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의 시간>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영화 <사냥의 시간>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 넷플릭스

 
어쩌면 배우 이제훈에게 <사냥의 시간>은 초심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였을지 모른다. 윤성현 감독의 10년 전 작품 <파수꾼>의 주연을 맡았던 그가 다시 윤 감독과 만났기 때문이다. <파수꾼> 이후 이제훈은 말 그대로 스타성을 입증해가기 시작했다. 독립영화계에서 연기로 주목을 받던 그를 일반 대중이 알아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감독은 이제 막 두 번째 작품을 내놓았고, 이제훈은 그새 많은 작품을 경험했다. "작품 수로만 치면 제가 선배 아닐까"라고 농담 섞인 말을 하면서도 이제훈은 윤성현 감독과의 작업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 시스템이 무너진 2030년대 말 디스토피아가 된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사냥의 시간>에서 이제훈은 두 친구와 함께 큰 범죄를 공모하는 준석 역을 맡았다.

연장선과 초심

"<파수꾼> 이후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서로 많은 걸 공유해왔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파수꾼>에선 정서적으로 스스로 압박을 많이 했다면 <사냥의 시간>에선 쫓기고 죽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표현해야 하기에 많은 걸 상상했다. 학창시절 등하굣길에 돈을 뜯겼던 경험부터 공포에 사로잡힌 순간을 찾아 집중하려 애썼던 것 같다. 중간엔 너무 힘들어서 지치기도 했고, 뭐 하자고 내가 여기서 준석을 연기하고 있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동료 배우, 스태프와 감독님 덕에 잘 유지할 수 있었다.

<파수꾼>이 없었으면 제 배우 인생은 어땠을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사실적 연기, 메소드적 접근을 윤성현 감독님을 통해 많이 깨달았다. 제 연기 뿌리를 내리는 데에 감독님이 굉장히 중요하지. 전 여러 작품을 했는데 감독님은 이제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얼마나 현장에 나오고 싶었을까. 작품 수는 적지만 다시 현장에서 만났을 때 감독님이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졌다는 걸 느꼈다. 서로 타협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 시너지가 이번 영화에 담겼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이제훈은 "<사냥의 시간>을 하루빨리 관객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열정을 쏟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박정민, 조성하 등 <파수꾼>에서 호흡 맞췄던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것도 그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와 함께 이제훈은 스스로 느낀 영화 속 메시지를 나눴다.

"아마 배우들 면면을 보고 <파수꾼>의 연장선처럼 느끼는 분도 계실 거다. 특히 박정민 배우와 연기할 땐 옛날 현장 생각이 나더라. 조성하 선배님은 그때 아버지로 나왔는데 여기선 총을 빌려주는 형님으로 나온다. 이런 인연이 참 재밌는 것 같다(웃음). 그래서인지 애드리브도 꽤 있었다. 감독님 역시 열어두고 아이디어를 수용해주셨다. 자동차에 페인트를 칠하는 장면이나 상수(박정민)를 몰아세울 때 등은 모두 애드리브로 이뤄졌다.

동시에 <사냥의 시간>은 서로 쫓고 쫓기는 심리스릴러기도 하잖나. 우릴 쫓는 한(박해수)이라는 존재가 은유적으로 어떤 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회피하고 도망가려 해도 결국 맞설 수밖에 없는 게 신의 섭리라면 용감히 맞서야지. 우린 인생을 결국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관객분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양한 해석을 환영한다."


디스토피아를 벗어나 유토피아로
 
 영화 <사냥의 시간>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영화 <사냥의 시간>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 넷플릭스

 
이 대목에서 이제훈은 희망을 말했다.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 전과도 있어서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청년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 그리고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겠지만 영화 속 그들의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며 그는 "현실을 사는 모든 사람은 후세의 희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지금 세대는 글렀어. 미래는 더 우울할 거야 생각하기 쉽지만 전 세상이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유행 사태를 이겨내면서 뭔가 희망을 느낀다. 예상할 순 없어도 희망을 갖고 사는 게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그래서 영화 속 세 친구를 응원해주고 싶다."

실제 삶에서도 이제훈은 나름의 꿈과 희망을 품고 있었다.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건 제작사를 차리고 구체적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사냥의 시간>이 극장 공개가 아닌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면서 영화산업 전반의 변화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넷플릭스 개봉은 지금 상황에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여러 OTT 서비스를 즐겨 본다. 시대가 많이 바뀌는 걸 이 산업에 있으면서 많이 느낀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젠 10분, 3분분량의 콘텐츠도 영화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유연하게 받아들여 저 역시 변화에 발맞춰야겠다고 생각을 다지는 중이다.

부자가 될래 배우를 계속 할래 누군가 묻는다면 전 후자다. 영화를 꿈꾸며 살았으면 좋겠다. 돈은 수단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영화 얘길 사람들과 꾸준히 하는 세상이다.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시네마테크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서 관객과의 대화도 하고 영화 상영도 하고 싶다. 제작사를 차린 것도 어느 순간 자의 반 타의 반 배우를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다 시작했다. 계속 영화 생각만 하고 있더라. 조명이나 촬영 스태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자가 되어 많은 사람과 영화적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떤 결과물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이건 내 영역이 아니라며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 영화에 대해선 그만큼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역할 못지않게 양질의 콘텐츠가 나올 수 있게 하는 일원이 되고 싶다."
이제훈 사냥의 시간 파수꾼 박정민 윤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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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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