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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11월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11월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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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청 출입기자로 국장들을 잘 안다. 도서관 계약직 공고 나면 딸 취업 시켜 주겠다." 전남 광주의 A기자가 공공기관 취업 알선을 대가로 받은 돈은 2017년 한 해 동안 총 1억2700만 원. 확인된 피해자만 7명이다. 어떤 이에겐 '구청장의 기자 친구'라며, 또 다른 이에겐 '농협 조합장과 친하다'며 알선을 반복하다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2018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 8월에 처했다.

#. 취재원의 법인 카드를 내 돈 마냥 쓴 기자도 있다. 지난해 8월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징역 1년의 집행유예를 받은 한 여주시 신문사의 B발행인이다. 한 모래채취 업체가 당진시청으로부터 관련 면허 연장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기사를 청탁하며 법인 카드를 건넸다. B발행인은 기사를 썼고 2016년부터 2년간 1420만 원어치 카드를 긁었다. 배임수재 및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이 선고됐다.


기자 직무를 사익 추구에 동원해 범죄로까지 번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대부분 공갈, 배임수재, 협박, 알선수재 등 혐의다. 기자로서 알게 된 정보와 인맥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취재원을 보도로 협박·회유해 금전을 얻는 사건이 전국에서 발생한다.

기자의 사익 추구 문제는 최근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에서도 드러났다. 화천대유자산관리 소유자로 뇌물공여 혐의를 사는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은 현직 시절 부동산개발업에 뛰어들면서 화려한 '취재원 인맥'까지 사업에 동원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검 등 검찰·법원의 고위직 출신을 회사 법률 고문으로 앉혔고, 일부와는 개발이익을 공유했다는 의심도 산다.

<오마이뉴스>는 2018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대법원 판결문 열람 사이트에서 '기자'를 검색해 기자가 피고인이나 공범으로 연루된 형사사건 1심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형사사건 120건 중 기자들이 직무를 사익 편취에 활용해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72건(60%)을 차지했다. 사건은 서울부터 인구 10만 명의 시·군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었다.

기자의 인맥이 알선·청탁 도구로 전락

120건을 주요 혐의별로 정리하면 ▲공갈 등(34건) ▲명예훼손 등(15건) ▲사기 등(14건) ▲공직선거법 위반(9건) ▲알선수재 등(8건) ▲배임수재(7건) ▲성범죄(6건) ▲강요·협박 등(5건) ▲공무집행방해 등(5건) ▲뇌물공여 등(3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1건) 등이다. 나머지 13건은 상해, 음주운전, 횡령, 증권거래법 위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이다.

직무를 사익 추구에 동원한 사건은 공갈, 사기, 알선수재, 배임수재, 강요·협박, 뇌물공여, 부정청탁금지법 등 7개 혐의 사건, 총 72건으로 압축된다. 지역별로는 대전·충남(20건), 수원 등 경기남부(18건), 서울(17건), 광주·전남(17건), 의정부 등 경기북부(9건), 인천·부천(7건), 강원(7권), 충북(6건), 전주·전북(6건), 창원(2건), 제주(1건)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 기자들의 수단은 크게 3개였다. 인맥, 보도할 권한, 그리고 '기자증' 자체다. 인맥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지역 산업·금융계 등을 출입하며 쌓은 취재원과의 관계였다. '시청을 오래 출입해 관계자들을 잘 아니 계약 수주를 도와주겠다'며 알선 수수료를 편취하는 방식이다. 특히 지역의 경우 한 기자가 같은 기관을 오래 출입할 수 있어 인맥을 활용하는데 용이했다.

광주교육청을 출입한 C기자는 2018년 1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공무원 취급 사무와 관련해 청탁·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다. 기자가 교육청이나 각급 학교에 계약 편의를 도모해줘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금의 17~25%씩 업체로부터 수수료로 받았다.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4건, 2013년부터 5년 동안 4개 업체에서 받은 금품만 약 2억 8800만 원에 달했다. 충남 금산의 한 급식용 식탁 제조업체에서 가장 많은 알선비 2억 490여만 원을 받았다.

경기 여주시 소재의 언론사 D대표와 E기자도 똑같은 범죄로 지난해 8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18년부터 지역 개발 사업 등의 민원을 가진 업체에 '관련 공무원을 만나 청탁을 해준다'며 알선 수수료를 받았다. 이런 알선 행위만 8건을 반복한 끝에 수사기관에 적발됐으나 재판에선 3건만 유죄로 인정됐다. 1심 판사는 "여주 지역 신문사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전·현직 여주시장, 여주시의회 의장, 의원 및 시청 공무원 등과 두루 친분을 유지해왔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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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업체 임원이 '악마를 보았다'고 쓴 이유는

취재·보도 권한은 협박의 도구가 됐다. 취재원의 약점을 잡아 '비판 기사를 낸다'고 겁을 준 뒤 보도를 무마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방식이 가장 흔했다. 보도를 넘어, 직접 시·군청에 민원을 넣고 문제 해결을 바라는 취재원이 먼저 연락을 해오길 기다리는 기자도 있었다.

공갈, 협박이 가장 빈번히 이뤄지는 곳은 공사 현장이다. 자신이 '환경 기자'라며 분진, 불법 매립, 토사 오염 등을 이유로 현장소장을 취재하는 식이다. 지난해 4월 수원지법에서 징역 8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기 지역의 F기자는 2016년부터 3년간 17명의 공사 현장 관계자에게 총 1850만 원을 갈취했다. '취재·보도 차량'이라는 판넬과 긴급출동 차량임을 나타내는 경광등을 차량에 부착하고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는 게 그의 일이었다. 공사 지연을 가장 우려하는 현장소장들은 쉽게 기자에게 돈을 쥐여 줬다.

'오늘 악마를 보았다.' 2019년 경기 평택 기자 5명의 악의적 보도에 시달린 한 제조업체 간부가 업무일지에 쓴 말이다. 방송사, 일간지 등의 주재기자 5명이 '평택시 언론협회'란 사조직을 만들고 시청과 수의계약을 한 업체를 겨냥해 한꺼번에 음해성 보도를 냈다. 보도를 내기 전에 광고비를 요구했고, 보도를 낸 후에도 광고비를 요구했다. 결국 1억 원 상당의 광고 계약을 체결했으나 경찰 조사가 이뤄지며 금전은 건너가지 않았다. 이를 주도한 기자는 지난 1월 징역 3년 형으로 구속됐다.

시세조종에 가담한 기자도 있다. 한 시세조종 전문가의 대학 동창이자 룸메이트였던 서울 소재 인터넷신문의 G기자는 2018년 서울남부지법이 심리한 시세조종 사건의 공범으로 기재됐다. 이 기자는 2008년 한 업체가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이 업체가 주는 허위 실적 전망 자료를 기사로 여러 차례 써줬다. G기자는 이들의 주식 매매에도 참여해 부당이득을 취했다. 2018년 8월에야 시세조종 주도자 4명이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 징역 3년 및 징역 1년 6월에 처한 사건이다.

14건을 차지한 사기 사건에선 기자란 직업이 주는 '신뢰'가 활용됐다. 공적인 역할이란 특성 때문에 기자란 이유만으로 그의 말을 믿고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사건이 적지 않았다. 실제 2010년 청주에선 전직 기자를 행세한 H씨가 "소비자들이 언론단체와 기자라고 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기자로 오인하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출판물, DVD 등을 팔다가 2019년 징역 1년 6월에 처했다. 6년 5개월간 번 돈이 25억 원에 달했다.

기자증을 영업에 활용하는 경우는 지난 7월 논란이 된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4월 사기 혐의로 구속된 수산업자 김태우씨는 영업활동에 신뢰도를 높이고 인맥을 쉽게 넓히기 위해 '월드투데이 기자증'을 만들어 기자 행세를 했다. 특히 2016년 교도소에서 만난 송승호 전 월간조선 기자로부터 출소 후 국회의원, 기자, 검사 등도 소개받았다.

"취재·보도 권한은 사회가 부여하는 것"

'알 권리 복무'라는 공적 역할을 맡은 기자는 사회적으로 취재·보도의 권한과 자유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기자는 직무를 사적으로 유용할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철저한 공사 구분이 요구된다. 각 언론사가 기자의 겸직·겸업을 금지하거나 주식 거래나 비트코인 투자 등의 특정한 영리활동에 대해 보고를 의무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언론윤리 헌장을 함께 선언하며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로 금전적·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연합 사무국장에 따르면, 언론사에서 은퇴했거나 문제를 일으켜 퇴직한 언론인이 사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1인 혹은 소규모 인터넷 언론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언론사의 경우 기자 개인의 일탈이나 기자 윤리를 위배하는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자가 협박 등으로 광고비를 받아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손주화 사무국장은 "지자체가 집행하는 언론사 광고비 또한 공적 자금이기 때문에 집행에 있어 운용 지침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기자 지위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취했던 전력이 있는 언론사나 자체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 언론사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정해 광고비를 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인의 불법적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인들이 스스로 사회적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각과 직무로 알게 된 정보를 사익에 활용해선 안 된다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며 "그러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언론사가 채용 과정에서 기자의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적 의식과 책임 등을 강조할 수 있는 절차를 넣거나, 신입 기자를 상대로 강령과 준칙을 숙지할 수 있는 연수 기간을 충분히 주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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