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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참여연대 정책위원 김남근 변호사가 실효성 있는 LH 개혁 방안에 대한 제언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토지거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1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LH 본사에 최근 사회단체가 던진 계란 자국이 남아있다.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토지거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1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LH 본사에 최근 사회단체가 던진 계란 자국이 남아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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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역 부동산투기 사건을 계기로 LH를 해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불붙고 있다. 적어도 공직자라면 부동산 투기 붐이 이는 것을 보면 상부에 보고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58억원이 넘는 대규모 대출을 통해 큰 몫 잡겠다는 식으로 투기에 뛰어들어 국민적 공분이 크다.

개발정보에 상시로 노출되어 있는 것에 비해, LH 내부의 부패방지 시스템은 취약했다. 여기에 내부 비리를 솜방망이 징계로 안이하게 대처해 투기를 막아야 할 조직의 직원이 투기에 앞장서는 사태를 초래했다. 국민적 분노가 큰 나머지 감정적인 측면도 없진 않지만 LH의 조직과 역할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LH 조직의 비대한 규모, 공공택지 사업의 독점 등 풀어야할 문제가 많다. 

'공룡' LH의 딜레마

LH는 공공임대 공급, 도시 영세민의 주거환경 개선, 노후화 방치로 슬럼화 되고 있는 도심의 공공재개발 등 고유의 목적사업이 있다. 기존 주택가격이 상승하여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젊은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공공주택의 공급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LH의 주요 사업이다. 이러한 공익사업들은 민간이 꺼려하고, 심지어 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마저 잘 하지 않으려는 사업들이다. 문제가 있어도 LH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고, LH 해체론이 무책임한 주장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LH의 고유목적 사업들은 재정이 많이 소요되는 사업들이다. 그런데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고 LH가 돈 벌어 공익사업을 하라고 한다. 이런 사업방식이 문제다. 농지를 3기 신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로·지하철·상하수도·공원 등의 기반시설을 다지려면 조 단위 비용이 든다. LH는 이 비용을  3기 신도시로 조성한 택지의 40%를 민간건설사에 매각해서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세대 당 1억원이 드는 공공임대 사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분양사업을 해야 한다. LH가 땅장사·집장사 해서 번 돈을 '교차보조'라고 하여 마치 국가가 재정을 보조하는 것처럼 그럴 듯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LH는 공익적 성격의 고유목적 사업보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땅장사·집장사를 더 많이 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3기 신도시를 개발해도 그 중 40%의 땅을 민간건설사에 매각하고 25%는 분양사업을 해야 하니, 공공임대 등 공공주택을 공급할 땅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또다른 농지를 강제수용해서 공공택지를 만들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대부분의 국가는 공공임대 공급 사업 등을 국가의 재정이나 공공기금을 통해 하기 때문에, 이 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이 땅장사·집장사에 많은 역량을 소진하진 않는다.

다시 쪼개자? 뻔한 부작용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10일 부산에서도 규탄행동이 펼쳐졌다. 대저신도시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진보당 청년, 노동자 당원들이 이날 부산시 LH부산울산지역본부를 찾아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 "도둑놈 소굴 LH투기공사 처벌하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10일 부산에서도 규탄행동이 펼쳐졌다. 대저신도시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진보당 청년, 노동자 당원들이 이날 부산시 LH부산울산지역본부를 찾아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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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 사업은 주택도시기금의 재정지원과 LH가 땅장사·집장사 해서 번 돈(교차보조)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직접 기금지원을 하는 사업은 기초수급자 등 최소한의 계층에만 공급되는 영구임대에 한정된다. 나머지 대부분은 1~2%의 저리로 장기간 대여하는 금융지원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그나마 2015년 조성된 80조원의 주택도시기금 중 공공임대에 지원된 기금은 4조8000억원으로 6%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크게 늘긴했지만, 2019년 공공임대 지원 규모는 조성된 기금 74조5935억 중 9조5780억으로 12.8%에 불과하다. 2015년 기준 재정 투입도 2015년 7090억으로, 조성된 주택도시기금 80조원의 1%에 불과했다. 이후 2021년 3조2345억으로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기금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주거문제가 이렇게 심각하지만, 기금의 48%인 36조원은 사용되지 않고 그냥 이월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부동산 경기변동에 따라 기금의 주요 재원인 청약저축을 대량인출할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이 7%인데, 주택도시기금은 48%다. 이를 그냥 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내 재임 시에는 기금 규모가 줄지 않게 하겠다'는 기재부 관료들의 보신주의에 불과하다. 이렇게 재정과 기금지원이 박하니 LH가 고유목적 사업보다는 땅장사·집장사 해서 수익을 올리는 사업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업과 조직이 비대해질 수밖에 없는 사업 방식을 그대로 두고 LH를 2개, 4개로 쪼개자는 주장은 그 의도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치자는 주장이 대두된 것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경쟁적으로 택지공급사업을 벌여 사업의 중복이 많고 과도한 개발사업이 벌어지게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둘을 합치면 당연히 택지를 개발하여 매각하는 사업이 줄어들고 고유목적 사업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고유목적 사업 외에도 수익사업은 크게 늘었다.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공공임대를 건설하면 기금지원과 임대보증금이 모두 부채회계로 잡혀 공기업의 부채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공공임대 공급을 줄이게 했다. 대신 택지를 개발하여 민간에 매각하는 소위 "민간주도 공공사업"에 주력하라고 하면서 택지 매각이 크게 늘기도 했다.

사업방식을 바꾸지 않고 LH를 쪼개기만 하면 부작용은 뻔하다. 과거 토공과 주공이 분리됐을 당시의 비효율은 둘째 문제다. 두 공사의 경쟁 속에 불필요하게 과도한 개발이 일어나고 토공과 주공의 부채는 더 쌓이는 악순환이 재현될 수 있다.

해답은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직무대행(오른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LH직원 투기 의혹 관련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직무대행(오른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LH직원 투기 의혹 관련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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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부터 농지를 강제로 수용하여 그 토지의 40%를 민간건설사에 매각하는 사업방식을 중단하고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강제수용할 때는 공공임대 등 공익사업을 위해 수용한다고 하고, 나중에 민간에 택지를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은 강제수용의 목적에도 반한다.

토지비축은행 설립이 필요하다. 3기 신도시에서 민간에 매각하기로 한 40%의 택지도 토지비축은행이 매입하여 LH에 신도시 개발비용을 지원하고, 토지비축은행이 매입한 공공택지는 시간을 두고 지방개발도시공사나 LH에 매각하여 공공임대 공급 등에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재 35%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는 공공임대와 토지임대부 등 저렴한 공공주택의 공급비율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공공임대 공급에도 기금 불용액을 풀어 획기적으로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한다.

3기 신도시에서 공급되는 공공임대는 과거처럼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낡은 방식이 아니라 젊은 중산층과 취약계층이 함께 입주하는 서구유럽식의 공공임대주택이 되어야 한다. 신도시 한 구석에 성냥갑처럼 짓는 공공임대가 아니라 역세권에 외관디자인은 물론 커뮤니티 시설 등을 개선하여 젊은층이 선호할 수 있는 공공임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공임대 공급에도 기금 불용액을 풀어 획기적으로 재정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LH 비리를 이유로 3기 신도시를 민간개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정말 무책임한 주장이다. 민간 건설사들이 뛰어들면 서로 경쟁적으로 토지를 비싸게 매입하여 토지가격이 상승하고 토지 투기를 한 투기꾼들에게 떼돈을 안겨 성공한 투기를 만들어 줄 뿐이다. 이렇게 되면 공급되는 주택의 분양가격은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올라버린 비싼 주택 대신 3기 신도시에서 공급되는 부담가능한 가격의 분양주택으로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있는 젊은 중산층 서민들의 꿈은 좌절하게 된다.

서구유럽의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의 공공임대 비율이 대부분 15% 수준을 넘지만, 한국은 매 정권마다 공급확대를 공약했음에도 공공임대 비율이 여전히 6%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신도시야말로 획기적으로 질 좋은 공공임대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회인데, 이를 민간개발로 전환하면 공공임대가 제대로 공급될 리 없다.

획기적인 공공임대 확대 + 부패방지시스템

LH 내부에서 개발되는 공공택지에 대해서는 지구지정 3~4년 전의 토지거래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LH직원들의 토지거래가 있었는지 점검하는 부패방지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또 LH 직원들은 토지거래를 하지 않고 토지거래 조사에 협력하며 토지거래가 확인되면 회사의 매각명령에 응하겠다는 청렴서약을 해야 한다.

지난 24일 공직자의 투기에 대해서는 투기이익의 규모에 따라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게 하고 투기이익의 3~5배까지 부과하는 공공주택특별법이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공직자가 공직을 청렴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청렴의무에 반하여 투기를 하면 이해충돌방지법에 의해 형사처벌도 받게 해야 한다.

앞으로는 공직자가 투기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사회적 신뢰가 생겨야 한다. LH가 신도시 사업을 수행하더라도 이를 이용한 공직자의 투기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신도시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지난 4일 오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강 신호등이 켜져 있다.
 지난 4일 오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강 신호등이 켜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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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LH,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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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참여연대 정책위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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