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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 무력화 문건'에 항의하는 삼성 노조 조합원이 4월 3일 삼성서초사옥 정문쪽에 설치된 철제 펜스를 두고 삼성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삼성 노조 무력화 문건'에 항의하는 삼성 노조 조합원이 4월 3일 삼성서초사옥 정문쪽에 설치된 철제 펜스를 두고 삼성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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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또 다시 노조를 와해시키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삼성측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114쪽 분량의 노조 대응 문건을 폭로한 지 5년 만이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는 심상정 의원이 2013년에 공개했던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 포함된 총 6000여 건의 노조 무력화 관련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들은 삼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관련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혐의를 밝히기 위해 삼성전자를 압수수색하던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에 공공형사수사부는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관한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발부 받아 해당 자료를 분석 중이다.

검찰 압수 문건에 포함된 2012년 '노사전략' 문건, 어떤 내용일까?

삼성이 최근까지 노조 무력화 공작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 2013년 10월 공개됐던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이 문건이 공개되자 삼성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은 같은 달 22일 삼성 경영진을 상대로 고소ㆍ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삼성은 문건 공개 직후 "2011년 고위 임원 세미나 준비 때 토의자료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 엿새 뒤, 삼성은 "우리가 만든 문건이 아니다"라며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문건의 출처가 확인되지 않아 삼성그룹 차원의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이 덮은 이 문건을 다시 꺼내든 건 다름 아닌 검찰이다. 6000여 건의 노조 무력화 전략 문건이 입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과거 공개됐던 노조 와해 전략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이번에 압수된 문건 역시 지난 2013년에 공개됐던 문건과 유사한 맥락일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6000여 건의 문서는 검찰이 수사 중인 만큼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문건을 통해 최근 압수된 문건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는 있다. 이에 <노동법률>은 지난 2013년 공개된 문건에서 제기된 삼성측의 노조 무력화 의혹을 단계별로 정리했다.

[1단계] 어용노조 설립으로 교섭창구 차단

심상정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 문건은 총 114장으로 이뤄져있다. 문건의 내용은 크게 △2011년 평가 및 반성 △2012년 노사환경 전망 △2012년 노사전략 △당부말씀의 순서로 나뉜다.

문건은 삼성 에버랜드의 노조(삼성노조) 설립 과정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단계별 대응 방안을 소개한다. 문건에 적힌 첫 번째 대응은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한 어용노조(문건에서는 '친사노조') 설립이다.

우리나라의 복수노조 제도는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소수의 근로자들이 노조 활동을 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노조는 단체교섭권을 가진 교섭대표 노조로 인정받지 않으면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회사와 근로조건을 협상하는 단체교섭권이 노조의 가장 핵심 역할이기 때문이다. (<노동법률> 2016.8.18. 보도 참고)

문건에 따르면 2011년 6월 4일 한 현장 여사원의 제보로 노조설립 움직임을 알게 된 사측은 같은 달 20일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9일 뒤 사측은 어용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삼성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상실시켰다. 문건에는 어용노조 설립 시 "부당노동행위로 제소될 가능성 100%"라며 신중한 판단을 주문하는 내용도 적혀 있다.

복수노조 제도상의 '교섭창구 단일화'를 악용하는 것은 이미 노조 와해를 원하는 기업들의 매뉴얼이 됐다. 실제 지난 2016년 7월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갑을오토텍은 복수노조 설립을 통해 노조를 약화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문건에 적힌 바와 같이 삼성이 어용노조를 설립했다면 이는 노조의 조직과 운영에 개입한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81조 제4호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2단계] 주동자 징계 위해 정밀 채증 등 불법사찰

문건은 설립 단계의 대응을 두 갈래로 제시한다. "(노조 설립) 주동자 즉시 해고"와 "언론대응"이다.

문건에는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문제인력'으로 분류된다. 이 문제인력들이 노조 설립을 시도하는 "유사 시"에 징계조치를 하는 것이 문건의 2단계 대응 방안이다. 이를 위해 문건은 문제인력들의 △평상 시 근태불량 △지시 불이행 등의 문제행위를 정밀하게 채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문제인력에 대한 밀착관리 강화"를 주문한다.

이는 노동조합법 제81조에 규정된 부당노동행위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노동조합법 제81조 제1호는 노조에 가입하려 하거나 노조를 조직하려는 노동자에게 불이익(해고ㆍ징계 등)을 주는 행위, 다시 말해 '불이익 취급'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불이익 취급은 부당노동행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홍영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2016년 <노동법학> 제57호를 통해 발표한 논문에서 "부당노동행위 유형별 접수현황을 살펴보면, 2014년도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전년도 이월을 포함한 총 접수건수 948건 중 불이익취급이 829건(87.4%), 지배개입이 92건(9.7%), 단체교섭거부가 19건(2.0%), 반조합계약이 8건(0.8%) 순"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 문건에 따를 경우, 노동자에 대한 정밀 채증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난 2013년 10월 삼성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삼성 경영진에 대한 고소ㆍ고발 기자회견에서 "본인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개인사생활 정보를 수집ㆍ활용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건은 주동자 징계와 함께 언론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언론대응'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삼성노조는 주동자 징계 회피를 위한 방탄노조라 반박"이라고 적혀 있다. 주동자인 직원에 대한 징계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해당 직원이 징계조치를 회피하기 위해 노조를 설립하는 것으로 사건의 성격을 탈바꿈하려는 치밀한 대 언론 전략이다.

[3단계] 맞고소ㆍ임직원 정신교육으로 노조 세 확산 방지 

삼성노조에 대한 3단계 전략은 맞고소 등으로 노조의 세 확산을 차단하고, 임직원들의 심성을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문건은 소송 방어 및 맞고소와 관련해 "한국노총 협조, 노동부, 검ㆍ경 유관기관 협조"를 명시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모욕, 주거침입 등 고소"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노조의 세 확산을 차단하는 방안으로는 △김00 징계 △내부 임직원 심성 관리를 제시한다. 문건 뒷부분에는 "외부환경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임직원들이 전혀 흔들림 없이 비노조 경영철학을 견지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강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에 "비노조의 역사적 가치와 성과에 중점을 둔 논리체계 재정립"이라는 내용이 뒤를 잇는다.

"주동자 격리, 단순가담자 면담으로 노조 탈퇴 유도" 

문건은 노조의 내부분열을 위해 주동자의 격리와 단순가담자의 탈퇴를 유도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주동자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전에 위법사실을 채증한 다음 해고ㆍ정직 등의 징계 조치로 격리시키는 방식이다. 단순가담자들은 사내 지인과 부서장 등이 면담을 통해 탈퇴를 유도한다고 적혀 있다. 이어 문건은 "대자보 부착, 근무시간 중 조합 활동, 천막설치 등에 대해 사규 위반을 이유로 반드시 저지하되, 거부 시 채증 후 징계"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조직에 대한 사용자의 개입으로 볼 수 있다. 사용자의 개입이 인정되면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된다. 사용자의 노조 지배ㆍ개입은 노조의 의사결정 및 활동을 제약하거나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사용자의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용자의 지배ㆍ개입은 △노조 결성에 대한 비난 △탈퇴 권고ㆍ요구 등이다. 문건은 전형적인 사용자의 지배ㆍ개입 유형에 속한다.

삼성전자 관계자 "검찰이 말하는 문서 뭔지 몰라"

한편,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6000여 건의 노조 무력화 문건과 관련해 삼성전자측은 해당 문건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검찰이 입수한 노조 무력화 관련 문건에 대한 회사측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저희 입장은 없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얘기하는 자료가 저희가 작성한 건지, 아닌지 이런 걸 확인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서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검찰이 지금 얘기한 문서가 어떤 문서인지 검찰이 저희한테 확인해준 게 아니지 않나"라며 "우리는 검찰이 말하는 문서가 어떤 문서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6000여 건의 문서가 노조 무력화 전략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알려져, 지난 2013년 공개된 문건과 유사한 맥락일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삼성이 이 같은 내용을 실제로 진행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관련 의혹의 진위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 <노동법률>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4월 4일 월간 <노동법률> 인터넷판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www.worklaw.co.kr/)



태그:#삼성전자, #삼성노조, #부당노동행위, #노동조합법, #공공형사수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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