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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홈리스추모제 기억의 계단
 2021년 홈리스추모제 기억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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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빈곤 등의 이유로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사망한 자, 즉 연고 없는 죽음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연고 사망과 그 이후의 장례의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무연고 사망은 비단 노년층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다. 50대에서 64세까지의 중장년 독거 남성의 무연고 사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20~30대 무연고 사망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직과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하는 가정이 증가하였고, 부부의 해체가 부모 자식 간의 혈연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며 사회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가 점점 약화되는 것에 기인한다. 1인 가구, 사실혼, 비혼 공동체 등 전통적 가족개념에 들어가지 않는 공동체 형태의 등장 역시 젊은 층의 고독사 내지 무연고 사망이 증가하는 현상과 아주 무관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변화된 사회구조와 공동체의 형태는 사회적 위험의 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과 가족이 책임질 수 없는 죽음을 과연 사회가 위험으로써 떠안아야 하는 것인지, 무연고로 사망한 자들에 대해 사회가 애도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나타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연고자의 죽음과 장례를 사회의 문제로서 인식하고 공공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의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법과 제도가 차츰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광역단체 최초로 서울특별시가 공영장례조례를 제정한 이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공영장례조례가 제정 및 시행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연고로 사망한 경우 빈소조차 마련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공영 장례를 통해 최소한의 존엄의 의미를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내 뜻대로 장례, 가족 대신 장례'가 시행되며 혈연이 아닌 사회적 유대관계에 있던 자들이 장례를 주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연고 사망자의 장사 절차, 가족 대신 장례의 시행 단계에서 드러나는 문제점과 입법상 미비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12조, 보건복지부 지침의 '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법의 의식은 무연고 시신을 보건 위생상 처리해야 할 문제로 보는 데 아직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침이 마련되었음에도 공영장례 지원 조례를 제정 및 시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2021년 10월 기준으로 광역자치단체 17곳 중 9곳, 기초자치단체 228곳 중 49곳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각 지자체의 사정에 따라 달리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내 뜻대로 장례, 가족 대신 장례'가 시행 중임에도 연고자 해석례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보니 담당 공무원의 제도에 대한 인식과 협조 정도에 따라 다르게 처리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장례를 치러줄 사실혼 관계 배우자가 있음에도 장사법상의 연고자에 해당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어 자체 공무원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무연고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장사법 개정이 시급하다. 우선 장사법 제12조의 '무연고 시신 처리'라는 제목을 무연고 사망자의 장사 절차로 바꾸고, 제2조에 '무연고 사망자'정의 조항을 신설하여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내지 기피하는 등의 사람'으로 규정하여야 한다.

보건 위생상 시신 처리의 관점에서 나아가 생전에 우리 사회의 일원이었던 무연고 사망자의 장사 절차를 당위로 받아들이고 존엄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 내지 기피하여 생기는 무연고 시신의 사례가 80%가 넘지만, 현행 장사법상 포함되기 어려워 이를 개정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모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의 공영장례를 치르는 모습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의 공영장례를 치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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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장사법 제2조 제16호 연고자 조항에 '사실혼 관계 배우자 또는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은 자로서 시장 등에게 연고자 신청을 마친 자'를 신설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사실혼 관계 배우자, 계모자, 조카, 며느리 등 친족, 친구, 종교 활동 등을 함께 했던 자 등 고인과 생전에 유대관계를 맺었던 자들을 연고자로 포섭할 수 없다.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연고자 장례를 치르려고 해도 이들이 고인 생전에 연고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고인이 사망하기 전에는 '시신 관리자'가 되는 것이 원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법문상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적 공백을 줄임으로써 연고 없는 죽음을 막고, 추모와 애도 속에 고인이 생을 마감하게끔 하려면 장사법상 연고자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현행 장사법상 무연고 시신 처리 후 지체 없이 공고해야 한다는 규정만 두고 있을 뿐 부고에 관한 규정이 없다. 현행법상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의식이 필수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고 규정도 없는 것일 테지만,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고 고인을 추모하려는 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연고자에 대한 장례의식 규정과 함께 반드시 부고 조항 역시 신설되어야 한다.

이밖에도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고인이 생전에 지정한 연고자가 친족에 앞서 연고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 전국적으로 보편적인 수준의 장례가 시행될 수 있도록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국가 사무로 취급하는 것, 단축된 봉안기간을 원래대로 10년으로 복구하는 것 등 장사법상 개선이 필요한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사법 개정만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과 애도가 보장될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장사법 개정을 통해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에 존엄의 의미를 더하려고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연고 있는 사망보다 가볍게 취급되는 무연고 사망이 존엄하게 보호될 경우, 연고 있는 사망의 그것은 당연히 보호될 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상업화되는 장례문화 속에 취약계층을 위한 보편적 공영장례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무연고 사망자뿐 아니라 저소득층까지 포괄하는 '공영장례'가 제도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장사법 개정 요구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초석을 쌓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의 입법 공백을 막기 위해 장사법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의 입법은 모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21홈리스추모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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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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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2021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화우공익재단' 홍유진 변호사입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무연고 사망, #공영장례, #장사등에관한법률, #내뜻대로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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