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4 19:37최종 업데이트 21.10.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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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못하시겠으면 부결시키시면 됩니다."

귀를 의심했다. 지난 9월 8일 열린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회(이하 합동위) 장병생활여건개선분과 회의 중에 국방부 공무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군 급식 민간위탁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국방부는 훈련소, 교육기관 등 대규모 부대 급식을 민간 급식 업체에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시범 사업도 시행 중이다. 육군부사관학교가 2020년 하반기부터 민간 업체에 급식을 위탁하고 있다.


그런데 시범사업 운영 평가 자료를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업체가 손해를 보면서 급식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진율이 4월은 –6.1%, 5월은 –11.1%, 6월은 –8.6%였다. 이윤을 남겨야 할 기업이 –10%에 달하는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일단 시범 사업을 잘 해내고 나면 군 급식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보통 급식 업체들은 처음엔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좋은 품질의 식재료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계속 손해를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운영을 시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윤을 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

위탁 운영 급식비는 재료비, 인건비, 기타 경상비로 쓰인다. 경상비는 고정이고, 인건비는 최저임금이 있으니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재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 수입산, 냉동품이 늘어나고 식재료의 품질이 점점 떨어진다. 그래서 위탁 급식으로 운영하는 회사나 기관을 가보면 처음엔 맛있다가 갈수록 맛이 없어진다는 불만이 자주 나온다.
 

2020년 10월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육군 36사단에서 제공된 부실급식 사진 ⓒ 군인권센터제공

 
군대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민간위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 매달 10%의 손해가 나는 위탁급식이 과연 사업성이 있는가?
- 장기적으로 좋은 품질의 급식을 담보할 수 있는 방식인가?


국방부가 갖고 온 대안은 군 급식 위탁사업자에게 부가세를 면제해 이익을 보장해주자는 것이었다. 다시 민간위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 부가세 면제는 순전히 기업 이익을 위해서인데, 세수 손해를 보면서까지 급식을 민간 업체에 위탁해야 하는가?
- 차라리 부가세 면제분만큼 예산을 확보해서 대규모 부대에서는 조리병이 아닌 전문조리원들만으로 운영하면 효율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토론이 오가고 민간위원들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국방부 공무원이 '이건 국방부 계획이고, 동의를 못하면 부결시키시면 된다'는 발언을 했다. 번뜩 든 생각은 '이럴 거면 뭐하러 합동위를 만들었나?'였다. 국방부가 합동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제 갈 길 가겠다는 국방부

합동위는 성추행 피해 여군이 사망하고, 연이어 부실 급식 제보가 터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출범했다. 민간의 지혜를 모아 병영 문화를 혁신해 보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합동위는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혁신 과제를 만들어 권고하면, 국방부가 이를 정책화하는 프로세스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2014년 윤 일병 사망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형태의 위원회가 운영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국방부도 합동위 출범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던 정책들이 있었다. 이를 합동위에 보고하면, 위원들이 검토하고 수정 보완을 요구하거나 우려 사항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장병의 의식주를 다루는 장병생활여건개선분과가 그랬다. 여러 전문가들이 국방부가 만든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혹 국방부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대부분의 쟁점 안건에서 고집불통이었고, 기존에 추진해 온 정책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위원들의 지적과 조언에 '부결시키면 될 것이지, 왜 자꾸 잔소리하느냐'는 식으로 응수한 것이다. 위탁 급식이 소꿉장난도 아니고 국방부의 의지도 완고한 상황에서 위원들이 부결시킨다고 중단할 리는 만무한 상황이었다. 결국 위원들의 동의 여부나 권고 내용과 무관하게 국방부는 제 갈 길 가겠다는 속내가 그대로 표현된 셈이었다.

이런 상황은 군 급식 조달 체계 혁신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나라의 군수 물자를 조달하는 체계를 리모델링하는 작업인데 국방부가 내놓은 안은 황당하게도 '사단별로 자율적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식재료를 조달하고, 사단장 인사평가 기준에 급식 운영을 반영해서 질 좋은 급식을 담보하겠다'였다. 국방부가 책임지고 급식을 관리·운영하던 기존의 체계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 지적이 이어졌다.

이때도 국방부의 고집은 대단했다. 몇 달 동안 똑같은 논의가 반복되었고, 급기야 최종 권고안에는 아예 '조달'이란 단어를 빼고 '구매 및 유통 체계'란 괴상한 용어가 담겼다. 안정적 물자 조달은 군수 보급의 핵심이다. 물건을 사다 나르는 단순한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방부가 민간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으니 합의가 불가하고, 결국 최종 권고안도 산으로 가버린 것이다.

죄다 말 잔치일 뿐
 

28일 오후 서울 국방컨벤션센터 태극홀에서 열린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박은정 공동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6.28 [사진공동취재단] ⓒ 연합뉴스


합동위가 운영된 4개월 동안 총 20명의 민간위원이 사퇴했다. 민간위원이 59명이었으니 1/3이나 사퇴한 것이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 해군에서 재차 발생한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등 위원회 활동 시기 발생한 주요한 고비마다 민간위원들이 집단으로 사퇴했다.

때는 달라도 이유는 같았다. 국방부가 민간위원들을 들러리 세우고, 의견은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십 차례 열린 회의 때마다 평균 회의 시간이 3시간을 넘었다. 제각기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위원들도 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군의 발전과 장병의 인권 보장을 위해 자기 시간을 쪼개 열의를 다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회의 때마다 혈세를 써가며 민간위원을 60명 가까이 모아놓곤, 이들의 말을 경청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시간 낭비, 세금 낭비가 따로 없다.

위원회 권고안 중 주요 사안은 대부분 '검토', '연구'로 도배되어 있다. 위원들이 혁신안을 들고 가도 국방부의 이견이 커 합의에 이르지 못해 권고 내용도 애매모호해진 것이다. 군인위원들이 민간위원들에게 '군의 특수한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권고안을 내보아야 소용없다며 자꾸만 타협을 주문한 탓도 있었다.

군의 특수한 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먹다 만 것처럼 생긴 급식 도시락을 먹는 현실?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 합동위 4개월은 군이 스스로 변화를 도모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오래된 교훈을 재차 확인시켜준 시간이었다.

10월 13일 자로 합동위가 활동을 마무리하고 해단했다. 10월 말에 최종 권고안이 나올 예정이라 한다. 권고안에 큰 기대는 없다. 국방부가 성실히 이행할 의지가 없으니 죄다 말 잔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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