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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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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동안 말 많았던 고 이건희 회장의 상속재산 이야기다. 28일 공개된 내용에는 12조원이 넘는 상속세 납부와 함께 수조원에 달하는 예술품의 국가 박물관 기증 등이 포함됐다. 또 과거 2008년 이 회장이 약속한 사재출연을 통한 사회환원도 구체적인 그림이 나왔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이 회장의 유족간 상속재산 분할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직 유족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4조원에 달하는 이 회장의 재산 분할은 향후 그룹 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상속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 부회장을 둘러싼 그룹 내외부의 환경은 녹록치 않다. 재계를 중심으로 이 부회장의 사면론이 나오지만,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의 기류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내년 대통령선거 등 향후 정치·사회적인 여건도 이 부회장의 삼성에 쉽지 않다. 유례없는 상속을 둘러싼 삼성가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포인트 ①]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유족간 합의 난항?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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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상속세 발표에서 핵심은 과연 이 회장의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여부였다. 이는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날 이 회장의 재산 분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오는 30일까지 전체 상속세 추정치 12조원 가운데 2조원을 납부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았을 뿐이다.

삼성 관계자는 "상속인들 사이에서 (재산분할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원만하게 합의가 되더라도, 회사 차원의 별도 발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신 향후 이씨 일가의 주식 지분 변동이 예상됨에 따라 회사별로 대주주의 지분변동 공시 등의 형태로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최근 금융시장에서 이 회장의 재산분할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 4인이 지난 26일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20.76%를 공동으로 소유하겠다고 금융위원회에 대주주 변경 승인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인들은 이달 30일까지 상속받는 주식 내역을 종목별로 신고해야 한다"면서 "만약 (상속인 사이에서) 분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일단 법정 상속비율이나 잠정 합의내용으로 신고하고, 나중에 분할 비율을 결정해서 국세청에 수정 신고해도 된다"고 말했다. 

법정 상속 비율대로라면, 홍 전 관장이 가장 많은 상속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성지배구조가 사실상 재편된 만큼, 이 부회장에게 대부분의 주식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이 부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실상 삼성물산이 그룹지주회사격으로, 이 부회장은 물산 최대주주다. 반면 생명과 전자의 지분율은 1%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이 회장 소유의 생명(20.76%)과 전자(4.18%) 지분을 넘겨받을 경우,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체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공동 소유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당분간 유족간 재산 분할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 ②] '이건희 약속'의 지연된 이행... 수조원 예술품 사회환원의 속뜻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기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기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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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날 발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 회장의 사재출연을 통한 사회공헌과 2조원 안팎에 달하는 예술품의 기증이다. 삼성은 이날 상속세 발표의 대부분을 이 부분에 할애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감염병 전문병원과 연구소 설립에 7000억원을 들이고, 소아암과 희귀질환에 고통받는 어린이 환자를 위해 3000억원을 지원한다는 것. 이는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 이후, 이 회장이 약속한 사재출연과 사회공헌을 실행해 옮기는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검찰 수사로 밝혀진 차명 재산 가운데 벌금과 세금 등을 내고, 남은 돈은 사회에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삼성은 이후 이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 이행을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해왔으나, 2014년 이 회장이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이와 함께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고 미술품 등 예술품도 국민에게 돌아온다. 수십여 건의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는 국립박물관에 기증되고, 한국 근대미술에 큰 업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들도 국립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지역 연고 미술관 등에 보내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지정 문화재 등을 국가에 대규모로 기증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며 "국내 문화자산을 보호하는 것과 함께 국민들에게 문화 향유권을 돌려드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삼성의 사회환원에 대해 재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2조원이 넘는 상속세뿐 아니라 이 회장의 사재 출연과 감염병 병원 설립, 수조원의 예술품 기증 등은 분명 기업의 사회적 책임면에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들 가운데 과연 어떤 기업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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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발표가 최근 제기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론과 형사 재판 등에 연계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는 "이 회장의 유족이 내는 상속세는 법에 따라 적법하게 내는 것이고, 사재출연 역시 약속을 10년 지나서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가의 예술품 등이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삼성가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최근 이 부회장의 사면론과 진행 중인 경영권 불법승계 재판 등과 연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채이배 전 국회의원도 "이 부회장은 이번 상속재산과는 별개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법 합병으로 그룹 경영권을 장악했다"면서 "이번에 발표된 상속 과정은 그룹 경영권과는 큰 의미가 없고, 상속세 납부는 단순 행정절차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세청은 향후 상속재산에 누락이 없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서 이씨 일가의 투명하고 공정한 상속절차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인트 ③] 상속세 12조원 어떻게 낼까

이날 삼성은 이 회장의 상속재산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룹 계열사 주식 분에 대한 상속 세액은 이미 11조 400억원으로 확정됐었다. 

이밖에 이 회장의 에버랜드 땅과 서울 한남동 자택 등 부동산이 2조원 안팎에 달하고, 고 미술품 등 소장 예술품도 2조~3조원 정도로 평가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이 회장의 예술품 등은 국가와 사회에 기증되면서, 상속세는 따로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족들이 어떻게 세금을 나눠 낼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유족들이 우선 이번 달 말까지 2조원 규모의 세금을 납부하고, 나머지는 법에 따라 5년에 걸쳐 나눠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납세자는 거액의 상속세에 대해 연부연납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상속 세금을 6번에 걸쳐 나눠 내는 방식인데, 6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우선 낸 후, 나머지 6분의 5는 5년에 걸쳐 내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동안 별도의 가산금리를 적용받는다. 

상속세 자금은 유족들의 개인 재산과 주식 배당금으로 우선 충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재원 마련을 위해 이재용 부회장 등이 일부 계열사 주식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세금 규모가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까, 자금 조달을 두고 여러 가능성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일부 부족한 자금의 경우 주식이나 부동산, 배당금 등을 담보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납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태그:#고 이건희 삼성 회장, #이건희 상속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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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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