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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만의 전유물 같은 아이돌. 새로 나온 아이돌 이름이 낯설기만 한 어른들에게도 아이돌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전 세계에 한류가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중심에 케이팝(K-pop)이 있다는 취지의 뉴스를 여러 매체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주에는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이 빌보드(BILLBOARD)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으로 시끄럽다. 타이틀 곡인 'IDOL'은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는 뉴스도 이어졌고. 같은 해에 2회 이상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뮤지션들의 면모를 보니 그 가치와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굳이 비틀즈나 에미넴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몇몇 아이돌 팀이 빌보드 차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뉴스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메인 차트가 아니고 하위 차트인 '인터내셔날' 차트에서도 'Billboard Korea K-Pop 100' 부문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하위의 하위 차트. 대략 그 시점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음악들이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물론 하위 차트라도 한국의 대중음악이 별도로 집계되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더 대단한 건 메인 차트에서도 메인에 올랐다는 거다.
 
2017년 12월 10일 고척 스카이돔 라운지에서 방시혁 대표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빠짐없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2017년 12월 10일 고척 스카이돔 라운지에서 방시혁 대표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빠짐없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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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제작한 프로듀서도 주목받고 있다. 오랜 기간 믿음을 갖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준 탁월한 안목의 프로듀서. 그는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이런 뉴스를 접하니 20년 전이 새삼 떠올랐다.

음반 100만장 판매가 가능했던 시절

나는 1998년부터 2002년 월드컵 즈음까지 모 음반회사에서 일했다. 정확히는 음반 유통회사로 지금으로 얘기하면 '멜론'의 모회사처럼 여러 제작사를 소유 혹은 지배하여 음원을 확보해 각종 플랫폼에 공급하는 회사였다.

다만 당시 우리 회사는 음원이 아닌 음반, 즉 CD와 '카세트테이프'를 전국의 음반 도매상을 통해 유통하는 회사였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유통. 규모가 커서 운 좋게 상장하기도 했지만, 그 후 여러 플레이어의 활약 끝에 조용히 상장 폐지된 회사다. 이름 밝히지 않는 사연 많으니 이해를.

90년대는 음반 유통이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제작사로부터 유통 비용으로 도매가의 15%를 관행적으로 받았고 그 음반에 투자까지 하면 그 비율은 계약하기 나름이었다. 투자하면 제작자가 되니 도매상에 뿌린 물량 전체가 매출로 잡혔다.

10만 장 판매는 흔했고 100만 장 이상 판매한 음반도 있던 시절이다. 단가를 만원으로 잡아 계산해 보라. 신인도 최소 5천 장 이상 판매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전국의 음반매장이 5천 개가 넘던 시절이니.

나는 음반 제작과 녹음 스튜디오를 관리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제작하거나 투자한 여러 음반이 만들어진 과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주로 90년대를 풍미한 발라드와 댄스 음악을 작곡한 프로듀서들이 참여했고, 그들보다는 젊고 튀는 프로듀서도 있었다. 그 유명 프로듀서들은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출연하기도 했다. 전설이라는 건 현재진행형이 아니다. 과거라는 것.

당시 젊고 튀었던 프로듀서는 현재 한국 음반계를 대표하는 회사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고, 그와 함께 작업한 더 어렸던 작곡가는 지금 뉴스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프로듀서 J와 작곡가 B의 팀워크

그 프로듀서 J는 당시에 가수로서도 얼굴을 알린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눈에 띄는 외모와 퍼포먼스로 대중의 뇌리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그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당시에 유행한 일본 스타일의 발라드와 댄스 음악에서 벗어나 좀 더 팝 음악 같은, 정확히는 흑인의 소울을 한국적인 소울과 결합하려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항상 작곡가 B가 있었다. 그 둘은 팀워크가 훌륭했던 팀으로 기억한다.

작곡가 B는 프로듀서 J가 흥얼거리면 즉석에서 받아적었고 다음 날에는 완성된 편곡을 들려주었다. 때론 작곡가 B가 써온 음악을 프로듀서 J가 이런저런 의견을 보태어 완전히 다른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 당시 음반에 두 명이 공동 작곡한 곡이 많은 이유다.

그들은 질문이 많았다. 전설로 남은 프로듀서들은 곡 모니터링을 부탁하곤 "좋네요"라는 평가를 들으면 "그렇죠?"라며 만족해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J와 작곡가 B는 "어디가 좋은 거죠?" "베이스기타 라인을 이렇게도 해봤는데요···." 질문이 많으니 해답이 좋아지는 건 당연.

그들이 만든 음반은 다른 프로듀서의 그것과 비교해 퀄리티 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났다. 당시 대중들은 다르게 판단했을 수도 있었으나 그 이후 평가를 보면 그렇다는 얘기.

그런 프로듀서 J가 사업 확장을 했다. 이미 본인 회사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자신의 브랜드를 펼치고자 한 것. 자연스럽게 작곡가 B와 회사에서 매니지먼트 책임자로 있던 H가 합류해서 우리 회사 근처인 청담동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최신 녹음실과 작업실, 그리고 연습실을 갖춘 건물로. 그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때가 2002 월드컵 즈음으로 나는 다른 회사의 오퍼가 있어서 업무 정리를 하던 중이었고 회사도 여러 잘못된 결정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음반업계를 떠났고 얼마 후 걸출한 신인이 등장한 걸 보았다. 예전 프로듀서 J가 녹음하러 올 때 자주 보이던 예의 바르고 키가 큰 청년이었다. 나는 그 청년이 그렇게 '나쁜 남자'인 줄 몰랐다. 이후 그들의 소식을 가끔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프로듀서 J를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들은 지난 20년 가까이 한국 음악 산업을 흔든 큰 축이었다. 그 몇 년 후 작곡가 B와 매니저 H는 각자의 회사를 차렸다.
 
SBS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6> 제작발표회가 2016년 11월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사옥에서 열렸다. 박성훈 피디와 심사위원 양현석, 박진영, 유희열이 참석해 마지막 시즌에 관한 설명을 비롯,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 <케이팝스타6> 제작발표회 SBS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6> 제작발표회가 2016년 11월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사옥에서 열렸다. 박성훈 피디와 심사위원 양현석, 박진영, 유희열이 참석해 마지막 시즌에 관한 설명을 비롯,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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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프로듀서 J는 JYP, '박진영'이고 작곡가 B는 '방시혁'이다. 그리고 H는 '큐브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 비스트와 포미닛을 제작한 '홍승성' 회장이다. 세 회사 모두 한 획을 긋거나, 긋는 중이다.
 
  표지
▲ 박진영의 자서전 <미안해>   표지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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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필 사인
▲ 박진영의 자서전 <미안해>  자필 사인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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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따라 옛 흔적을 찾아보는데 1999년에 박진영씨가 준 자서전이 나왔다. 당시 량현량하 앨범 막바지 작업으로 바쁜 와중이었는데 언제 책까지 냈나 싶었다. 그 안을 찬찬히 넘겨보니 음악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한 청년이 느낀 벽과 고민이 읽혔다.

당시에 그들을 보며 그 누가 지금과 같은 20년 후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혹은, 지금 어린 뮤지션들을 바라보며 10년이나 20년 후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옛 흔적을 정리하며 GOD 등 사인 받은 음반을 거의 찾았지만 박지윤씨가 직접 사인해준 '성인식' CD와 포스터는 못 찾겠다. 이사할 때 아내가 버렸나.
 
  멤버들의 사인이 담겼다.
▲ GOD 4집  멤버들의 사인이 담겼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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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20년전 그들은, #박진영, #방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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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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