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영화 상영회 '찰나' 포스터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담은 영화 '쉬운일 아니에요'가 처음 공개되었다.

▲ 단편 영화 상영회 '찰나' 포스터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담은 영화 '쉬운일 아니에요'가 처음 공개되었다. ⓒ 소요필름


[기사 수정 : 26일 오전 9시 54분]

단편 영화 <위르트에서>와 <쉬운 일 아니에요>의 감독 허성완씨를 다시 만났다. 세월호를 다룬 영화 상영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만난 지 한 달 만이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예술공간 '땅 속'에서 그와 그의 영화를 보았을 땐, 그가 예술 대학 출신이 아닌 정치외교과를 졸업한 늦깎이 영화 감독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상영회 '찰나'를 찾아준 특별한 관객 왼쪽부터 윤일상(작곡가), 유경근(예은이아빠), 윤경희(시연이엄마) 세 분이 함께 오셨다.

▲ 상영회 '찰나'를 찾아준 특별한 관객 왼쪽부터 윤일상(작곡가), 유경근(예은이아빠), 윤경희(시연이엄마) 세 분이 함께 오셨다. ⓒ 소요필름


지난 1월 13일, <찰나>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단편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회가 열린 예술 공간 '땅 속'을 찾은 관객들이 예상보다 많아 의자가 많이 모자랐다. 허성완 감독의 <위르트에서>와  <쉬운 일 아니에요> 그리고 송희근 감독의 <상망> 티저까지 총 세 편이 상영되었다. 그 중 영화 <쉬운 일 아니에요>는 상영회 찰나에 관심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었다.

작곡가 윤일상씨가 만든 진혼곡 '부디'와 별이 된 단원고 김시연 학생이 만든 '야, 이 돼지야'가 영화에 숨어있었다. 윤일상씨는 그 날, 시연이 엄마와 예은이 아빠 두 분과 함께 참석했다.

단편 영화 '쉬운일 아니에요'의 한장면  구름으로 덮힌 세상,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호명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자 민선이 찾아 온다.

▲ 단편 영화 '쉬운일 아니에요'의 한장면 구름으로 덮힌 세상,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호명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자 민선이 찾아 온다. ⓒ 소요필름


영화 <쉬운 일 아니에요>는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구름이 덮은 세상,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다며 찾아온 민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호명. 라디오 소리만 들려오는 밀폐된 공간, 구름 제거 작전을 약속하는 정치인, 그리고 간간히 나타나는 흑백 영상들과 음향 효과는 몇몇 대사들 보다도 강하게 관객을 자극했다.

그럼에도 유경근(예은이 아빠)씨는 소감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제작 과정에서 기억하는 싸움을 하느라 힘들었을 제작진을 안아주었다. 윤경희(시연이 엄마)씨도 이렇게 다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전했다.

관객과의 대화 눈물을 닦는 분이 무아경사운드 이혜민 대표, 마이크를 잡은 분이 허성완감독, 그 옆이 '쉬운일 아니에요'에서 호명역을 맡은 영화 배우 권다함씨다.

▲ 관객과의 대화 눈물을 닦는 분이 무아경사운드 이혜민 대표, 마이크를 잡은 분이 허성완감독, 그 옆이 '쉬운일 아니에요'에서 호명역을 맡은 영화 배우 권다함씨다. ⓒ 소요필름


음향을 담당했던 '무아경 사운드' 이혜민씨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는 음향을 준비하며 울음과 한숨을 수없이 토해냈다고 말했다. 반면 허성완 감독은 담담하게 이 영화는 세월호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허 감독에게 그 날의 일을 다시 물어봤다.

예술공간 땅속에서 열린 단편 영화 상영회 '찰나' 지난 1월 13일 '예술 공간 땅속'에서 단편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시작을 앞둔 모습.

▲ 예술공간 땅속에서 열린 단편 영화 상영회 '찰나' 지난 1월 13일 '예술 공간 땅속'에서 단편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시작을 앞둔 모습. ⓒ 소요필름


- '세월호 영화'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이 영화가 적당히 의식 있고 적당히 비겁한 제 자신과 직면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참사는 아직 다큐로 다뤄져야지 영화로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 그래서 자기 고백적인 영화라고 했군요.
"사실 상영회 날, 미디어를 통해서만 보았던 예은이 아빠와 시연이 엄마를 처음 뵈었어요. 두 분이 정말로 오실 줄 몰랐어요. 방송이었다면 끄면 되었겠죠. 하지만 현실이었어요. 고개를 돌려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그때 알았어요. 직면한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제작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하는 예은이 아빠 상영회에 함께 한 416가족협의회 유경근님께서 미소로 감사를 전하고 있다. 허성완 감독은 자신이 도리어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 제작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하는 예은이 아빠 상영회에 함께 한 416가족협의회 유경근님께서 미소로 감사를 전하고 있다. 허성완 감독은 자신이 도리어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 소요필름


- 제목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나봐요. 뭐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까?
"너무 많은 것들이요.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잊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고... 아마 이해하기도 쉽지 않으셨을 거에요."

- 누군가에겐 외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군요.
"이해하기 힘든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장 손쉽게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알아서 어떻게 되겠지 하며 잊고 살려는 거잖아요. 가해자들은 늘 그걸 이용했어요. 조용히만 있으면 아무일 없다고요."

'잊지않아줘서 고맙다' 영화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는 관객들.

▲ '잊지않아줘서 고맙다' 영화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는 관객들. ⓒ 소요필름


- 사람들이 그 날 일을 쉽게 잊지도 못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생중계로 배가 서서히 가라 앉는 걸, 그렇게 한 명도 살리지 못하는 걸 봐버렸기 때문일 거에요.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거짓말만 일삼던 당시의 언론 보도도 일정한 역할은 한 셈이에요. 어쨌거나 우리들 모두를 목격자로 만들었으니까요. 본 이상 선택할 수밖에 없죠. 외면할 것인가 직면할 것인가. 영화 속의 라디오 방송도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 관객들이 아무 질문이 없었어요.
"불친절한 영화였을 거에요. 많은 것들을 설명 대신 사운드와 이미지 속에 감춰두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죠. 다만 영화가 한번에 손쉽게 이해되고 잊히는 것보다 처음에는 어렵더라도 자꾸만 숨은 의미들을 고민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단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상영회에선 허성완 감독의 영화 '위르트에서'와 '쉬운일이 아니에요' 2 편과 송희근 감독의 '상망' 티져가 상영되었다.

▲ 단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상영회에선 허성완 감독의 영화 '위르트에서'와 '쉬운일이 아니에요' 2 편과 송희근 감독의 '상망' 티져가 상영되었다. ⓒ 소요필름


- 첫 작품 <위르트에서(At Urt)>도 인상적이었어요. 위르트는 어디 있나요?
"롤랑 바르트가 그의 어머니를 묻은 곳이에요. 사랑이 끝난 장소이자, 동시에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저는 정의했어요."

-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네'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황병승 시인의 '여장남자 시코쿠'라는 시에요. 같은 부분을 들어 다른 것을 함부로 하지 않고, 다른 부분을 들어 같은 것을 괄시하지 않는 것을 사랑이라 했을 때, 경계가 흐릿한 그 제목이 눈에 띄었나봐요. 촬영 전날 밤, 그 시를 우연히 보았는데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와 잘 맞아 떨어져서 영화에 넣기로 결정했죠."

영화 '위르트에서' 의 엔딩 크레딧 사랑,언어,동성애,교실을 담고 있는 영화 '위르트에서'는 허성완 감독의 첫작품이다.

▲ 영화 '위르트에서' 의 엔딩 크레딧 사랑,언어,동성애,교실을 담고 있는 영화 '위르트에서'는 허성완 감독의 첫작품이다. ⓒ 소요필름


- 그 시가 영화를 시작하는 씨앗이 된 줄 알았어요.
"보신 분들이 다들 그렇게 느끼시더라구요. 하지만 사실 시나리오는 모의고사 끝나고 문제를 설명해달라는 상황만 있었어요. 교실, 언어, 사랑, 동성애 이런 키워드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고 있다가 촬영 전 날 '여장남자 시코쿠'를 보게 되었고, 바로 영화 속에 넣었죠. 운명이었나...?"

영화제가 끝난 뒤 단편영화 상영회 '찰나'에는 30여명 넘게 관객들이 찾아와 제작자들에게 힘이 되었다.  끝난 뒤, 빈자리를 기록한 소요 필름.

▲ 영화제가 끝난 뒤 단편영화 상영회 '찰나'에는 30여명 넘게 관객들이 찾아와 제작자들에게 힘이 되었다. 끝난 뒤, 빈자리를 기록한 소요 필름. ⓒ 소요필름


- 바람부는 풀 밭의 첫 장면도, 김창완 밴드의 엔딩 곡도 다 사랑에 녹아든 느낌이었어요.
"풀밭은 위르트가 아니라 오산 화성 쪽에 있는 아파트 개발 예정지에서 찍은 장면이에요. 노래는 산울림의 '더더더'구요. 제가 산울림의 대단한 팬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애도일기'에 남들이 자신을 규정하게 놔두지 말고, 자기 언어로 사유하고 정의 내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문장을 남겼어요. '위르트'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시작되는 곳이에요." 

영화속으로 들어가는 길 나무 파레트를 쌓아 올려놓은 영사기

▲ 영화속으로 들어가는 길 나무 파레트를 쌓아 올려놓은 영사기 ⓒ 소요필름


동성애를 외면하지 않고 본질을 직면한, 이 17분짜리 단편 영화는 이미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었다. 작품을 만들어도 상영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왓챠(watcha)를 통해서만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성완씨는 소요 필름을 이끌며 동료들과 함께 직접 단편 영화 상영회인 '찰나'를 만들고 홍보했다. 관객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

- 단편 영화의 길에 선 영화인들이 많나요? 
"우리나라는 아주 엉망이지만, 미국은 인디 영화나 독립 영화와 상업 영화들이 균형 있게 자라고 있어요. 유명 배우들도 왔다 갔다 할 정도죠. 우리 나라도 단편 영화가 많아요. 하지만 관객과 만날 길이 너무 좁아요. 배급사와 제작사부터 분리하는 것부터 해야 할 거에요."

예술공간 땅속에서 열린 단편 영화 상영회 '찰나' 송희근 감독이 자신의 작품 '상망'의 티져를 공개한 뒤 담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예술공간 땅속에서 열린 단편 영화 상영회 '찰나' 송희근 감독이 자신의 작품 '상망'의 티져를 공개한 뒤 담고 싶었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소요필름


- 영화 감독의 길로 뛰어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고 한국 영화에 미치고, <괴물>을 본 뒤에는 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데이빗 린치나 짐 자무시 감독들처럼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 감독으로 살고 싶어요.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먼저 돼야겠죠. 스스로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요.

- 밥은 먹고 다니시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가 막 굶고 살진 않았지만 이젠 독립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굶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니겠습니까?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비용을 지금 영화로 벌 수 있게 된다면 딱이죠. 제 첫 작품에 400만 원을 투자해주신 허예행님이 지금의 나를 만드셨죠."

짧지만 충분한 영화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겠다는 허성완 감독은 4월에도 또 다른 활동을 계획 중이다. 그는 첫 작품 <위르트에서>를 통해 사랑에 대한 자기 정의를 찾았고, <쉬운 일 아니에요>를 통해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그가 발명해낼 새 영화들이 세상과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볼 관객들을 찾고 있다.

수줍음 세상을 향한 방백을 마친 허성완 감독이 돌아서며 수줍게 웃고 있다.

▲ 수줍음 세상을 향한 방백을 마친 허성완 감독이 돌아서며 수줍게 웃고 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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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겹겹이 쌓여 그가 위대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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