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쿨 러닝> 포스터

영화 <쿨 러닝> 포스터 ⓒ 월트 디즈니 픽처스


우리는 안다.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메달을 잣대 삼아 평가하고 순위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들인 노력과 시간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뜨거운 공감을 살 영화가 있다. 바로 <쿨 러닝>(1994)이다. 많은 이들에게 '탈룰라'로 이미 친숙한 영화지만, 알고 보면 현 시점에서 모두가 알아야 할 메시지까지 겸비했다.

자메이카 육상 국가대표 선발전, 육상 유망주인 데리스(리온)는 안타까운 사고로 탈락한다. 이에 낙담하던 차에 우연히 과거에 아버지에게 봅슬레이를 제안했던 왕년의 금메달 2관왕, 어빙(존 캔디)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곧장 절친한 친구인 상카(더그 E. 더그)를 꼬셔서 함께 어빙을 찾아간 데리스. 우여곡절 끝에 어빙이 코치를 수락하고, 같이 선발전에서 떨어졌던 주니어(롤 D. 루이스)와 율(마릭 요바)까지 합류하며 자메이카 최초 봅슬레이 팀이 결성된다. 그날부터 동계 올림픽을 향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디즈니의 느낌 물씬 풍기는 동계올림픽 영화

 영화 <쿨 러닝> 한 장면. 욕조에서 연습하는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 팀의 모습이다.

영화 <쿨 러닝> 한 장면. 욕조에서 연습하는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 팀의 모습이다. ⓒ 월트 디즈니 픽처스


<쿨 러닝>의 제작사는 바로 디즈니다. 그래서인지 마치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옮겨놓은 듯하다. 긍정성이 강한 인물과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애니메이션'스러운 유머와 몸 개그까지. 그런데 배우들의 연기는 어딘가 엉성하고 스토리 진행도 짜임새가 부족하다. 예를 들면, 올림픽 출전 정지됐던 자메이카 팀이 어빙 코치의 항의로 단번에 다시 자격을 얻는 식이다. 이렇듯 몇몇 사건들을 던져놓고 그 중간의 세세한 과정들은 거의 덜어냈다.

서사구조 또한 전형적이다. '단합이 안 되던 코치 및 팀원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들은 어느새 유대감이 형성되어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이야기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 러닝>은 재밌다. 왜일까. 우선 쉴 새 없이 나오는 유머가 큰 몫을 한다. 특히 상카는 아예 개그를 맡은 역할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웃음은 그가 책임진다. 그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고 웃긴다. 그리고 아마 많은 이들이 한 번씩은 접했을 '탈룰라' 밈(meme)이 바로 <쿨 러닝> 속 장면에서부터 비롯됐다. 주니어가 봅슬레이 썰매의 이름으로 '탈룰라'가 어떠냐고 하자, 모두들 비웃는다. 알고 보니 탈룰라는 주니어의 어머니 이름이었고, 그 순간 모두들 당황하여 애써 무마하려 하는 내용이다. 혹시 아직 못 봤다면 꼭 한 번 보길 권한다. 직접 봐야 웃기다. 정 안되면 검색해서 그 장면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메이카 팀

 영화 <쿨 러닝>의 한 장면. 나무 썰매로 연습 중인 자메이카 대표 팀. 맨 앞은 데리스 역을 맡은 리온의 모습이다.

영화 <쿨 러닝>의 한 장면. 나무 썰매로 연습 중인 자메이카 대표 팀. 맨 앞은 데리스 역을 맡은 리온의 모습이다. ⓒ 월트 디즈니 픽처스


두 번째 이유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단점으로 지적했던 예측 가능한 서사 구조와 많이 생략된 중간 과정들이다. 뻔한 이야기를 세세한 과정을 덜어내어 최대한 압축했고, 그 대신 빈 곳에 유머와 메시지를 채워 넣었다. 그 결과, 이 전형적인 서사를 친숙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단점이던 두 가지가 합쳐지니 장점으로 변한 것이다. 다만, 메시지를 주는 몇몇 장면에서마저 엉성한 연기와 급작스러운 전개로 뜬금 없다는 느낌이 든다.

<쿨 러닝>에는 꼭 기억해야 할 메시지도 있다. 우선 영화 속 한 장면을 보자. 알고 보니 과거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어빙. 데리스는 어빙에게 금메달을 두 개나 받았으면서 왜 그랬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금메달은 참 좋은 거야. 하지만 그게 없어서 부족함을 느낀다면, 있어도 마찬가지지."라고 한다. 이에 데리스는 "충분하다는 건 어떻게 알죠?"라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결승선을 넘을 때 알게 될 거야."

다음 날, 자메이카 팀은 경기 중간에 썰매가 고장나 엎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썰매를 어깨에 메고 완주한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 그들을 비웃던 타국 선수들, 자메이카 인들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은 그들에게 비난과 무시가 아닌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 데리스는 깨닫는다. 메달보다 중요한 것은 한 나라의 대표로서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 그 자체와 이에 자부심을 갖고 임하는 선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쿨 러닝>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최초 여성 팀으로서 출전한 자메이카. 이들 역시 코치의 팀 이탈, 썰매 대여비용 문제로 순탄치 않은 데뷔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자메이카 맥주회사의 극적인 후원으로 출전하여 20개국 중 18위를 기록했다. 또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팀 또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비용을 마련해 출전했고, 20위를 기록했다.

진정한 올림픽 정신, 메달보다 중요한 것

[올림픽] '응원 감사합니다' 21일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여자 봅슬레이 3차 경기에서 자메이카 재즈민 펜라토르 빅토리안-캐리 러셀 조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인사하고 있다.

▲ [올림픽] '응원 감사합니다' 21일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여자 봅슬레이 3차 경기에서 자메이카 재즈민 펜라토르 빅토리안-캐리 러셀 조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 모두 낮은 순위 때문에 암담했을까? 아니다. 이들은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갖고 올림픽을 임했고, 당당하게 장벽을 깨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뒀다. 그리고 이후 그들의 뒤에는 모두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눈부신 새 역사가 남았다.
    
이 같은 메시지를 우리는 이미 알지만, 어떤 이들은 아직 모른다. 성적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선수들을 학벌이나 인맥에 따라 차별한다. 이에 대해 그들은 비인기 종목이라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싹이 보이는 선수 위주로 키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실력이 아닌 학벌이나 인맥으로 가능성을 가린다니 어불성설이다. 또 매스컴에선 메달획득이 힘든 종목은 거의 조명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종목들의 경기는 TV에선 보기도 힘들다. 그리고 매스컴과 TV를 보는 이들은 대중이다. 과연 이 끊이지 않는 성적지상주의를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뿐만 아니라 아직 정확하게 조사된 바는 아니지만, 연습에만 매진하던 선수들을 자신들의 파벌 싸움에 몰아넣으며 반대 또는 소수파에게 불이익을 가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이렇듯 때로 얼룩진 메달의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씁쓸한 성적지상주의와 한 기득권의 득세만이 남을 뿐이다.

쿨러닝 영화 탈룰라 동계올림픽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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