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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가 '적폐 탐정단'을 꾸렸습니다. 이름 그대로 권력의 그늘 아래서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가 추적 대상입니다. 그 첫 번째로 국회 사무처를 택했습니다. 시민 세금이 1년에 900억 원 넘게 쓰이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외부 감사는 없습니다. 국회의원들 또한 '집안 문제'라고 사실상 모른 척 합니다.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모두 공개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7년 9월부터 33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그 실태를 파고들었습니다. [편집자말]
전화 한 통으로 21억원 빚을 턴 사례가 있다. 그뿐만 아니다.
 전화 한 통으로 21억원 빚을 턴 사례가 있다. 그뿐만 아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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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이 돌아왔다. 전화 한 통으로 채무액 28억 원을 7억 원으로 줄여줬고, 자신이 아는 회사가 상장 폐지가 안 되도록 금융감독원 부원장에게 '힘'을 썼는가 하면, 현대증권 사장에게 연락을 취해 청탁을 의뢰한 업체 사장을 만나도록 하는 등 막강한 '힘'을 부렸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는 이렇게 돌아왔다.

"장 사장! 참으로 송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 삼성○○ 실무자들이 '고문님'하면서 입법 대책을 숙의 지도해 주는데 갑자기 해촉이 되면 체면 문제가 아니라 일을 중간에서 어색하게 되는 결과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달라는 취지가 되니까 올해만 연장해 주시면 안 될까요? 올해 고문 수 많이 줄이는 속사정을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사정에 따라... 즉 이 건은 입법 노력이 조금 더 지속돼야 할 것 같아요.

작년 ○○○○ 법 관련해서의 공에 대해서는 이미 일부 종결되었으므로 생색을 추가로 내자는 것이 아니고... 아무튼 좋은 결정을 양청드리면서..."

작년 8월 <시사IN>이 입수해 공개한 이른바 '장충기 문자'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국회 ○○○ 수석전문위원의 인사 관련"이라는 설명과 함께 소개됐던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복수의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 그 이름은 '정○○', 2009년 3월에 먼저 이렇게 등장했었다.

2009년 재산이 90억이었던 국회 전문위원

2016년 2월 규제를 줄이고 각종 세제와 혜택을 기업에게 지원하는 이른바 '원샷법'이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사인>이 공개한 '장충기 문자'에는 이와 관련 동향을 사실상 삼성 측에 보고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방침을 밝힌 뒤 국회 본회의장 모습
 2016년 2월 규제를 줄이고 각종 세제와 혜택을 기업에게 지원하는 이른바 '원샷법'이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사인>이 공개한 '장충기 문자'에는 이와 관련 동향을 사실상 삼성 측에 보고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2016년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방침을 밝힌 뒤 국회 본회의장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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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국회 사무처, 예산정책처 등 입법지원기관의 고위직 인사들 중 일부도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중략) ... 1급인 상임위 수석전문위원 중에는 정○○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이 토지 가격 상승 등으로 10억3천510만원이 늘면서 89억4천614만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2009년 3월 27일 <연합뉴스>)

2009년 당시 90억 원을 육박하는 재산, 그 비결의 일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해 8월이었다. "코스닥 상장업체로부터 유상 증자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돈을 받은 혐의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수석 전문위원인 정아무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청구했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도대체 국회 전문위원이란 자리가 무엇이기에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던 것일까. 1심 판결문에 그 설명이 매우 친절하게 나와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그 소관부처로 국무총리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국가보훈처, 국민권익위원회를 두고, 소관 기관을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기술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은행, 산업은행 등을 관할하면서 소관부처나 기관의 법률안 검토, 예산안 심사 및 결산 심사, 국정감사, 청원·진정을 비롯한 민원처리 등 업무를 하고 있으며..."

국회 정무위 전문위원의 힘이 뻗칠 만한 기관을 위와 같이 요약한 재판부는, 그 힘이 작동할만한 이유들을 또한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정무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은 소속 위원장 및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위원회에서의 의안과 청원 등의 심사, 국정감사, 국정조사 소관 사항 등과 관련하여 검토 보고 및 관련 자료의 수집·조사·연구를 행하며, 위원회 소속 전문위원 및 직원의 업무를 총괄할 뿐 아니라, 나아가 소속위원회 관련 민원이 있을 경우 이를 해당 기관이나 부처에 그 취지를 전달하여 민원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회 전문위원의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판결문

정○○ 수석 전문위원 발언이 담겨 있는 2009년 1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 속기록 몇 줄 뒤에 있는 국회 전문위원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정○○ 수석 전문위원 발언이 담겨 있는 2009년 1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 속기록 몇 줄 뒤에 있는 국회 전문위원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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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하나, 문장 하나 '더하고 빼고'에 따라 사람이나 돈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이 입법 활동이다. 위원회의 의안에는 예산안도 포함돼 있다. 관리 범위에 있는 기관들 입장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문제다. 기관들 입장에서 국정감사에 대한 부담 또한 새삼 부연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차관보급인 국회 수석 전문위원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자리다. 특별한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막강하며, 행정부로 따지자면 상임위원장이 장관이라면 수석 전문위원은 차관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힘이 부리기에 따라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정○○씨 사건'이다. 1심, 2심, 대법 판결문을 모두 살펴봤더니, 기사 몇 줄 뒤에 숨어있던 그 사례들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2008년 9월 A업체는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134억 원 규모의 단기 차입을 했고, 이를 변제할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를 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세 차례 '태클'을 걸자, 업체 대표는 정씨에게 SOS 신호를 날렸다. 정씨는 금감원 기업공시국 국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업체 대표를 만나 해결 방안을 강구하도록 했다. 그 후 A업체가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리자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통해 회계법인에 해당 업체의 감사보고서를 검토해줄 것을 요청하도록 했다.

2009년 7월 B업체가 보증서 발급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자 정씨는 기술신용보증기금 간부에게 연락해 보증서 발급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하는가 하면, C업체가 충무로 역사 공사 수주를 위해 필요한 보증확약서를 받을 수 있도록 현대증권 사장에게 연락해 업체 관계자를 만나도록 했다. 그는 D업체 대표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지도위원과 증권선물거래소 사외이사 인사에 개입해달라는 청탁을 받기도 했으며, 국무총리실 주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전화 한 통에 빚 28억이 7억으로

작년 8월 <시사인>이 입수해 공개한 이른바 '장충기 문자'들. "국회 ○○○ 수석전문위원의 인사 관련"이란 설명과 함께 소개됐던 문자(원 표시)를 보낸 사람의 이름은 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8월 <시사인>이 입수해 공개한 이른바 '장충기 문자'들. "국회 ○○○ 수석전문위원의 인사 관련"이란 설명과 함께 소개됐던 문자(원 표시)를 보낸 사람의 이름은 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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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문위원의 막강한 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었다. 2008년 여름,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사무실에서 정씨는 P씨로부터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부담하고 있는 채무를 감면해줄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았다. 채무액은 모두 28억 원.

그러자 정씨는 기술신용보증기금 채권담당 이사에게 전화를 해 채무 감면 방안을 강구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는 다시 이 내용을 기술신용보증기금 울산지점에 전달했고, 울산지점에서는 P씨에 대한 잔여 채무액을 28억 원에서 7억 원 상당으로 감면해주는 내용의 채무 감면 검토보고서를 작성한다.

법원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했다. 다만 뇌물죄를 구성하는 데 있어 대가성 여부나 직무 관련성 그리고 증거의 불완전성 등을 이유로 법원은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 의심이 간다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라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은 정씨에게 징역 3년과 벌금 2800만 원 그리고 추징금 48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씨와 같은 사례를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보기 어렵다. 첫째, 국회 전문위원의 법적인 '힘'에는 변화가 없으며 마땅한 견제 장치도 없다.

정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당시 기업공시국장은 "금감원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소관기관으로서 정무위에서 금감원 관련 법률 및 국정 감사 등의 업무를 처리하고, 수석전문위원인 정씨의 의견이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고, 기술신용보증기금 간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수석전문위원인 정씨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라고 진술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둘째, 정씨의 이름이 '장충기 문자'로 다시 돌아온 것만 봐도 과거의 일이 아니다. 앞서 문자에서 '정○○'을 고문으로 위촉한 곳은 삼성증권이었으며, 그는 "작년 '지배구조법' 관련해서의 공에 대해서는 이미 일부 종결되었으므로 생색을 추가로 내자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계속 고문으로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에게 이 문자에 대한 '해독'을 부탁했다.

"법피아... 국회 전문위원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

<시사인>이 입수해 공개한 '장충기 문자' 중에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발의했던 이른바 '이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동향을 수집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오른쪽)과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의 2010년 6월 모습.
 <시사인>이 입수해 공개한 '장충기 문자' 중에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발의했던 이른바 '이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동향을 수집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오른쪽)과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의 2010년 6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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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정씨가 삼성증권 실무자들에게 지도해줬다는 입법 대책에 대해 "국회 입법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한테 로비해야 먹히고, 이런 자기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가르쳐줬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지배구조법 관련한 공'에 대해서는 "2014년 이종걸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이른바 '삼성생명법'을 말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삼성생명법'이라 불렸던 보험업법 개정안은 당시 발의 과정에서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 등을 보유할 때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었다. 핵심은 이 네 글자, 시장 가격이었다.

정무위 관계자는 "삼성전자 주식 취득 원가(5만 원대)로 계산하면 3%가 넘지 않지만, 시장 가격 240만 원대로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 주식을 삼성생명이 대부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라며 "삼성 그룹 총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법안이었지만, 결국 통과가 안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안 통과가 안 된 걸 갖고 '공을 세웠다'는 식으로 생색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법안 검토보고서 쓰죠, 예결산 심의 보고서 쓰죠. (전문위원이) 무슨 예산 불필요하다 이렇게 써버리면 깎일 가능성이 높아요. 생사 여탈권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거죠. 한 마디로 법피아죠, 법피아. 견제 받지 않는 권력."

* 적폐탐정단 : 국회사무처 9편 '박정희가 만든 적폐, 국회법 42조'로 이어집니다. 위 기사와 관련하여 정○○씨를 고문으로 위촉한 이유 등에 대해 질의했으나 삼성증권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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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충기, #국회 전문위원, #장충기 문자, #국회사무처, #정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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