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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예정된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는 위헌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예정된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는 위헌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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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헌법재판소에서 형법의 낙태죄 조항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공개변론이 열렸다. 해당 공개변론은 2017년 2월 8일에 접수된 위헌소원 사건이다. 형법 제269조 제1항(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과 제270조의 '의사'와 관련된 부분(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의 헌법 위반 여부를 따지고자 했다.

청구인은 현직 산부인과 의사로,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였다는 등'의 범죄 사실로 기소된 상태다. 헌재가 배포한 보도자료(사건번호 2017헌바127)에서 청구인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여성이 임신·출산에 대해 결정할 자유를 제한하여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하며,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부담을 여성에게만 부과하므로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2년 이미 헌재는 태아는 성장 상태와 무관하게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이므로 유전학적, 우생학적 이유가 아닐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바 있다(2010헌바402).

이런 상황에서 <노컷뉴스>가 공개변론을 하루 앞둔 23일 입수해 공개한 법무부의 변론요지서가 논란이다.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립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에 대해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한 것이다(관련 기사 : [단독] 법무부 "낙태죄 폐지? 성교하되 책임 안지겠다는 것"). 법무부는 해당 논란에 대해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냈지만, 논란을 종식시키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청원 답변 vs. 법무부 변론요지

낙태와 관련해서는 이미 청와대 측의 답변이 나온 바 있다.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20만 명이 넘어서 조국 민정수석이 2017년 11월 26일에 답변을 내놓은 것. 그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자.

"태아의 생명권은 어떤 권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임신중절 시술은 인간존엄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처벌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하고 있으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수술비 부담, 해외 원정시술, 위험시술 등 부작용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있는 것입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 불법 중절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건강권 침해 가능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태아 vs. 여성", "전면 금지 vs. 전면 허용"이라는 대립 구도를 넘어서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태아의 생명권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가'는 분명 논의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태아의 생명권을 지키겠다면 결국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법무부장관 의견 요지'에는 "태아의 생명권의 보호 정도는 그 성장 단계나 모체 밖으로 나왔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자기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정당하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결국 이런 법무부의 태도는 조국 수석이 말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논란이 된 변론요지서에도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무책임의 결과'로 일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청원 답변을 준비하면서 여러 정부 부처와 관련 비서관실과의 논의를 거쳤다.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추후의 정책적 변화를 이야기한 것이 그 결과물이다. 2010년에 중단된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2018년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임신중절 관련 보완 대책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청소년 대상의 피임 교육을 체계화하고,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당사자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더 이상 임신중절을 당사자 여성의 인권을 배제하고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한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한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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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존재"

조국 수석 개인의 법학자로서의 신념 또한 해당 청원의 답변에서 잘 드러난다. 조국 수석은 2013년 당시 논문 <낙태 비범죄화론>을 통해 낙태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현실 사회의 질곡을 자신의 몸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모자보건법 상의 낙태 허용 기준인 우생학적, 유전학적 사유를 법 제정 4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명확히 했다. 논문 중 일부의 내용을 살펴보자.

"낙태 허용범위를 넓히고 불처벌 상황을 방치하면 생명윤리와 성도덕이 타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논증하기 어렵다. 먼저 형법이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법철학적 의문이 존재한다. (중략) 형법은 생명윤리를 존중·수용해야 하지만, 형법은 평균적 시민이 준수할 수 있는 생명윤리를 요구해야 한다."

"한편, 낙태하는 여성은 성행위를 즐겨놓고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사람, 모성애도 없는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낙태를 하는 여성은 자신의 처지와 고민과 고통을 공개적으로 하소연할 수 없는 "침묵하는 절규자"이다. 반면 임신에 대하여 여성과 똑같은 또는 더 많은 책임을 지는 남성에 대한 비난은 실종된다. 그러나 여성은 태아의 생명과 삶을 가장 절실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존재이며, 낙태 여부를 가장 고민하는 존재이다."

2013년에 쓴 논문이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란을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이라는 법무부의 변론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낙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음을 적어두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3일 노컷뉴스를 통해 공개된 법무부의 변론요지서나 헌재가 배포한 보도자료 상의 법무부 입장 모두 변화를 향한 청와대의 의지와는 크게 달라 보인다. 의식적, 정책적 변화에 대해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여러 부처와 논의했던 청와대의 성의에 기대를 걸고 싶어도 법무부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입장을 내놓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법무부와 헌재가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더 이상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태그:#낙태죄, #법무부,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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