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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외롭다고 모두가 아우성이다. 코로나로 손발이 묶인 지 오래기 때문이다. 외출을 해도 마스크 속에서 숨을 쉬어야 하니 답답해도 너무 답답하다. 그런데 외로움은 정말 코로나 때문일까. 그렇다면 코로나 이전에는 외롭지 않았단 말인가.

20대에 공동체 생활을 했던 나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는데도 많이 외로웠다. 결혼을 하면 이 외로움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일? 외로움이 증폭되는 것이 아닌가. 이 외로움은 어디서 왔던 걸까? <고귀한 일상>의 저자 김혜련은 나의 의문에 찰떡같은 대답을 해준다. 
 
외로움은 대개 인간관계에서 온다.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외롭다. 같이 있으면 따뜻할 거라고 생각한 관계가 따뜻하지 않을 때도 외롭다... 결혼 생활할 때 가장 외로웠다. - <고귀한 일상>, 17쪽

그녀도 결혼 생활할 때 가장 외로웠다니! 그렇다면 외로움은 단순히 내 옆에 사람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나는 가족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데도, 옛날과 달리 하나도 외롭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 이렇게 말해도 될까. 내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다! 결혼 생활에 돌파구가 생기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또 한 가지 외로움을 극복하는 비결이 있다.

나 홀로 산행 중에 외로움을 극복하다
 
등산
 등산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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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 오른 지 10년 정도 되니 날마다 산이 나를 부른다. 그 부름에 응하면 오감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맑게 개인 날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 멀리 광교산 자락을 보며 오늘의 미세먼지를 가늠한다. 스카이라인이 분명하면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산길의 걸음마다 스며드는 평안함, 때마다 달라지는 산내음, 각양각색 새들의 지저귐. 잠시 속세를 떠나온 듯도 하다.

오르락내리락 어디쯤에 무엇이 있는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모습인지 눈에 선하다. 그들도 나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자연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를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지도 않는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맞이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 속에서 평화롭다. 외로움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나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초록의 나뭇잎을 사랑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동서로 남북으로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다. 흔들리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삶의 불안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이때 훅 글감이 찾아온다. 뭐가 뭔지 모르게 얽혀 있던 생각도 제자리를 찾는다. 이것도 고독한 산행을 즐기는 이유 중의 하나다. 

농장에서 노동의 기쁨에 외로울 틈이 없다

나의 옆지기도 모양은 다르지만 자연을 가까이 하며 외로움을 극복하고 있다. 그는 올 봄부터 본격적으로 친구의 농장에서 농작물을 가꾸고 있다. 4월 중순 경 여러가지 씨앗을 뿌렸다. 상추, 청경채, 강남콩, 땅콩, 비트, 옥수수, 고수, 당근 등등. 
 
옆지기가 작물을 가꾸고 있는 농장의 모습
 옆지기가 작물을 가꾸고 있는 농장의 모습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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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향하는 것은 자연 농법이다. 일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나는 것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순환 농법이다. 풀도 작물로 가는 햇빛을 방해할 때만 낫으로 베어 거름으로 쓴다. 그런데 오랫동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척박해질 대로 척박해진 땅에 작물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뿌린 씨앗은 싹을 내는 것도 발육도 느리다. 지난 가을 뿌린 시금치는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이했는데도 새순보다 조금 큰 정도였으니 말이다. 같은 시기에 뿌린 다른 농부의 시금치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는데... 자연 농법의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물 재배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그는 주말마다 농장에 못 가서 안달이다. 농장까지의 거리는 차가 안 밀리면 왕복 2시간 거리지만, 잘못 걸리면 4시간이다. 씨앗값, 모종값도 만만치 않다. 자동차 기름값은 어떻고. 가성비 꽝이다.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않는다. 아낌없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퍼부을 뿐이다. 어제는 모종을 만 원어치 사서 심고 왔다고 한다. 

"그 돈이면 여름내 상추를 사서 질리게 먹겠다."
"그렇지? 근데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지. 그나저나 고추 모종에 지지대를 안 해줬는데, 쓰러지면 어떻게 하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갔다 와야겠다." 

 
올봄에 뿌린 청경채와 상추를 솎아서 청경채 나물과 샐러드로 먹었다
 올봄에 뿌린 청경채와 상추를 솎아서 청경채 나물과 샐러드로 먹었다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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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작가 김혜련씨가 그의 기이한 행동을 해석해준다. 
 
자신의 노동에서 느끼는 기쁨은 예술적 창조의 기쁨과도 같다. 자신의 노동으로 달라진 존재에게 느끼는 대견함과 아름다움. 그 존재와 하나가 되는 자기 확장, 그 감동으로 그는 자기 변화에 이른다. - 80쪽

아하! 농작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자기의 노동이 만들어 내는 창조적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었구나. 직접 고랑을 파고 뿌린 씨앗이 싹을 내고 자라는 것이 대견스럽고 기뻤을 것이다. 옆지기는 하나에서 열까지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어떤 생명 활동이 일어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감동을 받는 것이리라. 

이런 그에게 외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는 듯하다. 자연이 주는 정직하고 소박한 기쁨이 그를 충만한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 같다. 자연은 우리 부부를 외로움에서 해방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로나, #외로움을 극복하는 비결,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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