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 변혁 감독 영화 <상류사회>의 변혁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상류사회' 변혁 감독 변혁 감독 9년 만에 신작 <상류사회>를 들고 대중과 만난다. ⓒ 이정민


시작은 1956년 등장한 한형모 감독의 흑백영화 <자유부인>이었다. 9년 만에 대중 앞에 영화 <상류사회>로 서게 된 변혁 감독은 그 이야기를 마중물 삼아 자신의 관점을 담았다고 말했다. 감독은 여기서 시점을 확장해 한 여성, 그리고 그의 남편을 중심으로 상류층과 거기에 진입하려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러나 언론에 선 공개된 뒤 영화는 몇 가지 지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대형 미술관 부관장인 수연(수애)과 경제학 교수이자 정치 신인이 된 태준(박해일)의 캐릭터성과는 별개로 과한 성적 묘사, 특히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게 주다. 지난 28일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감독을 직접 만났다.

중산층의 욕망들

"지금의 시나리오랑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2013년 무렵에 <자유부인>이란 흑백영화를 현대무용과 미디어아트에 접목해 공연을 올린 적이 있다. 이걸 현대화할 생각을 하면서 부부 이야기로 확장하면 이 시대를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 영화의 시작점을 말하자면 그때라고 할 수 있다." 

'60여 년이 지난 현재, 특히 강남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 감독이 안고 간 화두였다.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수연과 태준의 모습과 함께 영화엔 흔히 TV나 인쇄 매체에서 볼 법한 재벌가, 정치인의 이미지가 재현돼 있었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요즘 사회에서 이런 소수 층위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상류층을 묘사하고 집중한 한국 영화들이 여럿 나오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 변혁 감독이 길게 설명했다.

"물론 영화에 재벌과 정치권 수뇌부가 나오긴 하지만 주인공은 강남 전세 아파트에 사는 부부다. 대학교수와 큐레이터로 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는 중산층이라 얘기하잖나. (영화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분신을 시도하는 노인 등 생존과 관련한 사람들도 나온다. 그 맥락에서 꽤 많은 사람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밑바닥에서 시작해 성공하는 고전적 플롯이 갖는 에너지가 있는데 전 2, 3등이 1등이 되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부관장인 수연이 관장이 되려고 발악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각자의 세상에선 그게 중요한 문제다.

실제 사건을 모델로 삼은 건 없다. 태준과 비서의 관계에서 안희정 전 지사의 사건이 보인다는 분도 있는데, 아시겠지만 이미 그 일 전에 영화 편집이 마무리 단계였다. 또 극 중 재벌 한용석 회장(윤제문)의 모습도 우리가 이미 접한 재벌 갑질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넷을 조금만 살펴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영화에선 AV 배우라 묘사되진 않지만, 한 회장이 일본 배우를 불러 그런 행위(예술을 가장한 섹스)를 하는 것도 일종의 재벌의 허영을 위한 맥락이었다. 스스로 재벌이자 예술가로 생각하기에 일본에서 잘나가는 스타를 선택했을 것이라 본다." 


'상류사회' 변혁 감독 영화 <상류사회>의 변혁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점은 흑백영화 <자유부인>이라 할 수 있다." ⓒ 이정민


정사신 묘사... "오히려 반대로 생각"

실제 AV배우 하마사키 마오 출연에 대해 감독은 "한 회장의 위선과 추악함을 보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현재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하마사키 마오는 하루의 시간을 빼서 흔쾌히 촬영했고, 다음 날 서울 홍대입구 인근에서 팬미팅도 가졌다는 후문.

바로 이어지는 질문을 던졌다. 신체의 소모적 이용과 여성의 대상화 문제에 대해 변 감독은 자세히 답했다. <상류사회>에 나오는 보수정당 수뇌부는 태준을 끌어들이기 위해 거리로 나앉은 상가 노인을 이용하는 등 머리를 쓰지만, 수연과 태준의 비서는 일종의 몸 로비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 남성은 목적을 위해 머리를, 여성은 몸을 쓰는 것처럼 묘사해 비판받을 여지가 큰 것.

"시나리오를 쓸 때 오히려 전 반대로 생각했다. 큐레이터로서 수연이 자기 욕망을 위해 먼저 하는 게 언론사를 통해 기사를 내는 것이지 않나. 그리고 돈세탁을 위해 파리에 가고. 심지어 한 회장에게 몸 로비 하러 가는 것조차도 머리를 쓰는 것이다. '드레수애'(드레스가 잘 어울리기에 붙은 수애의 별칭)라 불리는 배우임에도 영화에선 거의 검은색 팬츠를 입는 등 한 번도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적들이) 어쩌면 저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렇게 읽힐 수도 있다. 반대로 몸은 왜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일까? 물론 지나치면 안 된다. 영화에서 몸을 전시적 효과로 쓰지 않는다. (정사신이) 강하게 묘사된 게 한 회장과 일본 배우 장면인데 레스토랑이나 회의실 장면처럼 한 회장으로선 자신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조명 또한 밝게 했다. 일반적인 사무실 신이라고 생각하며 찍었다.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 쇼킹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한 회장의 몸을 보여주는 게 아름다워서 썼을까. 그의 추악함을 보이는 데에 유리하니까 쓴 것이지. 그래서 그의 뒤태가 걸리도록 찍었다. 물론 대사와 앵글로도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지만 몸 또한 그 캐릭터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비서와의 정사 장면 역시 질문하신 대로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태준이 자신의 선을 넘는 걸 보이는 장면으로 봤다. 비서가 욕망을 위해 몸을 쓴 거였다면 다음 장면에 그와 관련한 게 나왔겠지. 물론 큰 화면으로 보니 부담스럽긴 하더라. 제 입장에서 정당하다고 말해도 지금의 상황에선 민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논리나 정당성이 없었다면 안 썼을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 <상류사회> 관련 사진.

영화 <상류사회>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무래도 이런 논란의 면모를 상쇄시켜주는 게 배우들의 존재다. 박해일, 수애는 각각의 캐릭터가 품고 있는 어떤 추한 면을 설득력 있게 영화 안에서 쌓아갔고 효과적으로 말미에 터뜨렸다. 캐스팅은 그런 의미에서 변혁 감독에겐 좋은 한 수였음이 분명하다. 변혁 감독은 "박해일 배우는 안 그래도 영화 초반에 우려를 표하면서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태준이 갖고있는 풍성한 면모를 보이기 위해선 박해일씨가 딱이었다"며 "수애씨는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전했다.

"수연은 날이 서 있는 인물이었고, 장태준은 다소 유한 면이 있다. 수연만 중심이 됐으면 안 좋게 보였겠지만 부부가 중심에 서면서 서로가 중화된 게 있다." 

배우 운용과 현장에 대해 수애 역시 "감독님은 열려 있었고, 많이 대화할 수 있었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주홍글씨>에 참여한 뒤 2005년 사망한 고 이은주씨와 관련해 일부 누리꾼들은 사실상 강압적이었던 현장 분위기로 배우가 우울증을 앓았다며, 여전히 감독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2004년 한 매체가 변 감독과 이은주를 마주 앉히고 진행한 인터뷰 기사가 근거였다. 당시 기사는 두 사람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그대로 묘사해놓았다.

"그때 그 인터뷰는 저도 편한 마음으로 했던 인터뷰였는데 그런 파장을 가져왔다. 지금도 그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고인이 사망한 후) 5년, 10년이 지났을 때도 당시 일을 꺼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근데 기사가 계속 나오니까... (현장이 배우에게 강압적이라는 소문에 대해) 지금은 배우들의 장점을 잘 얻어가는 식으로 작업했던 것 같다. <주홍글씨> 때 한 장면을 두고 수십 번의 테이크를 갔다는 기사가 있는데 사실과는 좀...(다르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자세한 답을 피하며 조심스러워했다. 또 일부 인터뷰를 통해 "<상류사회> 개봉을 앞두고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이 가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법적 대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상류사회' 변혁 감독 영화 <상류사회>의 변혁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오히려 전 반대로 생각했다. 큐레이터로서 수연이 자기 욕망을 위해 먼저 하는 게 언론사를 통해 기사를 내는 것이지 않나. 몸이 아닌 머리를 쓰는 것이다." ⓒ 이정민


두 가지 화두에 대해

분명한 건 그가 선보여 온 작품엔 일종의 관통하는 화두가 있다는 사실이다. 욕망과 에로티시즘이다. 14년 전 영화로 보이려 했던 인간의 욕망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어떻게 변했을까.

"친한 분들이 영화를 본 뒤 저보고 욕망이나 죄의식에 대한 천착이 여전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영화에 그런 걸 다루려는 게 녹아있긴 하다. 심지어 <오감도>(2009)도 코미디지만 그런 게 담겨 있지. <상류사회> 수연을 통해선 그런 힘든 고민을 그만하자는 생각이었다. 민낯을 드러내고 편하게 살자였다. 조금은 전보다 유연해졌겠지만 비틀림, 뒤틀림이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재벌이 예술가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집착을 사랑이라 포장하는 것, 상승 욕구 역시 속으론 품고 있으면서 겉으론 관심 없는 듯 포장하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그래서 매번 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감독을 보면 부럽다(웃음). 다들 관심의 일관성은 있을 것이다. 저 역시 오랜만에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서래마을 유아 유기사건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살인을 가장 큰 범죄라고들 하는데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기가 죽인 것이다. 인간이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건지..."


변혁 감독은 에로티시즘이 대표적 욕망 중 하나임을 주지시켰다.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며 그는 "다만 너무 1차원이라 선명하게 드러나다 보니 (논란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쉽지 않은 무거운 주제였지만 변 감독은 "그럼에도 피식거리는 유머를 잃지 않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상류사회' 변혁 감독 영화 <상류사회>의 변혁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연을 통해 민낯을 드러내고 편하게 살자는 걸 말하고 싶었다. 조금은 전보다 유연해졌겠지만 (그간의 제 영화는) 비틀림, 뒤틀림이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 이정민



상류사회 변혁 박해일 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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