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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난초 작가와 '여기 풀이 있을지도'(사진: 정민구 기자)
 안난초 작가와 "여기 풀이 있을지도"(사진: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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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대한 관심은 우리 주변 식물을 알아가는 첫 단계"
혁신파크 열린녹지 공간 서식하는 50종 이상 풀 발견해 지도 제작


서울 은평구에서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정문 반대편에는 '열린 녹지' 공간이 있다. 웹툰 <식물생활>의 안난초 작가는 2020년 여름 동안 이곳을 관찰했다. 그는 포장도로가 아닌 흙길이 약 140m 이어지는 구간에서 자생적으로 사는 50종 이상의 풀을 발견했다. 관찰을 마치고 안난초 작가는 <여기 풀이 있을 지도>를 만들었다. 

작은 공간의 풀 생태계를 기록하며 안난초 작가는 "풀을 살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생물군도 함께 관찰할 수 있었고, 풀이 지탱하는 작은 생태계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하며 "이런 시도는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베어지기를 반복했던 식물군인 '풀'에 대해 알아가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식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생태적인 이야기를 주요한 소재로 작업하고 있는 안난초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여기 풀이 있을지도> 작업을 하고 전시회도 진행했는데요. 어떻게 이런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을까요?

"먼저 식물과 사람을 엮는 이야기는 제가 진행한 웹툰 <식물생활>에서 시작이 됐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식물 애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하고 각색한 웹툰입니다. 계속해서 식물 관련 콘텐츠를 구상하는 과정이었고 지난해 서울혁신파크 청년청에 입주하고 서울혁신파크 주변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이곳에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던걸 눈여겨보았죠. 그런 중에 서울시에서 진행한 '2020 서울 도시재생 열린공모'에 선정됐는데 혁신파크에 있는 풀을 기록하고 묶어내는 <여기 풀이 있을지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서울 은평과의 인연은 어떤가요?

"은평으로 오기 전엔 마포구에 살았는데 개발과 함께 동네가 소란스러워지면서 5년 전에 은평구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좀더 조용하고 더 큰 방을 가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은평구로 오게 되었어요. 온 다음엔 정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집에서 북한산이 바로 보여요. 산과 풀을 매일 볼수 있다는 것이 이 곳에 사는 큰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 서울혁신파크에는 다양한 나무와 풀 등 식물이 많지만 동물과 달리 눈에 띄거나 기억해내기가 어렵습니다. 풀 같은 경우는 잡초로만 생각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떤 이유로 풀을 기록하게 됐나요?

"원래 풀이나 나무를 통틀어 식물 지도를 만들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관찰을 위해 서울혁신파크를 돌아보던 중에 여름 제초 작업을 하는 것을 봤어요. 제초가 끝나면 완전 민둥산처럼 깎여 나가는데 아쉬움이 컸죠. 풀이 있어서 지탱되는 생태계인데 그런 것들이 너무 가치 없는 걸로 평가절하되는 것 같았어요."
 
서울혁신파크 '열린 녹지' 30종의 여름 풀을 기록한 <여기 풀이 있을 지도>
 서울혁신파크 "열린 녹지" 30종의 여름 풀을 기록한 <여기 풀이 있을 지도>
ⓒ 서울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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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초작업이 있던 날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풀을 기록하면서 열린녹지 공간에 대한 친근감이 생겨 있었어요. 그런데 제초하는 날이 오게 되면 모터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밖에 나가보게 되거든요. 근데 제가 풀 채집 못한 거를 얼른 가져와야한다는 생각으로 박스랑 가위를 갖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제초 작업자 분이 저를 파크 관리자로 생각하셨는지 저에게 "여기 전부 제초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알아서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뒤돌면서 이렇게밖에 얘기할 수 없었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쉬움과 슬픈 마음이 함께 들었어요. 풀들이 엄청 잘려나가서 바닥에 뿌려져 있는 걸 보고 들어오면 기분이 이상했어요. 관찰하면서 무당벌레나 나비, 벌 등 곤충이 풀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고 그 다음에 새들의 같은 경우엔 풀의 씨앗들이 먹이로 되거든요. 제초작업으로 그런 작은 생태가 사라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 기억에 남는 풀이 있을 것 같아요.

"'질경이'라는 풀이었어요. 식물도감에 보면 질경이는 다른 식물과 햇빛 다툼에서 경쟁하는 게 싫어서 다른 풀들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햇볕 쪽으로 더 나와서 산다고 해요. 실제로 관찰하다보면 질경이들은 사람들 발에 더 밟히기 쉬운 곳까지 나와 있곤 해요. 다른 풀과 햇볕 경쟁하는 스트레스보다 발에 밟혀 잎사귀가 파괴되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더 견딜 만한 일이다 생각한다는 거죠.

풀들은 정말 각자 자기만의 생존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다른 풀들도 질경이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답니다."

- 풀도 좋아하는 자리가 있나요?

"여기저기 다 살 수 있는 풀도 분명히 있지만 자리를 가리기도 해요. 관찰하다 보면 다른 지역보다 물이 고여 있거나 습한 곳에 '갈퀴덩쿨'이나 '꽃말' 등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씀바귀'랑 '고들빼기'가 주변에 정말 많아요. 처음 보면 둘을 정말 헷갈리는데 그 모습을 알게 되니까 서로 사는 환경이 정말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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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을 식용으로 먹기도 하던데 어떤가요? 

"과거 우리나라는 먹을 게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온갖 풀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먹게 되면 가까이 할 수밖에 없고 과거 사람들은 풀을 구분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겠죠. 몇 십 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사람들은 풀이랑 근접하게 살았다는 의미에요. 근데 지금은 다른 먹을 게 많아지고 먹을 수 있는 풀이 산업의 세계로 들어가니까 이젠 잡초로 구분되어진 거죠. 

벼과 식물인 돌피 같은 거는 야생에서 나는 피거든요. 피는 구황작물로 많이 재배해왔고 사람도 먹어요. 아까 이야기한 질경이는 약초로 쓰이기도 하고요, 고들빼기, 방가지똥, 돌소리쟁이 등도 전부 먹을 수 있어요. 독이 있는 식물이라도 조금 제거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있잖아요. 고사리가 그런 경우인데 독을 제거하고 먹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아요."

- 이번 기록을 마치고 느낀 점이 있다면?

"생태계는 자꾸 변해가고 사람은 이런 자연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겪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주변에 있는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며 재난을 대비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이 있었죠. 

또 요즘엔 보기 좋다는 이유라든가 마음이 편해진다는 이유로 화분을 많이 구입하고 저 역시 다양한 화분을 집에 들여놓곤 하는데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풀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꼭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주변의 풀을 알게 되면서 "아 쟤도 자기 자리에서 아름답게 있구나" 생각하며 화분을 들여놓는 욕심을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여기 풀이 있을 지도>를 내고 '서부공원녹지사업소'에 지도를 보내드렸는데 바로 연락이 왔어요. 사업소에서는 6월에 곤충 지도를 만들 계획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하고 기록하는 것을 기획하고 있는데 이걸 같이 해 줄 수 있는지 제안을 받아서 정말 기뻤어요."

- <여기 풀이 있을 지도>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이 지도를 은평구 안에 있는 도서관의 어린이자료실에 보냈고, 불광문고나 책방비엥에도 배포를 부탁드렸어요. 혹시나 지도를 보신 분들께서 여력이 된다면 지도를 들고 서울혁신파크 열린녹지에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도를 들고 걸으며 여기 있는 풀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면 풀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지 않을까 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풀, #안난초, #잡초, #식물생활, #여기 풀이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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