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2018년 영화정책세미나'에서 인사하고 있는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신임 이사장

지난 1월 29일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2018년 영화정책세미나'에서 인사하고 있는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신임 이사장 ⓒ 영화네트워크 부산


정치적 탄압으로 부산영화제에서 쫓겨나기 전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쓰던 이메일 아이디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인 'yong(용)'이었다. '컴맹'이라 이메일도 누군가 출력을 해줘야만 읽을 수 있고 전자결재도 대신 처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지만, 법원은 그에게 책임을 물어 벌금형을 선고했다. 정치적 탄압은 외면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부산영화제에 다시금 복귀했다. 2016년 2월 권력에 밉보여 강제로 쫓겨난 지 2년 만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강제 해임으로 혼란을 겪었던 부산영화제가 2년간의 시련을 마무리 짓고 정상화의 궤도에 진입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부산영화제 이사들은 표결 끝에 12: 3의 압도적인 지지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용의 귀환이다(관련기사: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으로 복귀... "정상화 첫걸음").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온갖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버티다가 집행위원장에서 강제로 해임됐던 것이기에 이사장으로의 복귀는 상당히 의미가 크다. 지난 2014년 영화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보복이었지만, 그를 쫓아냈던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촛불의 힘으로 수감됐고 서병수 부산시장의 입지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쫓겨났던 사람이 다시 되돌아오면서 최종 승부의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한국영화의 승리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 정치적 탄압을 겪던 부산영화제를 응원하는 국내외 감독들의 모습이 이용관 신임 이사장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돼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 정치적 탄압을 겪던 부산영화제를 응원하는 국내외 감독들의 모습이 이용관 신임 이사장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돼 있다. ⓒ 성하훈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이사장 귀환은 단순히 개인의 복귀 차원을 넘어 표현의 자유와 부당한 권력에 맞서 투쟁해 온 한국영화의 승리기도 하다. 순순히 물러나면 고발하지 않겠다는 회유를 거부해 상처 입었지만, 이 이사장이 고된 시간을 잘 버텨낸 덕분에 한국영화는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게 됐다. 지난 2년간 한국영화와 박근혜 정권의 대치전선이 부산영화제였다면, 끈질긴 투쟁은 헛되지 않은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이용관 명예회복과 부산영화제 복귀를 내걸고 끝까지 보이콧을 유지했던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지난 2년간 흔들림 없이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한 감독조합의 굳건한 자세는 중요한 밑바탕이었다. 부득이 영화제에 참석하는 감독들 역시 피켓 시위 등을 통해 부산영화제에 대한 부당한 정치탄압을 알리며 서병수 시장을 사과를 압박했다.

영화계는 이용관 이사장의 복귀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 안정숙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드디어 끝났고, 드디어 시작"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시무 평론가는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 두 분의 복귀로 영화제 정상화의 발판이 마련됐다"면서 "두 분의 힘이 합쳐져 초심으로 영화제를 재출범한다는 각오로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용관 신임 이사장은 <오마이스타>에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며 "영화인들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겠고, 2월 정기총회가 끝나고 기자회견 등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해 보겠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다만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준 영화인들과 부산지역에서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이용관 이사장을 적극 돕고 지원한 영화계 대표 인사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정지영 감독과 영진위원장인 오석근 감독, 이준동 영진위 부위원장, 김상화 부산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등이 꼽힌다. 배우들 중에서는 김의성, 유지태 배우가 이용관 이사장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을 찾아 응원하기도 했다.

원로영화인 중에는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을 했던 정진우 감독이 이번 선임 과정에서 '영화인의 존경과 풍부한 영화식견을 갖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이사장이 돼야 한다'는 추천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영화제 관계자는 "이사회 임시 의장을 이춘연 대표 역시 이사회 과정에서 쓰러질 지경까지 가면서도 부산시 쪽 이사들이 제동 걸려는 것을 잘 막아내며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문 대통령은 지난 부산영화제 기간 중 영화 관람, 영화과 학생들과 간담회 후 영화의 전당을 찾아 부산영화제에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하며 부산영화제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부산영화제를 흔들어 놓은 서병수 부산시장과는 비교되는 행보였다. 

영화계가 신임 이사장에 요구하는 것

 지난해 부산영화제 기간 중 서병수 부산시장을 규탄하는 레드카펫 퍼포먼스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화인들

지난해 부산영화제 기간 중 서병수 부산시장을 규탄하는 레드카펫 퍼포먼스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화인들 ⓒ 부산영화제, 한독협


이용관 이사장 선임으로 정상화의 첫 단추는 끼웠으나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앞으로의 과정이 주목 받고 있는 이유다. 정상화가 됐다기보다는 이제 본격적인 정상화를 위한 과정이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의견이다.

영화계가 이 이사장에게 복귀를 주문했던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실추된 부산영화제를 살려낼 유일한 대안이 그였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한동안 영화제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복귀한 것도 자신을 위해 영화제 참가 보이콧과 다양한 방식의 시위를 통해 싸워준 영화인들의 요구에 부담을 느껴서다. 그가 "영화인들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바탕이다.

실제로 영화계가 이 이사장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이사장으로서는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다.

우선 완전한 독립성의 확보다. 지난 2016년 개정된 정관은 실질적 독립성을 확보한 것으로는 볼 수 있으나 제도적, 구조적 독립성이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부산시 추천인사와 영화계 추천 인사의 동수 이사 구성은 애초 영화계가 과반 이상을 차지해 간섭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이사장 역시 정관 개정의 필요성을 중요시 여기고 있는 만큼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다. 임기 내 부산영화제가 다시는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박근혜 정권에서 기세등등하게 부산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압박한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서 시장은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사과하라는 영화계의 요구를 거부하고 현재까지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있다. 이에 영화인들은 후안무치하다거나 뻔뻔하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폐막식에서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박배일 감독이 서병수 시장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정도다. 박 감독은 사과를 요구하고 주권자로 가만 보고 있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성근 배우 역시 지난달 31일 트위터에 이용관 이사장 선임 소식을 전하며 서병수 시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영화인들은 창립 주역 중 하나였던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의 안타까운 죽음도 서병수 시장의 부산영화제 탄압과 일정부분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영화계가 이용관 이사장에게 부산영화제에 복귀하라고 요구한 것에는 서 시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따라서 이 같은 영화계의 요구를 잘 받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김동호 이사장이 싸워야 할 상대인 서병수 시장에게 유화적으로 대응하다 신뢰를 잃고 비판을 받은 것도 새겨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계 뭉쳐야 할 시기

 이용관 부산영화제 신임 이사장과 전양준 신임 집행위원장이 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시상을 위해 함께 서 있는 모습

이용관 부산영화제 신임 이사장과 전양준 신임 집행위원장이 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시상을 위해 함께 서 있는 모습 ⓒ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보이콧 유지와 철회로 갈리거나 대응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간극이 벌어진 영화인들의 마음을 풀어내는 것도 이 이사장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부산영화제의 한 이사는 "그간 쌓인 상처들이 많아 아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을 역임한 영화수입배급사 할마씨네토끼 장길황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많은 영화인들의 생각에 반한 결정으로 영화계를 양분시켰다"면서도 "두 분의 방식이 달랐을 뿐, 영화제를 사랑하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모두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부터 모든 걸 정상화 해야 할 시점으로 양분되어진 영화계는 이제 다시 하나로 뭉쳐야 할 시기"라며 "20여 년을 함께 해 온 동지들이 다시 예전처럼 하나로 결집할 수 있도록 이용관 신임 이사장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전양준 신임 집행위원장에 대해 다소 부산지역과 영화계 일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이는 것 역시도 해소시켜야 할 과제다. 부산영화제 재도약의 기틀을 다져서 후배들에게 물려준 후 명예롭게 떠나라는 의미도 이번 두 사람의 복귀에 담겨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부담감은 필요해 보인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전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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