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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푸른 하늘' 시골책방 지기 최린 씨
 '오월의 푸른 하늘' 시골책방 지기 최린 씨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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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책은 '친구'에요. 외롭고 고독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친구. 살면서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진정한 친구입니다."

최린(26)씨는 어렸을 적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읽은 책의 대부분은 만화책이고 책은 학생으로서 응당 읽어야 의무감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전공서적만 읽었다. 그랬던 그가 책을 '친구'라 부르고 시골 마을에서 책방을 열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올라가고 있는 요즘, 스물여섯 살 청년이 한적한 시골동네로 내려온 이유도 듣고 싶었다. 지난 2일, '오월의 푸른 하늘'에 들렀다. '오월의 푸른 하늘'은 이천시 마장면 덕평리에 위치한 시골책방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 용인에서 왔다는 한 가족이 책방에서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부모와 아이 셋, 모두 각자 취향의 책을 읽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책방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최씨는 갓 볶은 커피를 내려왔다. 최씨는 어린 시절을 마장면에서 보냈다. 그 후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다가 일본 도쿄에서 국제사회학을 공부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7년 동안 해비타트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NGO단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저개발국가인 아프리카와 그 외 다른 나라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본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최씨는 일본에서 지낸 4년을 '스스로 책이 필요한 때'라고 회상했다.

"도쿄에서 혼자 생활했어요. 가족을 떠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그러던 1년 전, 우연히 제 방에 있는 책을 보게 됐어요. 한국에 들렀다 일본으로 갈 때 어머니는 제 가방에 책을 넣어주시곤 했는데 그 책 가운데 한 권이었습니다. 전공 공부에 필요한 책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기에 제 방에 책은 많지 않았거든요.

그 날 위기철 작가의 <아홉 살 인생>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읽었어요. 그렇게 읽은 건 제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죠. 책을 읽고 나서 '책이 상처와 외로움을 치유해 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또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항상 책을 읽으셨고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저렇게 두껍고 어려운 전집을 왜 읽으실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최씨의 독서는 쉼 없이 이어졌다. 책 한 권의 겉표지부터 끝까지, 글자와 문장의 의미를 새기며 자세히 읽는 정독(精讀)이 습관화 되었다.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되면 몸에서 땀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 나서야 시간의 흐름을 알게 된다'는 아버지 말씀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

그는 일본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도 만났다. 책 저자인 와타나베 이타루가 일본의 시골마을, 오카야마 현 북쪽 가쓰야마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며 동네 사람들과 빵을 공유하면서 조용하게 일으킨 경제혁명 사례가 담긴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최씨는 책과 책방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본의 책방도 순례했다. 일본의 책방을 순례하다가 그는 일본 동네 곳곳에 중고서점과 독특한 책방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은 책 한 권을 읽은 다음 그 책을 팔고 또 다른 책을 사가는 문화가 자연스러워 중고서적 순환도 잘 되는 편이라고 한다.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고판 책을 읽고 있는 풍경도 목격했다. 문고판 책은 양장판 책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하다. 그는 일본의 지하철 이용 인구의 30퍼센트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본 책방 순례 길에서 만난 그림책 판매상 할아버지는 그의 고정관념을 바꿨다.

"'왜 그림책만 파느냐?'고 여쭸더니 할아버지께서 '어른들이 진짜 읽어야할 책은 그림책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림책은 같은 책인데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게 다가와요. 읽는 시간은 길지 않고 여운은 오래 남고요. 어른들도 그림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씨는 일본에서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며 다른 나라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봉사활동이 몸에 익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와야할 대상을 달리 보게 됐고 일본에서의 공부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 선상에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 연결하여 시골책방을 떠올렸습니다. 대형서점이나 문화공간이 많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문화공간이 빈약한 시골 아이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책방은 나이가 지긋하게 들었을 때 열려고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전남대학교 근방의 '연지책방'을 알게 됐고 저보다 어린 분이 책방을 열어 운영한다는 사실에 '지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씨는 책방을 열 장소로 경기도의 여러 지역을 알아봤고 그 가운데 이천을 택했다. 이천은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이 있어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책방을 검색하다 서점이 4개 있고 근방 도시에서 유일하게 인문학 전문 책방이 없는 도시라는 점은 그가 도움을 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음으로 다가왔다.

외할아버지의 집, 외양간을 리모델링하여 근사한 책방으로 가꾼 시골 책방, 오월의 푸른하늘
 외할아버지의 집, 외양간을 리모델링하여 근사한 책방으로 가꾼 시골 책방, 오월의 푸른하늘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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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마장면 덕평리에 위치한 시골책방 '오월의 푸른 하늘'
 이천시 마장면 덕평리에 위치한 시골책방 '오월의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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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여는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최씨와 그의 아버지는 해비타트 봉사활동 경험을 살려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그의 어머니는 책방의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그렇게 그의 외할아버지가 외양간으로 사용하던 곳은 근사한 책방으로 변신했다.

책방에 있는 책은 최씨가 읽고 직접 고른 책이다. 그가 읽고 감동받은 책, 읽고 싶은 책, 집, 시골, 문장에 의미가 담긴 책,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좋은 이야기, 사람의 숨결이 담겨있는 따뜻한 책 등 주로 인문학 서적이다. 

책방 문을 연 지 이제 2개월 됐고 수입은 마이너스다. 하지만 그는 매일 기적을 체험한다고 한다. '오월의 푸른 하늘'에서는 커피와 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그 값을 묻는 이에게 쌀이나 커피 등 먹거리가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하는데 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갓 볶은 커피와 빵, 지역의 특산물 등을 보내온다. 그것은 그와 더불어 그곳을 찾는 또 다른 이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책방을 찾은 좋은 사람과 만나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그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그는 책방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책방을 이용할 수 있는 북스테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책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환경과 독서토론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틈틈이 오행가(다섯 줄로 쓰는 형식의 일본 시)를 쓰고 책방이 자리를 잡히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작가들을 위한 책 출판 작업도 하고 싶다고 한다. 책방을 나서는데 청년 최씨가 마당에서 인사를 했다. 그의 미소가 오월의 푸른 하늘처럼 반짝였다. 맑고 따뜻했다.

덧붙이는 글 |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는 주거환경, 주거지, 보금자리라는 뜻으로 1976년 미국에서 시작한 비영리국제단체. 집이 없거나 주거공간이 열악한 사람한테 집을 지어주는 희망의 집짓기 봉사단체다.



태그:#오월의 푸른 하늘 , #시골책방,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해비타트,희망의 집짓기 , #코이카, 자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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