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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어머니는 지난 2002년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어머니께서 새벽녘 밭에서 쓰러지셨을 때 곁을 지킨 것은 평소 키우시던 잡종견 한 마리뿐이었다. 그 잡종견이 어머니 주위를 맴돌며 맹렬히 짖어댄 탓에 동네 주민들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지셨다.

어머니는 16년째 와병 중이시고 병원, 요양병원, 요양원, 작은 아버지 집 그리고 우리 집을 포함해서 12번째 거처를 옮기셨다. 좋다는 병원, 좋다는 약, 잘한다는 요양원을 찾아다녔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신체를 움직일 수 없고, 나는 주말마다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에서 전화가 오면 놀라게 된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문자로 연락해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지경이다. 성격이 반대에 가까운 우리 모자는 어머니께서 건강하셨을 때 만큼의 빈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종종 다툰다.

지난 주말에만 해도 여름옷을 새로 사 갔는데 분실을 우려한 어머니께서 옷에 당신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여러 곳에 써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뭘 그렇게 유난스러우시냐'며 대판 싸우고 서로 얼굴을 붉힌 채 헤어졌더랬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는 상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하다. 혈육의 정도 정이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내 편이 되어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양보해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골프 라운딩을 하러 가는 것만큼 설레고 즐겁지는 않다. 요양원으로 발길을 향하게 하는 요인 중에는 '의무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뵙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보면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덤 앞에서 절만 하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대화를 실제로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말이다. 그 행복감의 절정은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질 때다.

부모님의 결혼 기념사진 속에 다소곳이 앞줄에 앉아 있는 여인은 누구인지, 내가 과자를 사 먹겠다고 달려가다가 개울에 빠져 머리를 다쳤을 때 어떻게 병원에 옮겨졌는지,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어떤 반응이셨는지 등에 대한 답은 오직 어머니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

<어머니에게 드리는 100가지 질문> 표지 사진
▲ 표지 사진 <어머니에게 드리는 100가지 질문> 표지 사진
ⓒ 공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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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어머니에게 질문을 드리고 답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 모리야 다캐시가 쓴 <어머니에게 드리는 100가지 질문>이 유독 내게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모리야 다캐시는 첫 아이를 얻은 지 12년 만에 아들이 태어나자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이 궁금했다. 어머니에게 던진 질문은 정치나 경제 그리고 문화와 관련된 거창한 질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 간에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만을 떠올리는 질문도 아니다.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포함해서 아들이 쉰에 될 때까지의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을 묻는다. 가령 어머니의 이혼, 어머니의 병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머니가 공금을 횡령한 사건에 연루를 받을 때의 일도 묻는다.

어머니.
그때 저는 늘 꿈꿔 왔던 '걸어서 30초만 갈 수 있는 가까운 고등학교'에 붙었는데 어머니의 이혼으로 다시 집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그 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지. 너도 집안 사정이며 어른들 일을 알 나이가 된 만큼 엄마를 많이 원망했을 거야. 집에서 전철로 20분 걸리는 도요하시역까지 너를 배웅하곤 했는데 학교에 가는 네 뒷모습을 보면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미안했어. 그런 한편으로는 잘 자라준 네가 믿음직스러웠다. - 68쪽

이 구절을 읽자니 나도 내 어머니에게 질문하고 싶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갔는데 그때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말이다. 고향에서 대구로 향할 때 혹시 따로 나와 멀리서 나를 지켜보면서 눈물을 훔친 적은 없으신지 궁금하다.

대구로 떠나기 전날 밤 부엌에서 무심히 부지깽이를 놀리면서 "균호야, 넌 대구로 가도 내가 안 보고 싶을 거지?"라고 물으셨을 때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서운하지는 않으셨는지도 궁금하다.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말 걸 그랬다. 가슴 아픈 질문을 만나버렸다.

어머니.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의 일을 가르쳐주세요.

아들에게.
새벽 5시쯤 욕실에서 샤워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몸 오른쪽에 마비가 오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도 제대로 못 했고 그걸 본 새아버지가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갔지. 병원 침대에 누워 몸 오른쪽이 마비된 채 새아버지와 네 동생에게 "미안해, 미안해" 하고 계속 사과한 기억이 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구나. - 167쪽

내 어머니가 쓰러진 것도 새벽이었다. 남의 손을 빌려서 여자 혼자서 해야 하는 모내기를 앞둔 날이었다. 동이 튼 새벽녘 들판에서 혼자 쓰러지셨을 때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동안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있었다.


태그:#어머니, #질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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