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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회사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장기근속자 6개월 무급휴가. 내가 첫 번째 신청자가 됐다. 내 생애 가장 긴 휴가를 오직 2가지만을 위해 쓰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과 독서. 첫 번째 소원을 위해 지난 3개월 자전거 타기와 야영훈련을 했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37일간의 남미 자전거 원정을 떠난다. 참가자는 24번의 해외 원정 경험이 있는 김광옥 목사(62)와 전업주부 박정희씨(50), 그리고 직장여성인 나(58), 이렇게 셋이다. 3인의 좌충우돌 안데스 자전거 원정기를 소개한다. - 기자 말

손글씨 한 장의 감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도 가방에 책 한 권 챙기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야 했던 날이 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한...  지하철 속 풍경이 이렇게 빨리 바뀔 줄은 몰랐다. 이제 책을 들고 있던 그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나도, 내 옆 사람도, 맞은편 사람도 스마트폰 속에서 책을, 음악을, 영화를 꺼내보고 있다.

남미에서의 나도 여전히 내가 떠나온 그 지하철 속 풍경과 다름없음을 깨닫고 혼자 놀랐다. 지구 반대편의 가족에게 문자를, 사진을, 나의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보낸다.

오래전 아프리카를 여행 중에 보냈던 남편의 엽서가 기억났다. 찍힌 소인날짜로부터 한 달쯤이 지나서 도착한 그 엽서를 받아들고 떨렸던 내 손이, 내 손보다 더 떨렸던 가슴이...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날에 손글씨로 마음을 담던 그때를 기억하면서 엽서 한 장을 앞에 두고 앉았다. 마추픽추에서의 인상을 엽서에 옮겼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적을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엽서의 면이 적은 줄은 몰랐다.  서둘러 가족의 이름을 적는 한 줄의 감사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엽서를 통한 손글씨는 여전히 스마트폰으로는 전하지못하는 것을 담아전하는 효험을 가진다.
 엽서를 통한 손글씨는 여전히 스마트폰으로는 전하지못하는 것을 담아전하는 효험을 가진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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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사랑하는 당신에게,

비행기표를 끊고 얼마나 기쁨으로 살았는지.
비행기를 타면서도 꿈속인듯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자연! 우주! 신의 창조물을 보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속에서만 거닐다가 대우주를 만난 것 같아요.

마추픽추, 사진 속에서만 보던 곳, TV 속에서만 만나보던 곳.
내 두 눈이, 내 가슴이, 내 피부가 맞닥뜨린 그곳은
내가 아는 인간이 만들었다고 할 수가 없는 곳이에요.
그 장엄함과 찬란함이 엄숙함으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당신에게도 꼭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도 모두!

이렇게 저에게 먼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영대·나리·주리 모두.

쿠스코에서"


페루사람에게 쿠스코는...

여전히 가설로만 존재하는 나스카평원의 나스카 라인(Nazca Lines), '땅과 시간을 창조한 자'로서의 파차카마(Pachacámac), 그리고 마추픽추의 신탁... 이곳의 땅을 밟고 선 지금도 페루는 온통 신비 그 자체이다.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는 온전하고 장엄한 모습을 한 번에 모두 보여주기를 꺼린다. 안개로 완전히 가리거나 일부만을 내보일 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 탓이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날, 새벽의 비로 쿠스코 전체가 안개 속이었고 산사태로 철길에 토사가 쌓여 3시간, 내 발길을 묶었다.

마추픽추가 한 번에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도 아니었다. 그런데 우비를 입고 입산한 마추픽추의 중턱에 오르자 삽시간에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는 그 극적인 반전조차 신비로 남았다.
   
리마로부터 쿠스코까지의 일정을 우리와 함께하면서 이 모든 순간들을 함께 나눈 젊은 페루인, 케이나(Keyna)는 한국에 매료되어있는 대학생이다. 나는 페루가 신비롭고 케이나는 한국을 신비로워한다. 나는 케이나를 통해 페루의 신비에 좀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케이나는 한국과 한국어에 매료된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의 대학생이다.
 케이나는 한국과 한국어에 매료된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의 대학생이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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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na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고 특별한 의미가 담겼나?
"아이마라(Aymara)어로 '힘'이라는 뜻입니다. 엄마가 아이마라어 사전을 펴놓고 어감이 좋은 단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좀 소개해줄래?
"올해 22살이고요.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교 국제무역학과 4학년입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음악, 아이스크림 그리고 비입니다. 제가 왜 비가 왜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빗소리가 좋고 비울 때의 분위기가 좋아요. 또한 그때의 향기도 좋습니다.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부터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어떤 방법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나?
"언어학원에서 한글을 배웠고 나중에 집에서 한국어 책과 드라마를 보면서 문법과 발음을 배웠습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우리 대학의 언어학원에서 계속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의 계획은?
"전공이 국제무역인만큼 한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어요."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나?
"일단 페루 사람들과 달라요. 시간을 더 잘 지키고 우리보다 성격이 더 급합니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합니다.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지식과 경험은 물론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돕고자 하시는 김 목사님과 한국 분들을 존경합니다. 저를 딸처럼 지켜봐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언제 한국에 올 계획이 있나?
"아직 확실한 계획은 없지만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케이나는 한국과 한국어에 매료된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의 대학생이다. 우리 원정대의 대장인 김광옥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리마에서 우리팀과 만났고 쿠스코까지 우리와 동행했다.
 케이나는 한국과 한국어에 매료된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의 대학생이다. 우리 원정대의 대장인 김광옥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리마에서 우리팀과 만났고 쿠스코까지 우리와 동행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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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나는 잉카인인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페루에는 잉카뿐만 아니라 여러 부족이 있고, 현재는 그 부족들이 모두 섞였습니다. 그러므로 잉카부족이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케이나에게 어떤 곳이지?
"자랑스럽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곳입니다."
 
-친구들이 쿠스코를 왜 방문하길 원하나?
"쿠스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산입니다. 주변 도시와 마추픽추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한 건축물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에요. 쿠스코는 수많은 페루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쿠스코의 어떤 모퉁이에서도, 어떤 사람에게도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산골짜기 한가운데에 있는 집들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그리고 그것을 체감할 수 있는 경이로운 풍경이 있습니다. 쿠스코는 모든 페루인들과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방문해야 하는 장소입니다. 쿠스코로 오세요."
 
-이번 쿠스코에 함께 가자는 말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나?
"처음 만나는 저를 초대해주시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꿈일까 싶었습니다."
 
-쿠스코와 마추픽추에서 어떤 느낌이었나?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만든 신들의 능력에 감탄했고 돌로 이렇게 놀라운 도시를 만드신 페루 조상님들의 기술에 감탄했습니다."
 
-이번 우리들과 쿠스코 여행을 하면서 든 생각은?
"사람은 인생에서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매일 열심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것은 제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비용때문에 마추픽추도 아직 방문해보지 못했다는 그녀에게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하고 싶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페루사람의 정서로 페루를 볼 수 있게했으며 우리 스스로는 보지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일깨워주었다.
 비용때문에 마추픽추도 아직 방문해보지 못했다는 그녀에게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하고 싶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페루사람의 정서로 페루를 볼 수 있게했으며 우리 스스로는 보지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일깨워주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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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나는 대화의 마지막에 '인연'을 언급했다.
 
"저도 이번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케이나와 나는 존재조차 몰랐다. 나는 페루에 왔고 케이나는 페루에 있었다. 그리고 만났다. 이것이 진공묘유(眞空妙有)임을 알겠다. '공(空)'이었으되 있음일 수 있음을... 파차카막이 '세상에 생기를 불어 넣는 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곳의 계곡과 돌과 그 돌들의 조합이, 이곳에서 눈을 마주친 라마가 사람이 그리고 케이나가 내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남미자전거여행, #페루, #쿠스코, #케이나, #잉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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