대 및 여권 인사들을 겨냥했지만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또 윤 후보는 현 정부가 검찰 인사권을 전횡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검찰총장 취임 직후 본인 측근들을 포함해 특수통 검사들을 요직에 배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윤 총장이 근래 들어 그 어떤 검찰총장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검찰권을 휘둘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법원은 법무부의 윤석열 후보 징계가 "정직 2개월 징계도 가벼웠다"라며 '면직도 가능한 수준'이라 판단했다.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윤 전 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판사 사찰 의혹', '채널A 사건 감찰 방해 및 수사 방해' 등 3가지 사유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요컨대, 윤 후보의 차기 정권 적폐수사 천명은 본인 직무마저 충실하지 못했던 전임 검찰총장이 대선 후보로 나선 뒤 현 정권 수사를 공개선언 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가 총장 시절 "쿨했다"라고 평가했던 MB 정부조차 집권 전에 대놓고 하지 못한 '복수의 수사학'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털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검찰주의자의 비뚤어진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은 물론이다.

지금 윤석열 후보에게 우선인 것

윤 후보 지지자들 다수가 지지 이유로 '정권교체'를 꼽는 중이다. 민생 경제나 후보의 유능함, 정책 등과 비교해 압도적인 비율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의 적폐 수사 운운은 이러한 지지층에 대한 적극적인 어필로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 후보도 9일 청와대를 향해 "문제 없으면 불쾌할 일 없을 것"이라며 논란을 피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윤 후보가 지지자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임기 말까지 지지율 40%대 안팎을 유지 중인 현직 대통령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득일까 실일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오른쪽)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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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본부장' 의혹과 관련해 일관되게 부인만 해온 윤 후보가 과연 현 정권의 적폐수사 운운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들 중 일부는 윤석열 정권 집권 이후 '노무현 수사 시즌2', '논두렁 시계 시즌2'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이미 윤석열 캠프에 검찰 및 법조 출신 인사들은 물론 MB 정부 출신 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윤 후보는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동훈 검사로 추정되는 A 검사를 들먹이며 "A 검사가 왜 서울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윤 후보 스스로 '검찰정치', '측근정치'의 가능성을 자인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윤 후보는 부인하지만,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경우 검찰공화국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윤 후보 집권 시 이전 권위주의 정부가 국정원을 앞세웠던 것처럼 검찰 수사가 만연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뉴스를 장악했던 검찰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이 재림할 것이란 우려를 윤 후보 본인이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명약관화하다. 촛불시민들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을 암시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윤 후보의 주장이 일말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 말이다. 연일 터져 나오는 본인 관련 의혹 및 아내 김건희씨와 장모 최은순씨 관련 의혹을 털어내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남의 눈에 티끌보다 제 눈의 들보를 먼저 들여다보라고 했다.

더 나아가, 윤 후보가 검찰 인사 및 수사 전반에 일말의 개입도 하지 않을 거란 국민과의 약속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및 권위주의 정권에서 검찰이 정권 안위를 위해 칼날을 휘둘렀던 역사적 퇴행을 바라는 국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라고 든 탄핵 촛불, 검찰개혁 촛불이 아니지 않은가.  

태그:#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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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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