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MBC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한 박나래

2019 MBC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한 박나래 ⓒ MBC

 
개그우먼 박나래가 29일 밤 열린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유재석, 신동엽, 김구라, 이영자, 전현무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막내'가 거머쥔 상이기에 의미가 깊었다. 심지어 박나래는 MBC 연예대상에서만 무려 3수(2017년 전현무, 2018년 이영자) 끝에 정상을 밟은 것이라 그 의미가 더 남달랐다. 

사실 그간의 활약상을 감안하면 박나래의 대상 수상은 오히려 뒤늦은 감도 없지 않았다. 냉정히 말하면 박나래는 올해 MBC에서 활약상(<나혼자산다>, <구해줘 홈즈>)만 놓고 봤을 때는 예년만 못했고, 특히 올해는 '유산슬' 신드롬을 일으킨 유재석(놀면 뭐하니)이라는 '거물'이 유력한 경쟁자였기에 더욱 쉽지 않아 보였다. 매년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미소를 보이며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듯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결실이기에 박나래는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오열했다. 수상 소감도 박나래답게 솔직했다. "이 상은 제 상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너무 받고 싶었다. 나도 사람이니까"라고 고백했다. 이어 "제 키가 148cm인데 한 번도 제가 높은 곳에 있다 생각해본 적 없다. 저는 항상 바닥에서 여러분들을 우러러보는 것이 행복했다"며 자신의 작은 체구를 이용한 깨알같은 개그도 빼놓지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저는 착한 사람도 아니고 선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예능인 박나래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예능인이 되겠다"는 의지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하며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대기만성'의 표본인 예능인 박나래

박나래는 연예인으로서 대기만성의 표본이다. 아직 30대에 불과하지만 그는 무려 17년이란 방송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10대 여고생이던 시절 SBS <진실게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짜 무속인'을 연기하며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정식 데뷔도 하기 전이었지만, 진짜 무속인들과 평가단 사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정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연기를 해냈던 당돌한 소녀의 '끼'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이후 박나래는 상명대 연극과와 개그동아리를 거쳐 KBS 21기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예능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는 공개 코미디<개그콘서트>의 전성기 시절이었고, 박나래는 데뷔 초기부터 '봉숭아학당', '패션 넘버5'같은 인기 코너에 출연하며 빠르게 얼굴을 알렸다.

신봉선, 오나미, 이국주 등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선후배 여성 예능인들과 마찬가지로, 박나래 역시 초기에는 유난히 작은 체구와 개성강한 발성같은 튀는 외모를 앞세운 <개콘>의  '못난이' 대표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여성 예능인에게 외모 개그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대중에게 빨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는 효과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한 가지 이미지로 고정되거나 더 빠르게 소비되기도 쉽다.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비호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사실 박나래는 초창기에 어설픈 정극스타일이 뒤섞인 연기력까지 도마에 오르며 어려움을 겪었다. 박나래는 이미지 변화를 위하여 성형수술까지 단행했지만. 대중은 물론 동료들에게서까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나래는 약점이나 흑역사가 될 수 있었던 부분까지 자신만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길을 택했다. '실패한 성형미인이 아닌, 성형인'이라는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한층 수위 높은 자학 개그를 선보이는 역발상 전략이었다. 또한 가뜩이나 작은 체구와 튀는 외모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파격적인 패션과 분장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른바 안영미-장도연 등과 함께 기존 여성 예능인들의 표현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 '뻔뻔하고 독한 개그'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대중들도 조금씩 알게된 박나래의 매력
 
 넷플릭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공연 모습

넷플릭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공연 모습 ⓒ 넷플릭스


초창기 박나래를 부담스러워하던 대중들도 조금씩 그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놀리던 자신을 '미녀 개그우먼'이라고 소개하는 당당함과 자기애, 정작 프로그램 내에서는 귀여운 허세를 부리다가 매번 자기가 먼저 당하는 '샌드백' 역할이 주는 반전 매력, 부담과 웃음의 경계선에서 적절히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알게된 개그 코드의 변화 등은 과도기의 박나래를 성장시켰던 요소들이다. 특히 누구와 호흡을 맞춰도 자신보다 동료들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케미'가 서서히 인정을 받으면서 박나래는 차츰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쉽게 잊히지 않고 중독성 있는' 캐릭터로 차츰 진화해 나갔다.

무엇보다 박나래가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건 고정된 이미지나 영역에 안주하지 않았던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한때 인기를 끌었던 예능인들도 '원히트 원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박나래는 2010년대에 접어들며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개그콘서트>를 떠나 <코미디 빅리그>에 도전한 것을 비롯하여, 이후 뮤지컬, 패션, 관찰예능, 라디오, 1인 스탠딩 코미디와 MC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다. 물론 박나래의 출연작들이 모두 성공하거나 평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해볼 만한 것'을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는 용기는 결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박나래를 'MBC의 딸' 이미지로 굳힌 예능 <라디오스타>와 <나혼자 산다>는 오늘날 그녀가 여성 대중 예능인으로서 독보적인 인물이 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박나래는 <라디오스타>에서 수위를 넘나드는 19금 토크와 비방용 몸개그로 연출된 설정이 아닌 '자연인 박나래'의 매력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출연자 개개인의 독립된 에피소드 위주로 꾸려지던 <나혼자 산다>의 정체성을 팀 플레이 위주로 바꾸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박나래다. 

수많은 출연작 중에서도 인간 박나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프로그램은 바로 <나혼자 산다>일 것이다. 그는 '나래바' 등 자신만의 당당한 여성 싱글라이프를 공개하며 다재다능한 재주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공개 연애 후유증으로 하차한 전현무의 뒤를 이어 모임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MC로도 활약중이다. <나혼자산다>는 <무한도전> 종영 이후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었던 MBC에서 몇 년째 부동의 간판 장수 예능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박나래의 공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박나래는 30대 중반에 불과한 젊은 나이에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예능인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누구는 여전히 그녀의 성적인 개그나 분장쇼가 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누구는 진행자로서 안정감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박나래는 여전히 '성장·진화중인 예능인'에 더 가까우며 지금까지의 모습이 그가 보여줄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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