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해전야>에서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 래환 역을 맡은 배우 유태오.

영화 <새해전야>에서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 래환 역을 맡은 배우 유태오. ⓒ 에이스메이커


'독일교포 출신인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 영화 <새해전야> 속 래환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설명해 볼 수 있지만 작품에서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만들어 내는 건 온전히 배우의 몫이다. 저마다의 해석과 접근법이 있겠지만 배우 유태오가 이 역을 맡았다는 건 배우 개인에게도, 영화에게도 모두 긍정적으로 보인다.
 
9명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사랑하기도 하고 스치기도 하는 <새해전야>에서 래환은 오월(최수영)과 오래 연애한 기성 커플로 등장한다.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인 래환과 오월을 두고 사람들은 세기의 사랑인 양 칭찬하기도 하고, 역경을 극복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모두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어렵고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에 기댄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래환과의 만남, 그리고 유태오
 
러시아에서 전설인 록 뮤지션 빅토르 최를 다룬 <레토>로 칸 영화제를 경험한 뒤, 한국에서 여러 드라마, 독립예술영화에 출연해 온 유태오는 마침 로맨스 장르가 고팠다. <결혼전야> 이후 속편 격을 내놓은 홍지영 감독의 부름이 그래서 반가웠다고 그는 고백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느꼈을 좌절감,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이 아닌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오랜 연인의 감정 등은 모두 유태오가 몸소 겪었던 삶의 일부에서 충분히 꺼낼 수 있는 재료로 보인다.
 
"수영씨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로 공개된 연애, 공개된 결혼이지 않나. 그래서 연기할 때 좀 더 편안함이 있었다. 오랜 시간 한 파트너와 관계를 쌓아온 여유랄까. 영화에 나오는 다른 커플들은 이제 막 알아가거나, 약혼 과정에 있는 단계인데 관객분들이 우리 커플을 가장 편안하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잘 표현된 것 같다.
 
래환이 패럴림픽 선수다 보니 여러 자료를 보고, 나름 연구도 했다. 래환의 모델이 된 실제 선수가 있다. 박항승 선수인데 그분이 영화 제작 단계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영화에도 잠깐 출연하신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조사해보니 운동하다가 사고를 당해 신체적 장애를 겪는 분이 많더라.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체성을 찾은 뒤 운동하시는 분들이기에 너무 고립되거나 무겁게 연기할 순 없었다. 오월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 거기에 몰입하려 했다."

 
영화에서 래환은 독일어를 섞어 쓰는 독일 교포 출신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실제로 유태오가 나고 자란 환경과 관련 있다. 파독 광부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까진 농구선수를 꿈꾸며 운동을 해왔다. 그러다 무릎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게 됐고, 독일과 미국, 영국을 거치며 배우의 꿈을 새롭게 품고 자신을 다듬어 왔다.
 
"그런 과거의 경험이 이번 연기에 도움이 됐다. 물론 감히 패럴림픽 선수분들만큼의 육체적 고통은 아니었겠지만, 정말로 꿈꿨던 한 분야에서 좌절을 겪었기에 심적으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어 대사를 이렇게 길게 한 건 처음이다. 한국어였는데 감독님께서 제게 맞도록 대사를 제가 직접 번역했다.
 
사실 전 어떤 배역을 맡든 촬영 전에 제 대사를 모두 손으로 써 본다. <레토>를 할 때 배운 건데 제 대사가 다 러시아어였거든. 저만의 소리법으로 대사를 써서 읽어본 뒤 그 방법을 다른 작품에도 적용하고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는 게 일종의 몸을 통과하는, 소화하는 느낌이더라. 그리고 캐릭터가 왜 그런 대사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인물의 이력서가 제 안에 만들어진다. 그렇게 하고 현장에 나가면 스스로 내 몸에 캐릭터가 베어 있다고 믿는다."

 
더불어 유태오는 오월과 래환이 세간의 편견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사랑을 키워가는 설정에 강한 공감을 드러냈다. "사랑하게 되면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사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오월-래환 커플이 그런 걸 잘 표현한 것 같다"며 그는 "물론 한국 문화에서 그게 어려운 면은 있지만 두 사람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랑의 긍정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새해전야> 관련 이미지.

영화 <새해전야> 관련 이미지. ⓒ 에이스메이커 무비웍스


"연기로 두 번째 인생 살게 돼"
 
유태오는 여전히 국내에선 미지의 영역이다. 스스로도 그걸 인식하고 있어 보였다. 아시아인으로서 NBA 무대에 도전하고 싶었던 17살 소년은, 어느덧 연기적으로 무르익고 있는 청년이 돼 있었다. 특히 국제 무대에서 한번 인정받고 한국에 정착한 뒤, 유태오는 여전히 강렬한 연기적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연기는 날 다시 살게 한 존재"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항상 연기에 배고픈 것 같다. 제가 서른아홉이 되고 나서야 한국에서 대중적 관심을 얻게 됐는데 지금의 이미지대로 사람들은 절 받아들이잖나. 50살이 넘으면 제 외모 역시 변할 텐데 거기에 맞는 캐릭터는 뭘까 생각을 많이 한다. 동양에서 생각하는 동양미와 서양에서 생각하는 동양적 미와는 다르거든.
 
미국에선 대니얼 대 킴, 스티븐 연이 인기가 많다. 근데 아시아에선 강동원, 현빈, 원빈 등이 인기 많다. 동서양 공통으로 어필할 수 있는 걸 엄청 고민하고 있다. 물론 이소룡, 성룡, 이연걸 등이 있었으나 장르적으로 한계가 있었지. 그나마 조금 넓게 사랑받은 게 주윤발 정도였다. 동서양 고루, 그리고 넓은 범위에서 인정받은 롤모델을 찾고 있는데 1970년대의 율 브린너(yul brynner)가 있더라. 계속 연구 중이다(웃음).
 
독일에 있을 때부터 제 환경이 미술, 연기 등 문화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노동자 계급 2세이기에 자연스럽게 운동하고, 털털하게 살아왔다. (선수생활을 접고) 나중에 연기하게 됐을 때 제가 연기를 찾은 게 아닌 연기가 절 찾았다고 느꼈다. 운명적 만남인 것 같다. 배우라는 건 절 살려준 직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깊은 의미가 있기에 유태오는 계속 본인의 부족한 점을 고치고, 생각을 확장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오랜 외국 생활로 살짝 어눌한 한국어 발음도 최근 들어 부쩍 달라졌다. 유태오는 "교포 역할 전문 배우가 되는 게 두렵다"며 "보편적 연기를 할 수 있게 항상 노력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출연 후 여성 팬분들이 엄청 늘었는데 남성분들께도 어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유태오 새해전야 최수영 패럴림픽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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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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