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상파 방송사 등을 통해서도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도 넘은 방송은 꾸준히 문제제기 됐다. 사진은 2015년 1월 개인방송에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KBS 뉴스 중 일부.

이미 지상파 방송사 등을 통해서도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도 넘은 방송은 꾸준히 문제제기 됐다. 사진은 2015년 1월 개인방송에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KBS 뉴스 중 일부. ⓒ KBS


#1 한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의 손을 무턱대고 붙잡는다. 이 여성은 어떻게 반응할까? 남성의 뒤편으로 카메라가 따라 붙어 여성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핀다. 아프리카TV 등에서 몰래카메라 장르로 상황 설정을 했다는 방송의 일부 내용이다.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나중에 인터넷 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헌팅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쟤한테 말 걸어봐" "쟤는 예쁘네" "쟤는 못생겼네" 등 지시와 외모 품평을 이어간다. 여성의 외모와 반응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2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카메라를 보고 앉아 서로 말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에게 무턱대고 명품 소가죽 핸드백을 사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남성은 "내가 언제 핸드백 사준다고 했느냐"면서 '철없는' 여성을 가르치거나 때로는 징벌한다. 여성이 남성을 일방적으로 착취한다는 전형적인 '김치녀 서사'를 방송으로 그대로 옮겼다. 이를 즐겨 보는 시청자들은 남성이 여성을 '참교육'한다면서 열광한다. 댓글을 다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청자들은 이 방송을 통해 '김치녀 서사'를 강화한다.

아는 사람은 너무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너무 모른다. 10~20대를 중심으로 최근 TV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유튜브 개인 방송'에 대해 말이다. 시청자들은 그 안에서 이를 테면, '보이루' 같은 의사소통 방식 등 내부에서만 알아들을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한다. 또 시청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개인 방송 등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SNS나 커뮤니티로 퍼져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지난 11일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가 한국여성민우회의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연속특강 BJ편에서 '인터넷 개인 방송과 혐오 표현'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강연에는 약 100명이 참석했다.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질문이 많이 쏟아졌다. 개인 방송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세대보다 10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김수아 교수는 최근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내 개인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성차별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들을 보여주면서 이 콘텐츠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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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TV 로고 ⓒ 아프리카TV


'안티 페미니즘' 성격 내세운 후 채널 구독자 증가해

몇 년 전부터 언론을 통해 개인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동시에 개인 방송은 각광받는 미래 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10대들은 장래 희망으로 개인 방송 제작자를 꿈꾸고, TV 속 연예인보다 유튜버(마이크로 셀레브리티)에 더 익숙해져 간다. 한국언론진흥재단(2016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4명 중 1명이 인터넷 개인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읽기 문화'보다 '보기 문화'가 더 익숙한 지금, 이들은 '여성 혐오'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먼저 학습하게 된다.

김수아 교수는 강연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차별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 개인 방송을 발췌해 조금씩 보여주면서 "성차별적인 개인 방송은 시청자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주로 보는 타깃 시청자들이 정해져 있고 이런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강연에서 문제적 개인 방송이 구체적으로 어떤 BJ의 방송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또 다른 '홍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었다.

이어 김 교수는 "이 제작자들이 최근 '셀프 브랜딩' 요소로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원래 방송 내용보다 안티 페미니즘이 장사가 된다는 걸 알고 채널의 성격을 바꾼 뒤에 뷰수도 2배 오르고 구독자도 늘어난 사람들이 있다"며 "비단 시청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런 채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사례로 든 소위 '헌팅 방송'(혹은 '야외 방송')은 이를 만드는 제작자도 문제지만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청자들 역시 방송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주체다. 따라서 TV 방송처럼 단순히 제작자에게만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남성중심적인 연대를 공고히 하게 된다.

또 이런 '헌팅 방송'의 경우 촬영 대상자의 허락을 받거나 신원 확인이 어려운 각도 등으로 찍으면 현행법으로는 아무런 문제없는 콘텐츠가 된다. 하지만 사실상 여성이 '볼거리화'된다는 점에서 성적 대상화가 될 수 있다. 김수아 교수는 단순히 이러한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를 '초상권 침해' 등으로 문제제기해서는 안 되고 정확히 '여성 혐오' 혹은 '성차별'로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로고

유튜브 로고 ⓒ 유튜브


예를 들어 '김치녀' 등의 혐오 표현을 유튜브나 아프리카TV에 '성차별'로 신고하고 싶어도 '성차별'이라는 신고 항목이 없기 때문에(차별 표현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당한 피해'로 한정해서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으로 신고할 수밖에 없다. 김수아 교수는 "성차별적 혐오 표현 역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는데 법제도 안에서 곤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는 '성차별'이 종교, 인종, 국적 등과 같은 혐오 표현의 주요 유형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 방송에 대한 대안이 있을까. 김수아 교수는 "원래 인터넷 개인 방송이라는 게 고급적인 것에서 벗어날수록, 기존 방송과 다른 저속성을 허용하는 콘텐츠일수록 환영을 받는다"며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이미 공고하게 형성돼 있다. 이미 문화가 널리 퍼져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러한 여성 혐오 콘텐츠가 TV만이 아니라 인터넷 방송에서도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 외에는 현재로선 특별히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다만 인터넷 개인 방송은 말 그대로 '누구나' 만들 수 있으므로 이러한 안티 페미니즘 방송에 '대항'하는 채널을 제작할 수도 있다. 김수아 교수는 강의 마지막에 '대항 발화 채널'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안티 페미니즘' 채널에 대응해 '페미니즘' 채널을 만들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많은 대항 발화 채널 제작자에게 ('안티 페미니즘' 채널 구독자들이) 혐오적인 댓글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항 발화 채널의 존재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미디어 속 여성혐오를 다룬 연속 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를 열었다. 지난 11일 마지막 특강으로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가 나와 '인터넷 개인방송과 혐오표현'를 다루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해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은 늦은 시간임에도 100명이 넘는 참석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미디어 속 여성혐오를 다룬 연속 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를 열었다. 지난 11일 마지막 특강으로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가 나와 '인터넷 개인방송과 혐오표현'를 다루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해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은 늦은 시간임에도 100명이 넘는 참석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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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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