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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등장은 아직까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한국인들의 염원이다. 과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사례가 있긴 하지만, 노벨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과학(물리학, 생리의학, 화학) 부문에서는 수상자는 물론이고 뚜렷한 후보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숙명의 라이벌로 생각하는 일본이 노벨상 수상에 있어 매우 뛰어난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속이 타들어가곤 한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시발점으로 일본은 지금까지 약 스무명에 달하는 노벨상 과학부문 수상자를 배출해 내었다. 불과 최근(2016년)에도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정치, 문화의 영역이나 심지어는 산업, 기술의 영역에서도 한국은 단기간에 일본을 따라잡았고, 특정 영역들에서는 추월하기까지 했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커진다. 과연 두 나라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기에 한국인들은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 상들을 일본인들은 꾸준히 얻어내는 것일까.

김범성 교수의<나가오카&유카와: 아시아에서 과학하기>는 이러한 깊은 궁금증에 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일본도 과학계의 중심부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어떻게 배출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김범성 저 <아시아에서 과학하기>, 2006
 김범성 저 <아시아에서 과학하기>, 2006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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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객관성과 합리성, 그리고 보편성 등이다. 정치학이나 철학, 그리고 경제학과 같은 학문과 달리 과학은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사람에게나 동일한 것으로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시아에서 과학하기>는 일본 과학계의 초반 성장을 상징하는 두 인물을 다룬다. 그 중 하나인 나가오카는 일본이 이제 막 개화기에 접어들고 서구와 접촉하던 무렵 학문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가장 심란했던 고민은, '과연 일본인인 내가 과학을 해도 되는가' 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과학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유물처럼 다가왔고, 일본에 과학이 소개된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굉장히 지엽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가오카는 일본인인 자신이 과학을 해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게 가능할지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전을 탐독하며 아시아인들의 과거에도 과학적 성취들이 녹아있음을 확인한 그는 과감하게 물리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결심 이후에 그는 대부분의 동료들과 다르게 늘 '세계무대'를 주시하고 의식하였다. 그가 하고 싶었던 과학은 이미 서구에 의해 완성된 과학을 일본 내에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과학계의 주류 과제를 해결해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나가오카의 삶의 궤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 나아간 것도 그러하지만, 늘 국제무대와 과학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추었던 연구 태도 역시 주목할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나가오카의 열정이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사회와 정부의 노력이 수반되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외세로부터의 자립과 일본 민족 우수성의 증명이라는 목적 아래 상당한 국가적 지원이 일본 과학계를 향하였다고 한다. 단기적 성과만 강조하며 비효율적인 곳에 지원자금을 낭비한다고 비판받는 한국이 반성해야 할 점이다.

한편, <아시아에서 과학하기>의 또 다른 주인공 유카와는 나가오카의 '유산'을 계승해 내어 꽃을 피우는 데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해외에 발 디딘 적 없이 오로지 일본 내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책에서 그려지는 유카와의 모습은 나가오카와 마찬가지로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성과를 견주고자 하는 경쟁의식과 그에 따른 열정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후세대 답게 유카와가 훨씬 더 기술적으로나 인적 환경에서나 편리한 위치에 놓여있었고 자신만의 연구에 손쉽게 몰두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나가오카가 늘 '주변부 과학자'로서의 열등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일본인의 과학 분야에서의 성공을 염원했던 반면, 유카와는 이러한 민족적 도그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이미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였기에 시대 분위기가 나가오카 때와 달랐을 것이다.

한편 그는 '중간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 연구는 나가오카가 집중했던 '원자핵'에 대한 연구 테마와 연결되는 것이다. 게다가 유카와가 제기한 이론을 실증적으로 증명해 내는 데에 어려움이 생기자 이를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이들은 정부의 후원으로 해외에서 수학한 후 돌아왔던 일본인 과학자 집단, '니시노' 사단들이었다.

이처럼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 과학자의 탄생에는 이전 세대의 노력으로 쌓아올려진 배경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천재성이 탁월한 인재라도 아무것도 없는 토양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인물들이 한국 과학계에서는 꾸준하게 배출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들은 도와주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 지금처럼 노벨상은 언제 나오는지만 조급하게 재촉하고 걱정하는 태도는 아무 의미도 없음을 <아시아에서 과학하기>는 말해주고 있다. 


나가오카 & 유카와 : 아시아에서 과학하기

김범성 지음, 김영사(2006)


태그:#서평,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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