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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을 더위에 시달렸다. 밤에도 열대야로 몇 번씩 일어나는 날이 많으니 숙면일 수가 없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 답다고 말하지만 너무 더우면 입맛도 없어지고 사람이 무력해진다.  

운동하는 것도 쉬고 있다. 가끔 가다 내려 주는 여름 비는 단비다. 어제는 더위를 씻겨 줄 소낙비라도 왔으면 했는데 땅만 적시는 단비만 내리고 만다. 그래도 무섭게 뜨겁던 열기를 조금 식혀 주니 반갑다.

어제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뭐하신다요? 저녁 먹고 있는 중이래요?"
"저녁은 이미 먹고 설거지 마치는 중이래요."
"형님, 지금은 덥고 내일 아침 7시 반에 예스트 서점 앞으로 나오세요, 밭에서 호박
따왔는데 하나 드리려고요."
"에고... 우리를 아주 먹여 살리네요. 알았어요."


지인은 텃밭을 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매번 야채를 얻어먹는다. 야채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밑반찬까지. 마음이 한결같다. 나는 주는 것도 별반 없는데 때론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지인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나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다. 내가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는다.
 
지인이 텃밭에서 따온 호박을 아침에 전해 주었다
▲ 호박 지인이 텃밭에서 따온 호박을 아침에 전해 주었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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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전해준 호박 한 덩이를 가지고 올라오면서 생각한다. 호박 한 덩이는 그냥 호박이 아니다. 주고 싶은 마음, 나누고 싶은 정과 사랑이 호박 안에 담겨 있다. 돈으로만 계산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호박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흐뭇하다.

요즈음, 아니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과 관계는 더 소원해지고 사람 사는 세상이 더욱 삭막해졌다. 살아가는 일이 바쁘기도 하겠지만 모두가 마음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 떠나지 않는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긴장에서 놓아주지를 않는다. 항상 긴장을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가는 일상들이다.

백신이 나오고 주사를 맞으면 곧 물러가리라 생각했던 코로나는 새로운 변종 델타를 만났다. 마음이 팍팍해진다. 오로지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챙기고 살아가기도 바쁘다. 이웃을 챙기고 정을 나누는 정도 메말라 간다. 

코로나를 사람들 사는 풍속도도 달라진다. 가정의 경제적 붕괴는 가정이 해체되는 마음 아픈 현상을 주면에서 볼 때 정말 마음이 아프다. 사람과의 소통이 줄어들면서 사람마다 외로움은 더 많이 호소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만남을 자유로히 할 수가 없다. 

이런 흐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먼 훗날은 형제까지도 잘 만나지 않고 살아가려나 싶어 두렵다. 지금처럼 코로나가 멈추지 않고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과 만나서 먹고 마음을 나눌 때 행복해진다.

옛날 세상과 비교하면 지금은 살아가는 일이 궁핍하지 않다.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며 산다. 끓임 없는 욕망은 사람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 조건이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항상 부족함을 호소하며 산다면 불행을 옆에 끼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이 유연해졌다. 사람 사는 게 별것 아닌데 마음으로 힘들고 싶지 않다. 자꾸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며 담담히 사는 것이 평화롭다. 

오늘 아침 지인은이 호박 한 덩이를 전해 주면서 쑥스러워한다. 별것도 아닌 걸 준다고 말하면서, 나는 아니라고 '고맙다'라고 말하고 호박을 가지고 아파트로 올라온다. 마음이 흐뭇하고 감사하다. 호박 하나는 마음으로 전하는 사랑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그냥 마는 일이다. 

사람이 작은 일 가지고 마음이 부자가 되고 행복해진다. 어느 날 친구가 전해 주는 따듯한 말 한 마디가 행복하고 텃밭에서 따다가 전해주는 호박 한 덩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오늘도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다. 

오늘 저녁은 새우젓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빨갛게 넣은 호박 찌개로 저녁상을 차려야겠다. 글을 쓰는 내내 창가에 붙어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반갑다. 매미 소리도 자연의 일부다. 철이 지나면 가고 말 매미소리를 귀에 담으며 오늘 하루 삶도 즐겁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호박,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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