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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지난 2015년 자신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왼쪽부터 양금덕·이동연·김성주 할머니.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지난 2015년 자신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왼쪽부터 양금덕·이동연·김성주 할머니.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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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눈물> 그리고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 마디>.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 피해를 본 김성주(1929년생)·김정주(1931년생)·양금덕(1931년생) 할머니의 자서전 제목이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동구남구갑)이 두 책과 직접 쓴 편지를 국회의원 모두에게 전할 예정이다. 광복 76주년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며 당을 가리지 않고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앞서 소개한 세 할머니를 비롯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10대 초중반의 나이에 강제로 동원돼 일본 군수회사 등에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도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이다.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정부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던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윤영덕 의원이 준비 중인 법안은 피해자에 대한 실태 조사와 이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고 명예 회복과 잔상 규명을 위한 기념사업 수행 ▲ 피해자 중 생존자를 생활안정지원대상자로 정의하고 생계급여 등을 지원 ▲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 설치 ▲ 생존자 실태조사 실시 ▲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등에 관한 법률상담 및 소송대리 등의 국가 지원 등이 주된 내용이다.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 피해를 당한 김성주(1929년생)·김정주(1931년생)·양금덕(1931년생) 할머니의 자서전 <마르지 않는 눈물>과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 마디>.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 피해를 당한 김성주(1929년생)·김정주(1931년생)·양금덕(1931년생) 할머니의 자서전 <마르지 않는 눈물>과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 마디>.
ⓒ 윤영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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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원은 12일 직접 쓴 편지와 할머니들의 자서전을 300명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내 공동발의자로 법안에 이름을 올려주길 요청할 계획이다.

윤 의원은 "10대 어린 소녀들이 이제 인생의 황혼녘에 이르렀다. 더 늦기 전에 국가가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라며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 겪어야 했던 역사의 피해자들인데, 지금 당당한 나라가 있는 데도 언제까지 그들에게 외로운 싸움을 맡길 순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상암대표는 "우리 정부와 사회는 일본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요구하면서도 이러한 피해자분들은 오랜 시간 투명인간 취급했다"라며 "상당히 면목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법안이 발의되고 국회를 통과한다면, 광복 이후 처음으로 피해자분들이 존엄성 회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 문제는 여야와 정당에 따라 입장이 갈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대해보겠다"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윤영덕 의원이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낼 편지 전문이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역할 해야"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자료사진).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자료사진).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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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6주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존경하는 의원님께. 안녕하십니까. 광주 동구남구갑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윤영덕입니다. 저는 이번에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도 이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함께 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리고자 이 글을 드립니다.

어느덧 광복절 76주년입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에 빼앗겼던 주권을 회복한 날입니다. 뜻깊은 광복절을 맞아 자주독립을 향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불굴의 독립 의지를 되새겨 봅니다. 하지만, 해방 70년이 지났어도 큰 아픔을 겪으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광복 76주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시간은 1945년에 멈춰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회에 오기 전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가까이에서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직 나는 해방을 맞지 못했다"는 할머니들의 말씀 뒤로 그 고달픈 세월을 짐작해 봅니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일부는 미쓰비시 대상 손해배상 소송의 오랜 싸움 끝에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판결 만 3년이 다 되도록 일제 전범기업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사과와 배상은커녕, 적반하장 태도를 취하는 현실을 보면 피해 할머니들께서 느낄 무력감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그때 소녀들의 나이 겨우 13살, 15살이었습니다.

일제는 1944년~1945년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이거나 갓 졸업한 어린 소녀들마저 전시 노동력 충원을 위해 마구잡이로 동원했습니다.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중학교도 보내준다"는 그럴듯한 회유와 강압도 뒤따랐습니다. 그때 소녀들의 나이 겨우 13세~15세였습니다. 호적상 9살의 어린여아도 있었습니다.

일본인 교사와 교장을 앞세워 배움에 목마른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이용해 강제노동의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잔악하고 지능적이고 반인도적인 전시 여성 인권문제이자, 당시 ILO에서도 금한 중대한 아동인권 범죄입니다.

아직도 '근로정신대'는 많은 분들에게 낯선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무관심했습니다. 전시 여성 노동력 동원 피해자인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는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그 존재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진상규명과 실태조사도 미진한데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변변한 연구물, 교양서적 한 권 제대로 없습니다. 근로정신대를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전시 미성년 여성 인권유린 사례인 '여자근로정신대' 생존 피해자에 대한 정부지원의 경우 2007년도에야 제정된 관련 법률(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월 6만 6천원(연 일시불 80만원) 가량의 의료지원금이 전부입니다. 국가가 이들의 아픔을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피해사실을 감추는 것'이었습니다.

"남이 쉬쉬할까봐, 내 평생을 큰 길 한 번 다니지 못하고 뒷길로만 다녔다"는 아흔을 훌쩍 넘긴 피해 할머니에게 우리 국회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일본에서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해방 이후 고국에서의 삶은 더 힘들었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은 행여라도 자녀들 앞길에 누가 될까 싶어 피해 사실을 숨겨왔습니다. 자녀들도 주변 시선 때문에 지금까지 '쉬쉬'해왔습니다. 정신적 고통은 당사자를 넘어 가정으로 자녀들로 대를 이어 2021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픔의 대물림은 개인의 몫입니까? 따뜻한 보호를 받아도 부족할 역사의 피해자들이 왜 해방된 땅에서조차 고개를 숙이며 죄인처럼 숨어 살아야 할까요?

광복 76주년, 피해자들이 족쇄를 풀어낼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국회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부끄럽게도 정부가 해야 할 몫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2012년 광주광역시는 피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현재 7개 광역자치단체 (광주·전남·서울·경기·인천·전북·경남)에서 조례를 통해 월 30만원 안팎의 생활지원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례를 통한 지원 내용이 매우 제한적인 데다 '여자근로정신대' 문제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지난날 역사적 진실을 기록 보존하기 위한 역사 계승사업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정부가 그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사회가 법 제정과 지원으로 피해 할머니들을 귀하게 여겨야 일본 정부와 기업도 근로정신대 문제를 허투루 대하지 못합니다.

우리 정부가 일제 식민지 시대 희생양인 이분들을 방치하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이 피해자들을 두려워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법적 배상은 일본에 묻더라도, 피해자들이 한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일본정부와 일본 기업들에 대한 가장 큰 도덕적 압박은 한국정부와 한국 사회가 피해자들이 겪은 인권 유린을 도외시하지 않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법안은 반성하지 않는 피고 기업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덕적 압박이자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만 14살에 일본에 끌려간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지, 올해로 30년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0대 어린 소녀가 이제 인생의 황혼녘 93세에 이르렀습니다. 더 늦기 전에 국가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 겪어야 했던 역사의 피해자들입니다. 당당한 나라가 있는 데도 언제까지 피해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둘 수 없습니다. 바쁘시더라도 함께 화답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흔여섯번째 광복절을 앞두고 2021년 8월 12일 국회의원 윤영덕 올림.

태그:#근로정신대, #할머니, #법안, #윤영덕,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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