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 때문에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치명적인 재난으로 되돌아온다는 설정은 SF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과 안전은 생각지도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 세계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1993년에 첫선을 보인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이런 설정을 지닌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멸종한 공룡의 유전자로 공룡을 복원하고, 이들을 이용한 테마파크를 만들었다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는 이야기니까요. 2001년에 나온 3편을 끝으로 마무리된 이 시리즈는 지난 2015년에 나온 <쥬라기 월드>로 다시 한번 부활한 바 있습니다. 극 중에서 각종 신기술이 접목된 새로운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가 성업을 이루지만, 이곳 역시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말미암아 종말을 맞게 됩니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전편의 상황에서 몇 년이 흐른 후가 배경입니다. 테마파크가 있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의 화산이 활동을 시작하여 섬에 남아 있는 공룡들이 멸종 위기에 처합니다. 전편에서 테마파크 직원으로 등장했던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는 공룡을 구하기 위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입법 로비를 펼치지만 좌절하고 맙니다. 대신, 공룡을 다른 안전한 섬으로 이동시키는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벨로시랩터 조련사 오웬(크리스 프랫)과 함께 이슬라 누블라 섬으로 향합니다.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스틸컷 ⓒ UPI 코리아


개연성 부족한 설정, 도구화된 공룡들

전편 <쥬라기 월드>는 다소 느슨한 전개가 아쉬웠지만, 향상된 기술력으로 완성된 공룡 테마파크의 모습과 다양한 공룡들을 활용한 액션 장면들로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했습니다. 덕분에 속편 제작이 가능할 정도의 흥행을 거두면서 새로운 시리즈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년 만에 돌아온 속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그런 기대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이야기 설정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공룡 유전자를 복제하고 재구성할 기술이 있는 시대에 굳이 공룡의 멸종을 막겠다고 나서는 클레어의 소명 의식이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았거든요. 공룡들을 비싼 값을 받고 팔 목적으로 실어나른 작품 속 악당들 역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한 겁니다. 유전자 기술로 복제한 공룡을 팔면 되지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지요. 이렇게 첫발부터 스텝이 꼬이기 때문에 영화 전체의 개연성은 흔들립니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초반 이슬라 누블라 섬을 탈출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액션의 크기가 작다는 겁니다. 공간이 아주 넓으면서도 외부와 단절돼 있다는 것이 장점인 섬을 버리고, 중후반부터 배 안이나 저택 내부처럼 좁은 공간으로 무대를 제한한 선택은 다소 효과적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사방이 트여 있는 실외 공간에서 공룡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함, 그리고 세계와 동떨어진 섬에 고립되어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는 처절함에 있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이점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룡같이 덩치 큰 생물이 등장하는 액션 스릴러에서 공간의 크기를 줄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공룡에겐 불리한 조건입니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스틸컷.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스틸컷. ⓒ UPI 코리아


무엇보다 가장 거슬렸던 것은 이 영화가 설정한 공룡과 인간의 관계 설정입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공룡은 인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생물로 그려집니다. 그들은 인간이 돌보거나 구해야 할 대상이며, 인간의 이익을 위해 팔리는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박치기 공룡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를 활용하는 방식에는 그런 태도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전에 나온 <쥬라기 공원> 시리즈와 <쥬라기 월드>가 공룡을 독립적인 생물로 다루면서 인간의 오만과 무력함을 꼬집었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인간이 공룡보다 나은 존재라는 전제하에 '공룡을 사랑하면 선한 사람, 공룡을 팔아먹으려 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식의 선악 구도를 취한 것이죠. 이는 마치 서양 제국주의 국가 시민들이 식민지 출신 노예나 이국적인 동물들에게 보여줬던 태도와 유사합니다. 

'스크린으로 만나는 공룡 체험' 이상이 필요하다

공룡이라는 존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거대 생명체로서, 한때 지구를 지배한 적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뼈 화석만으로도 사람들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룡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앞으로 계속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이 아쉬운 점은 있으나, 국내 극장가에서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데는 그런 공룡 자체의 매력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기억에 남을 시리즈가 되기 위해서는 스크린으로 공룡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핵심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게 약화된 채 단순한 액션 스릴러로 만들어 버리면, 다른 괴수물과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같은 식이라면, 나중에 나올 <쥬라기 월드> 3편은 초반에 공룡들이 현대 문명 세계를 습격하고 후반에는 주인공들이 나서 살아남은 공룡을 안전하게 보호할 곳을 찾아 옮긴다는 식의 평범한 결말로 끝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공룡과 벌이는 액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억지스럽고 개연성 없는 설정 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떨어졌던 <쥬라기 공원 3>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포스터.

영화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포스터. ⓒ UPI 코리아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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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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