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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지난 5월 육군을 상대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지난 5월 육군을 상대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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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병장 아빠입니다. 최근 육군은 'The 강한 좋은 육군'이라는 해괴한 새 표어를 배포했습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이 지난 5월 육군을 상대로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잡탕 가사] 육군, We 육군? 고 워리어 고 빅토리? 워리어 플랫폼?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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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이 글에서 "대한민국 공용 문자가 아닌 영어 알파벳을 앞세워 대한민국 자존심과 외국인들이 더 칭송하는, 인류 최고의 문자라고 하는 한글의 품격을 짓밟고 있다"면서 "모국어를 짓밟는 군대가 어찌 국민의 신뢰를 쌓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성토했다. 결국 육군은 이 표어 배포를 중단했고, '더 강한·좋은 육군'으로 수정했다.

당시 김 원장이 문제를 삼은 것은 이것만은 아니었다. 

'육군, We 육군'

지난 4월 육군이 공개한 새 군가 제목이다. 가사에는 '육군 아미 타이거', '고 워리어 고 빅토리', '워리어 플랫폼', '에이아이 드론봇' 등 후렴구를 포함해 26마디 노랫말 중 27%인 7마디를 영어로 썼다.

<오마이뉴스> 등이 김 원장의 입을 빌어 문제를 제기하자, 국방부 관계자들은 한글학회 등을 찾아 고치기로 약속했고 결국 '육군, 우리 육군'으로 바꾸고 일부 영어 표기도 바꿨다. 더불어 장병들이 우리 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행사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

"육군가는 단순한 군가가 아니죠.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노래이자, 우리 군대 자존감의 표현입니다. 국방부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노래이고, 젊은 취향에 맞췄다고 해명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를 잡탕 가사로 우리 군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되겠지요.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외국어 남용] 로드맵, 킥오프미팅, 보이스피싱, 부스터샷...
 
'溫line'이라는 정체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 공공기관 자료.
 "溫line"이라는 정체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 공공기관 자료.
ⓒ 경기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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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line 교사 공감 교실'

위의 글도 김 원장이 소개한 우리말 표기의 잘못된 사례다. 김 원장은 "교육부 알림 자료 홍보물에 있던 내용인데, 온라인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이런 잡탕말로 무슨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개탄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도처에 널려있다.  

"'로드맵'(road map)은 이행계획이죠. '킥오프 미팅'(kickoff meeting)은 첫 회의, 또는 첫 기획회의라고 쓰면 됩니다. '언택트'(untact)는 영어권에서도 모르는 말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이 단어를 듣고 어이없어 했다고 하더라고요."   

국립국어원 김선철 공공언어과장의 지적이다. 국립국어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지난 2020년부터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인 '새말 모임'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유관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이다. 이들은 공공언어, 즉 공공기관이나 언론매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다듬어 발표하고 있다. 

김 과장은 "90년대까지는 우리말에 깊숙하게 침투한 일본 용어가 문제였는데, 지금은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영어 알파벳 표기를 중심으로 새말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정책이나 국민들이 누려야 할 혜택 등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게 공공언어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언어가 비문과 비논리적 구성 등으로 혼란스럽게 작성된 것도 문제지만 어려운 외국어로 쓰일 경우, 그 피해는 국민들이 감수해야 한다. 가령, 국립국어원은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사기 전화'를 선정한 바 있다. SMS(short message service)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인 '스미싱'(SMishing)의 대체어는 '문자결재사기'이다.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을 '문자 사기 전화' 등으로 불러서 주의하라고 홍보를 했다면 노인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어르신들에게 '부스터샷(booster shot. 추가접종)을 맞으셔야 한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알아들으실까요? 복합 쉼터를 '마스터 쉘터'(master shelter)라고 쓰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이런 홍보물을 보고 쉼터를 찾아갈 노인들이 얼마나 있을까요?"(김선철 과장)

[새말] "정답은 아니다... 경각심 가져달라는 차원"
 
김선철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
 김선철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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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은 "기자들에게 새말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하면 '취재원이 사용한 어휘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라고 답변하지만, 적어도 새말을 쓸 때는 뜻풀이라도 넣어줬으면 좋겠다"면서 "일주일 정도에 언론에서 나오는 새로운 외국어 중 영어사전에도 없는 용어만 해도 50여 개가 넘는다"라고 우려했다. 

2020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국립국어원 새말모임이 글을 다듬는 대상으로 삼는 어휘는 공공언어, 즉 공공기관과 언론 매체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다. 새말모임은 지난 7월, 사무실 등의 책상을 꾸미는 일을 이르는 말인 '데스크테리어'(deskterior)의 대체어로 '책상 꾸미기'를 선정하는 등 지금까지 총 200여개의 새말을 제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부터 '팬데믹'(세계적 유행) 등의 외국어가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새말모임은 코로나19 관련 외국어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 전에 에피데믹(유행), 언택트(비대면), 트윈데믹(감염병 동시 유행), 드라이브스루 진료(승차 진료), 비말(침방울), 엔(n)차 감염(연쇄 감염), 풀링 검사(선별 검사), 트래블 버블(여행 안전 권역) 등 22개의 새말을 제공했다. 

문체부는 국립국어원과 함께 새말을 제시하기 전에 국민 수용도 조사도 실시한다. 가령 문체부는 7월 9일부터 7월 14일까지 국민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일부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테리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의향과 '책상 꾸미기'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사 결과, 각각 62.7%, 97.5%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김 과장은 "새말모임에서 제안한 대체어가 '정답'이 아니라 정답 중에 하나일 것으로 생각해서 제안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가져주신다면 조금만 생각해도 충분한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경각심을 가져달라는 차원에서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그:#우리말 천태만상, #세종국어문화원,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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