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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구름 울보 그림책, 김세실 글, 노석미 그림. 출판사 사계절
 .아기구름 울보 그림책, 김세실 글, 노석미 그림. 출판사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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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부터 이상했다. 어제(21일) 출근길은, 잔뜩 먹구름이 낀 하늘 탓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날씨가 왜 이러지? 비가 올 듯 말듯하네.'

나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시설 종사자다.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같이 일하는 생활재활팀장으로부터 시설에 있는 장애인입소자 대식(가명)씨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전해 들었다. 나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순간, 멍한 표정인 채로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다.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왜 돌아가신 걸까?'

나는 어머니 얼굴을 안다. 코로나 이전에는 종종 대식씨를 집으로 데려가기도 하시고 시설로 방문도 하시기도 하셨다. 코로나 이후 방문 제한이 있자 종종 아들의 안부 전화를 하시고는 하였다. 보호자께서는 대식씨에게 '어머님의 죽음을 알려드리지 말아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자녀에게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도록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그걸 빼앗을 권리가 우리에게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님 보호자의 말대로 '장례식장에 가보지도 못하는데, 굳이 알릴 필요가 있을까?'하는 두 가지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들 사이에서 갈등했다.

대식씨는 시설 제과제빵 프로그램 시간에 케이크를 만들 때마다 '엄마 갖다 주고 싶다'고 자주 말하곤 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에게 명절 선물 사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이제 앞으로는, 대식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어색한 연기를 해야할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말... 우리에게 숨길 권리가 있을까

만약 대식씨가 시설에 살지 않았더라면, 국가의 방침에 따라 시설 방문 제한으로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분명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곳에 입소하였는데, 이럴 때마다 '장애인이 시설에 사는 것이 옳은 일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대식씨가 시설에 살지 않았더라면, 국가의 방침에 따라 시설 방문 제한으로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자료사진)
 만약 대식씨가 시설에 살지 않았더라면, 국가의 방침에 따라 시설 방문 제한으로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자료사진)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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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종사자인 우리가 모자지간을 만나지 못하게 한 것 같아 괜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내가 일하는 이곳은 성인 장애인 시설이므로 보호자님들께서는 대부분 나이가 연로하시다. 우리는 대식씨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해진다. 보호자님들께 여기 머무는 자녀들의 얼굴을 보게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대식씨 어머니께서 캠프 때 트로트를 멋드러지게 부르시던 모습도, 특유의 경쾌한 강원도 사투리도 이제 더는 들을 수가 없다.

오후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왔다. 며칠 전 대식씨 어머님께서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시설장애인과 선생님들 드시라고 보낸 것이었다. 초코파이를 보는 순간 먹지도 않았는데, 나는 목이 꽉 메는 듯한 느낌이다. 추운 날과 더운 날에도, 매일 성실하게 공공근로로 버신 돈으로 사서 보내신 간식임을 우리들은 안다. 다른 그 어떤 간식보다 귀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잔뜩 비를 먹은 듯한 먹구름이었지만, 어제는 끝내 비가 내리지 않았다. 아마 대식씨 엄마가 아픈 손가락인 자식을 두고 가는 어머니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 보고 가지 못한 어머님은 눈을 제대로 감으셨는지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저희와 대식씨는 잘 지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엄마마음, #장애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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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차 사회복지사 워킹맘입니다. 장애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엄마로서 삶, 사회복지사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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