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소민, tvN <크로스>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tvN <크로스>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고지인 역을 연기한 배우 전소민을 만났다. ⓒ 엔터테인먼트 아이엠


[기사 수정 : 28일 오전 10시 6분]

그저 god를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던 한 소녀. 보통의 팬들이라면 오빠들을 가까이 보기 위해 콘서트나 공개방송을, 보다 적극적인 팬들이라면 사인회 등을 찾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녀의 적극성은 남달랐다. "연예인이 되고 말겠어!" 처음엔 god의 가장 가까운 곁인 가수를 꿈꿨지만, 결정적으로 노래를 못 했다. 차선책으로 택한 건 연기였다. 무턱대고 찾아간 연기 아카데미. 그렇게 호기심 반, 팬심 반으로 시작한 연기건만, 언제부턴가 점점 흥미가 생기고 진지해졌다. 그리고 데뷔. 그 소녀는 최근 tvN 드라마 <크로스>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고지인 역을 연기했다. 지난 23일 만난 배우 전소민이 들려준 그녀의 파란만장한 데뷔기다.

"고3 때 '촛불 하나', '길'이 나왔어요.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삶의 첫 고비를 맞았을 때, 이 노랫말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위안이 됐어요. 데니안의 팬이었는데 예전 god 팬카페 활동명이 '신원아파트', '신원빌라'였어요. 데니안 오빠의 본명이 안신원이거든요." 

전소민은 달뜬 목소리로 팬심을 털어놨다. 하지만 아직 '성덕(성공한 덕후)'의 반열에 올라서지는 못했다. 2004년 데뷔해 어느덧 데뷔 15년 차를 맞았지만, 이 긴 시간 동안 아직 god 멤버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고정 출연 중인 <런닝맨> PD에게 데니안을 게스트로 불러 달라 부탁해보라는 기자들의 말에 "쑥스럽다"며 손을 내저었다. 

이른 데뷔, 긴 무명... 오아시스를 만났다 

 배우 전소민, tvN <크로스>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그저 god를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던 소녀 전소민. 데뷔에 성공하긴 했지만, 아직 god를 만나진 못했다. ⓒ 엔터테인먼트 아이엠


전소민은 19살이던 2004년, MBC 시트콤 <미라클>로 데뷔했다. 팬심에서 싹튼 '연예인 데뷔'의 꿈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른 데뷔. 하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데뷔 후 이렇다 할 작품이 없어 온종일 집에만 뒹굴뒹굴하기도 했다고.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 막연한 두려움도, 괴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직업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연기가 제일 재밌었어요. 이걸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난 뒤에는 시간에 모든 걸 맡겼던 것 같아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더 즐겁게 버틸 수 있을지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한 거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순간에 물이 생기더라고요. 제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마다 오아시스가 보였어요." 

첫 오아시스는 <오로라 공주>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드라마 세계를 구축한 임성한 작가는 작품마다 숱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매번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을 기록한다. 작품만큼이나 캐릭터도 강렬해 '임성한 작가 작품에 출연하면 이름을 잃는다(오랜 시간 캐릭터 이름으로 불린다는 의미)'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지만, 이는 그만큼 대중에게 단박에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인이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중고 신인을 과감하게 주연으로 캐스팅하기로도 유명해 임성한 작가 드라마는 한때 '스타 등용문', '중고 신인들의 동아줄'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이미 데뷔 9년 차였던 전소민에게, <오로라 공주> 역시 그랬다. 

"<오로라 공주>는 제 첫 번째 돌파구였어요. 덕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죠. 하지만 이후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 위주로 출연하다 보니 나이에 비해 이미지가 올드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이미지의 한계를 넘고 싶었어요. 두 번째 돌파구가 필요했죠. 그때 만나게 된 게 <런닝맨>이에요." 

꿈에 그리던 미니시리즈 주연, 하지만...  

 배우 전소민, tvN <크로스>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19살이던 2004년, MBC 시트콤 <미라클>로 데뷔했다. 데뷔는 빨랐지만 주목 받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긴 목마름 끝에는 언제나 오아시스가 등장했다. ⓒ 엔터테인먼트 아이엠


20개가 넘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노는 일. 처음엔 당연히 쉽지 않았다. 두렵고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런닝맨> 멤버들의 배려 덕분에 점점 마음껏 장난치고 놀 수 있게 됐다. 어느새 정말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나 보이던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반응도 할 수 있게 됐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느끼던 카메라 울렁증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가끔 예능이 연기 활동에 지장을 주면 어쩌냐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근데 그건 제게 너무 먼 이야기예요. 제 안에 다른 모습들을 보여드려야 다른 연기를 보여드릴 기회도 생기는 거잖아요. <런닝맨>은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였어요. 실제로 전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어리고 발랄한 이미지의 작품이나 광고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길을 다녀도 전에는 어머님들이 주로 알아봐 주셨다면 지금은 어린 초등학생들도 알아봐요. 덕분에 돌아다니는 건 훨씬 쑥스러워졌지만, 너무 행복하죠. 전 지금만으로도 너무 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미니시리즈 주연 기회가 주어졌다. 메디컬 드라마 tvN <크로스>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고지인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런닝맨>에서 8차원 '돌소민(돌아이+전소민)'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다. 다소 어둡고 진지한 캐릭터를 택한 이유 중에는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런닝맨>에서 보여드리는 모습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시청자분들이 더 몰입 못 하실 것 같았어요. 정 반대되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고, 장르물에도 출연하고 싶었어요." 

시간과 노력,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수술신, 익숙하지 않은 의학 용어들. 거기에 더 생소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라는 직업까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더미(인체 모형)는 놀라웠고, 속눈썹은 물론 모공까지 디테일하게 구현해 낸 미술팀의 대단한 실력에 감탄이 들기도 했다.

복수심을 키우는 천재 의사 강인규(고경표 분)와 그의 분노까지 품은 휴머니즘 의사 고정훈(조재현 분)의 이야기가 주축인 드라마 <크로스>에서, 고정훈의 딸이자 강인규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고지인 캐릭터는 자칫 소비되는 데 그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소민은 "시놉시스를 볼 때부터 이 드라마는 (고)경표씨의 이야기가 주고, 나는 그를 서브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주연 타이틀은 있지만, 주연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메디컬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즐거움,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전소민은 새로운 어려움에 부딪혀야 했다. 주연배우이자 극 중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조재현의 성추행 혐의가 폭로됐기 때문이다. 16부작 드라마 딱 중간에 터진 폭로에 조재현의 하차가 결정됐고, 스토리라인의 변경도 불가피했다. 하지만 전소민은 "기존 스토리를 조금 앞당겼을 뿐,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운 면은 없었다"면서, "다들 일단 이 작품을 무사히 끝내고, 각자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사히 마칠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투는 계속 되어야 한다 

 배우 전소민, tvN <크로스>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미투 운동을 지켜보는 오늘의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느끼고 있을 그 고민, 그 감정. 전소민도 다르지 않았다. ⓒ 엔터테인먼트 아이엠


함께 호흡을 맞추던 선배 배우의 이름이 포함됐고, 때문에 2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도 원치 않는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미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전소민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도 아직 어린 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선배인 데뷔 15년 차 연기자로서, 후배들을 위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어떤 분야든,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에게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너무나도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일이죠.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것뿐이고, 저희 분야가 더 많은 관심 받는 분야이기 때문이지,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릴 때 알게 모르게 받은 상처들이 있고, 인지하지 못해 분노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이제 와 깨닫기도 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렇게 상처를 드러내고 용기 내주신 분들께 감사하죠. 모두가 이런 일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는 것, 그게 시작이잖아요. 덕분에 후배들이나 다른 어린 여성들이 덜 상처받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키게 됐고요. 용기 내주신 분들께는 감사하고,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래요. 만약 어린 후배들이 내게 그런 고민을 털어놨으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각해보면 더 미안한 마음이 들죠. 

어린 아기들을 볼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저도 그렇게 어른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힘든 순간들이 이 아기에게도 찾아올 텐데, 이 아이는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누구나 버티는 일이라곤 하지만 잘 견뎌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요. 그래서 아기들 볼 때 '앞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잘 극복하고 용기 내고 살아' 이런 말을 해주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제가 그 아기의 부모는 아니라도, 어른으로서 드는 생각이거든요. 이번 일(미투 운동)을 보면서 느낀 마음도 비슷한 것 같아요. 직접 그분들을 알진 못하지만, 미투 때문에 아름다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친구들, 그 꿈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있어요."  

말을 잇는 동안 전소민의 눈가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전소민이 느끼고 있을 그 고민, 그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다시 출발선에 선 전소민, 이제 초조함은 없다 

 배우 전소민, tvN <크로스> 종영 인터뷰 제공 사진.

<오로라 공주>와 <런닝맨>으로 두 번의 돌파구를 통과한 전소민. 그리고 <크로스>로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 엔터테인먼트 아이엠


긴 무명 생활 동안 초조한 적도 많았다. 전소민, 정소민, 전소미. 비슷한 이름의 스타들이 많아 이름만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소민은 "전노민 선배님이랑은 사인도 비슷하다"며 웃었다. 자막으로 흘러가는 다른 배우의 이름을 보고 자신인가 싶어 눈을 반짝이기도 하고, 정소민의 열애설이 났을 땐 자신의 이름으로 오타 난 기사들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무궁무진. 하지만 전소민은 "활동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본명이기도 하지만, 전 제 이름이 너무 좋아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밝을 소(昭)에 하늘 민(旻)이거든요. 밝은 하늘... 뜻도 너무 예쁘잖아요. 배우로는 정소민씨가 대표적이시고, 가수로는 전소미씨가 계시잖아요. 그럼 저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면 되지 않을까요?" 

밝게 웃는 전소민에게서 무한 긍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 오늘을 맞이한 전소민의 기분이 궁금했다.

"초조한 적도 있었어요. 로맨스나 멜로가 하고 싶은데, 내게 기회가 올까 싶기도 했고요. 근데 요즘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게, 정말 장르도 다양해지고 이야기의 연령대도 너무 다양해졌더라고요. <키스 먼저 할까요>처럼 어른 멜로도 있고요. 그래서 이젠 초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트렌디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올해 제 목표이긴 하지만, 아직 안 해본 역할이 너무 많아서 어떤 작품이든 들어오면 감사하게, 잘 할 수 있어요. 따로 준비하고 있는 거요? 음... 전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데... 이걸 잘 하려면 아무래도 사랑의 경험? 제 나이가 33살인데 이미 많죠. 전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연기로 풀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하하하." 

첫 미니시리즈 주연, 2년 만의 드라마. 긴장도 많이 했고, 그만큼 기대도 걱정도 컸다. 전소민에게는 여러 의미로 '도전'이었고, 중간에 고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가 되어 전소민에게는 <크로스>는 그저 '감사한 작품'이 됐다.

<오로라 공주>와 <런닝맨>으로 두 번의 돌파구를 통과한 전소민에게, <크로스>는 새로운 출발선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출발과 시작이 있겠죠. 이렇게 가다 보면 또 정체기를 만나겠죠. 그럼 저는 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거예요. 그때까지 몇 걸음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얼마를 가든, 최대한 많은 걸음을 걸어갔으면 해요. 그게 바람이고, 목표예요."

전소민 런닝맨 크로스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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