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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 카불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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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들어 탈레반의 기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더니, 현지 시각 8월 15일 탈레반 군대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 관저를 장악했다. 서울보다 4시간 느린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차량 4대와 헬기를 현금으로 채운 뒤 북쪽 우즈베키스탄으로 도피했다.

"전쟁은 끝났다"고 했지만, 미국이 자국민들을 무사히 탈출시킬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병력 1000명을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긴급 승인했다. 9월 11일로 예정된 미군 철수 마감 시한 전까지는 일시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탈레반과 미군의 전쟁이 재연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바이든은 워싱턴 시각으로 16일 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 아니라 테러에 대한 대응이었다'며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이 상황 종료를 원하고 있으므로, 철수하는 미국인과 미군을 탈레반이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9월 11일 이전에 아프간 전쟁은 공식 종료된다. 2001년 10월 7일 조지 부시 행정부(2001~2009)가 토니 블레어 내각(1997~2007)과 함께 일으킨 미·영 연합군 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간 전쟁)이 20년을 약간 못 채운 시점에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과 정면으로 맞붙어 3년을 버틴 북한의 기록이 9년(1964~1973년, 미군의 본격 개입 기간)을 버틴 베트남의 기록에 의해 대체되더니, 이제는 20년을 버틴 탈레반의 기록에 의해 다시 대체됐다. 탈레반이 북한·베트남보다 강력했다기보다는 미국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반영한다.

탈레반이 낙관만 할 수 없는 정황

하지만 탈레반이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친미세력인 정부군은 물리쳤지만, 예전과 달라진 아프간 민중을 상대해야 한다. 탈레반의 엄격한 원리주의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6월 22일자 아프간 <톨로뉴스>는 무기를 들고 탈레반에 저항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7월 8일자 인도 <위온TV> 및 영국 <가디언>은 총기 등으로 무장한 아프간 여성 수백 명이 7월 3일경 반탈레반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근래 들어 아프간 서쪽 이란과 동남쪽 인도에서 민중의 저항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탈레반이 예전처럼 지나치게 혹독하게 민중을 대한다면 아프간인들의 저항이 이 지역 민중들의 국제적 지지로 연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연합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지금의 상황은, 탈냉전기인 1989년에 소련군이 철수한 이후에 벌어진 상황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1979년 12월부터 주둔한 소련군이 1989년 2월 철수한 뒤로는 이슬람 무장조직인 무자헤딘(모자헤딘·무자히딘)이 세력을 팽창하다가 1993년 이슬람 정부를 수립했다.

소련군 철군 이후의 혼란 상황을 무자헤딘이 수습하는가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수선한 속에서 탈레반이 등장했고, 1996년에 새로운 정권이 수립됐다. 하지만 탈레반 역시 9.11 테러가 일어난 2001년 미·영 연합군과 더불어 북부동맹(무자헤딘 포함)의 공격을 받고 쫓겨났다. 하지만 20년간의 무장투쟁 끝에 다시 카불을 점령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놨다.

급격한 정세 변화가 낳을 파장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권 재장악을 선언하자 카불 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군중이 몰려들었으며 결국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공항은 마비됐다.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프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권 재장악을 선언하자 카불 국제공항에는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군중이 몰려들었으며 결국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고 공항은 마비됐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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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정세 변화는 아프간뿐 아니라 보다 넓은 지역에 파급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아프간의 지정학적 조건이 이런 전망을 낳는다.

아프간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란 서쪽의 아랍권과는 다소 다르다. 아랍문화와 결을 달리하는 페르시아문화가 아랍과 아프간의 중간에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아랍과 아프간은 문화적으로 다소 이질적이다. 그래서 중동에 포함시키기가 애매한 나라다.

파키스탄 및 인도와도 가깝지만, 남아시아에 포함시키기도 애매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이란 북쪽),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중국과 인접),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와도 인접해 있지만, 중앙아시아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중앙아로 분류하기에는 중동·남아시아와 너무 가깝다. 가장 무난한 방법은 서아시아로 분류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이 나라의 특성을 특정하기가 애매해진다.

이 같은 애매함이 아프간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중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와 모두 연결된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라시아대륙의 주요 연결점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고대 이래로 세계적 강대국들이 이 땅을 집중 공략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고대 강국인 페르시아·마케도니아(알렉산더)·몽골제국도 이 땅을 차지한 적이 있다. 19세기 세계 최강인 영국과 러시아도 이곳을 두고 각축을 벌였다. 그 결과, 아프간은 1905년에 영국 보호국이 됐다가 한국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에 독립했다. 1945년 이후의 현대 국제질서 하에서는 소련과 미국이 각각 영향력을 행사한 기간이 있다.

외부세력들이 욕심을 내는 것은 아프간 자체가 탐나서이기도 하지만, 중동·남아·중앙아와 연동돼 있다는 사실에 보다 더 기인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최근 여러 달 동안 특히 불안한 심정으로 아프간 사태를 지켜본 쪽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중앙아 국가들이 특히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프간과 연결된 세 지역 중에서 중앙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프간 난민이 터키로 유입되고 있어 터키와 중동도 긴장하고 있지만, 중동과 아프간 사이에 강력한 이란이 있기 때문에 아프간 사태의 파급력이 중동으로 고스란히 전파되지는 않는다.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인도를 둔 남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중앙아시아 문명도 물론 우수하지만 경제·군사 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아프간 사태의 후폭풍이 중동·남아보다는 중앙아 쪽으로 더 많이 불게 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미군 철수가 개시된 5월 1일 이후로 중앙아 국가들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이 중앙아 질서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혹시라도 불통이 튀지 않을지, 아프간 쪽에서 군대라도 넘어오지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파고드는 러시아... 접근하는 중국

이런 정서를 틈타 러시아가 이 지역에 파고들고 있다. 일례로, 지난 7월 7일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아프간과 접경한 타지키스탄 기지를 활용해 CSTO 동맹국들에 대한 어떠한 공세도 용납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확약하는 일이 있었다.

아프간 사태의 불똥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들인 러시아·벨라루스(폴란드 동쪽)·아르메니아(터키 동북쪽)와 더불어 카자흐스탄·키르키스스탄·타지키스탄 같은 중앙아 국가들에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확약한 것이다. 실제로 8월 5일부터 10일까지 아프간 국경 인근에서 러시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의 연합군사훈련이 있었다.

중국 역시 자국과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리키스스탄·타지키스탄이 함께하는 상하이협력기구 등을 활용해 중앙아시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 외무장관 회의는 7월 13일과 14일 있었다.

지난 5월 17일 왕이 외교부장이 아프간 정부군 쪽의 외무장관과 통화하면서 아프간 평화에 대한 협력을 운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프간 정부군이 무너졌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이 다소 어색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중국과 중앙아의 경제적 유대가 러시아와 중앙아의 그것보다 훨씬 긴밀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이 러시아보다 좀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에는 아프간을 떠나고 있는 미국·캐나다·유럽 등도 아프간 사태의 불똥이 중앙아시아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발판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아에 대한 영향력에 특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철군 개시 이후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남쪽 파키스탄에 중앙정보국(CIA) 기지를 설치하고자 했던 것도 아프간 철군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견제 역량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한 결과였다. 그래서 아프간 대신 파키스탄에 기지를 두고자 했던 것이다.

'꿩 대신 닭'을 연상시키는 이 같은 미국의 시도에 파키스탄은 호응하지 않았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6월 9일 "절대 안 된다"는 표현을 써가며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프간 대신 파키스탄을 활용하려던 바이든 행정부의 구상은 일단은 물거품이 됐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최근 들어 동아시아 해역에까지 군대를 파견해 중국뿐 아니라 북한까지 발끈하게 만들었다. 이런 유럽 국가들이 유라시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아프간 문제를 방치할 이유가 없다. 만약 탈레반이 여성 인권 등과 관련해 내부 저항을 초래하거나 국내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에는 유럽 국가들도 다시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유라시아 곳곳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반미적인 탈레반 정권이 전국을 장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반미정권이 주변 지역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견제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다. 차제에 아프간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중국·러시아의 경쟁 역시 격화될 게 명약관화하다.

중동과 동북아에 이어 홍콩·남중국해도 뉴스의 초점이 되더니 이제는 아프간과 중앙아에까지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유라시아대륙의 보다 많은 부분이 격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태그:#아프가니스탄, #아프간, #탈레반, #아프간 전쟁, #무자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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