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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유달리 힘들게 등교하는 아이가 있어 이야기했다.    

"너 어디 아프니?"
"아파요. 선생님."
"그럼 왜 등교했어. 집에서 쉬어야지?"
"수행평가 때문에요..."


바야흐로 지금 학교는 수행평가 시즌이다. 학년 별로 3주에 한 주씩 등교하기 때문에 이번 주에 하지 않으면 3주 후에 해야 하는데 그때는 지필 평가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이날은 금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수행평가가 더 많다. 

아프면 학교 안 오는 게 맞지 않나요?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3차 등교개학일인 6월 3일 오전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초등학교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3차 등교개학일인 6월 3일 오전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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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과목이 수행평가를 하니 아이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등교 전 집에서 핸드폰으로 자가진단을 해서 등교 중지로 판정되면 성적 등에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안내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꾸역꾸역 등교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등교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말했다.    

"그럼 수행평가 끝나자마자 조퇴해."
"(수행평가가) 마지막 6교시예요."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먼저 시험 보면 안 되는지 여쭤봐."


아무 대답 없이 열화상 카메라 앞을 통과하는 것을 보니 조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것 같다. 6교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점수가 뭐길래 저런 몸으로 버티려고 하나? 착잡했다. 등교 지도를 마치고 이 일을 이야기하니 선생님 한 분이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3학년에선 이번 주 월, 화, 수, 목 4일간 코로나 19 가정학습을 쓴 아이가 있어 혼났어요."
"왜요? 아프면 안 오는 게 맞잖아요?"
"글쎄, 얘가 카톡으로 자긴 다른 아이들 수행 평가하는 거 보고 준비해서 오늘 수행 평가받는다고 했대요. 그럼 점수 잘 받을 수 있다고."
"아파서나 코로나 19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해서가 아니라 진짜 점수 잘 받으려고 그랬다고요."
"네, 같은 문제로 수행평가를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출제 경향을 파악해서 준비하면 유리하다고 생각한 거겠죠. 모르긴 몰라도 대학 입시 때문에 성적이 더 중요한 고등학교에선 코로나 19를 이용한 편법이 더 많을 거예요." 


맞다. 입시 부담이 적은 중학교가 이런 데 고등학교는 오죽하랴 싶었다. 아픈 데도 수행평가 보러 오는 아이를 칭찬할 수도, 아프지 않은 데도 수행평가를 보지 않는 아이를 탓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이 아이들 모두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현명한' 방법으로 살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3교시 끝나고 아픔을 참고 등교한 아이를 찾아가 보았다. 다행히 견딜만하단다. 안쓰럽지만 마땅히 해줄 게 없어 조퇴해도 성적 손해 보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더 아프면 조퇴하라는, 들을 것 같지 않은 말만 해주고 왔다.

방역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통제하다 보니 학교의 본래 기능은 많이 위축되어 버린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 책으로, 시험으로, 수업으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랑 몸을 부딪치고 수다를 떨며, 선생님들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기도 하고 때론 선생님의 썰렁한 농담에 추워하며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원격 강의의 '편리함'에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등교하는 이유가 아닐까? 원격 수업의 장점과 그 불가피성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원격 수업이 길어질수록 아이와 선생님 간의 관계 형성 같은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점수라는 이름으로 그런 기회들이 더 박탈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태그:#코로나19, #학교 방역, #관계 형성, #수행평가, #학교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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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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