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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그들(아내 김보라-50세, 남편 최병찬-50세)을 안성 자택에서 만났다. 처음 본  거실은 편안했다. 손님이 온다고 하면 칼같이 치우는 여느 집과 달리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이었다. 범상치 않은 이 편안함은 뭐지 싶었다. 편안해도 '너무' 편안했다. 이 분위가 우리를 '수다삼매경'으로 인도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인터뷰인지 수다인지 모를 만큼 우리의 대화는 인터뷰 내내 유쾌했다.
▲ 수다 삼매경 인터뷰인지 수다인지 모를 만큼 우리의 대화는 인터뷰 내내 유쾌했다.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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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이 부부가 적어도 '돈 버는 남자, 집안일 하는 여자' 쯤은 아니어도, '평생 바깥일 하는 아내, 외조 하는 남편' 쯤은 되는 줄 알았다.

보라씨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2014년부터)이고, 직전엔 20년 넘게 '안성의료생협'창립 멤버로서 실무자를 해오던 터였다. 물론 병찬씨도 평생 맞벌이를 했지만.

두 사람이 안성을 오게 된 사연부터 범상치 않았다. 왜 30년 전에 농촌도시 안성 땅을 밟았을까. 그랬다. 학창시절, 88년도에 병찬씨는 농활 하러, 89년도에 보라씨는 의료봉사 하러, 처음 안성에 왔었다. 아직 이들에겐 만남의 연은 없었다.

그 후 93년도에 병찬씨는 안성고삼 농협의 선배의 부탁으로 농협 일을 하기 위해서, 보라씨는 안성농민의원(안성의료생협의 초창기)의 창립을 위해, 각자 안성 땅을 다시 밟았다. 병찬씨는 농민을 돕는 일로, 보라씨는 간호사로서 주민을 돕는 일로 안성에 다시 오게 되었다.

병찬씨가 자신이 본 아내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병찬씨 병찬씨가 자신이 본 아내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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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보라랑 병찬이랑 결혼하면 되겠네", 말이 씨가 되다

이들의 안성자립을 위해 반겨준 안성사람들은, 대부분 두 사람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았다. 이런 모임에서 막내는 거의 두 사람이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25살 청춘이었다. 선배들은 짓궂게 "그럼 보라랑 병찬이랑 결혼하면 되겠네"라고 놀렸고, 그것이 덜컥 현실이 되고 말았다. 설마, 그 말했다고 결혼 했겠냐마는, 말이 씨가 된 건 사실이었다.

그 후 28살이 되던 해, 결혼을 했다. 두 사람에겐 근사한 프러포즈는 없었다. 외로운 타향살이 아니었던가. 보라씨는 "일단은 외로웠고, 혼자보다 편할 거 같아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결혼하려고 주위를 돌아보니, 그래도 자신을 잘 이해해줄 거 같은 남자가 병찬씨였다고 했다. 보라씨 본인 말로는 "그때 내가 '신부 깜'으로 인기가 좀 있었다"고 하는데, 글쎄 증명할 방법이.

그럼 병찬씨는? 대답이 간단했다. "보라씨가 결혼하자고 해서 했다". 헉! 이 남자 뭐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병찬씨가 고백했다. 보라씨는 3가지가 매력이 있었다고. 첫째는 똑똑했고, 둘째는 생활력이 강했고, 셋째는 웃는 모습이 예뻤다고. 웃는 모습이 예뻤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보라씨는 이미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이 묘한 분위기를 어쩌지 싶었다. 

이야기하다가 서로 신난 보라씨와 병찬씨.
▲ 부부 이야기하다가 서로 신난 보라씨와 병찬씨.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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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은 시간 되는 사람이 먼저 한다"

평생 맞벌이 부부이면서도, 이 가정이 잘 살아온 원칙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간단했다. "집안일은 시간 되는 사람이 먼저 한다"는 것. 여기에 남녀의 구분은 애당초 이집에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두 사람은 '가정교대근무'를 했다. 무슨 말이냐고? 맞벌이를 해도 서로 격일제로 집에 일찍 들어와서,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기로 합의했다. 회사 스케줄도 '가정교대근무'를 기본으로 잡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약속을 어기면, 한 사람의 회사스케줄이 엉망이 되니까, 웬만하면 어기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딸이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왜 같이 모이는 날이 없죠."라고 했단다.

"그렇다고 남편이 알아서 살림을 잘 하는 건 아니랍니다. 남자들은 3부류인데, '1번은 시켜도 안하는 사람, 2번은 시키면 하는 사람, 3번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2번의 사람'이었다가 최근에 3번으로 진화해가는 중이랍니다."

병찬씨도 인정한다고 했다. '평생 바깥일하는 아내, 외조 하는 남편'이란 헛소문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완전히 날려 보낼 시간이 된 거다. '평생 바깥일 하는 부부, 상부상조하는 부부', 이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김보라 도의원이 남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남편은 뭐라 할말이 없다. 하하하하.
▲ 김보라 도의원 김보라 도의원이 남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남편은 뭐라 할말이 없다. 하하하하.
ⓒ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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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시절, 병찬씨가 지인의 집들이를 가서 놀다가, 새벽에 귀가해서 오니, 집 앞에 저승사자 같은 여성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단다. 바로 보라씨였다. 그때를 떠올리던 병찬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의 아내의 서슬 퍼런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병찬씨는 그때를 추억했다. 하루 종일 혼자 육아를 하는, 아내와 한 약속(조기 귀가)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반면, 자신들의 집들이에 지인들을 초대했을 때, 더 놀다가 늦게 가라고 해도, 지인들은 보라씨의 눈치를 보며, 2차를 바깥에서 했다. 이유는? 평소 동료들이랑 술잔을 부딪치던 보라씨. 항상 사무실에서 일만하던 보라씨를 보아오던 동료들은, 보라씨가 앞치마를 하고 옆에 다가와서, "뭐 부족한 거 없냐? 뭘 더 드릴까?"라고 물어오면, 그게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라는 분위기 있잖은가.

"남편이 언제 고마웠느냐"고 묻자 보라씨는 큰 아이가 어릴 때라고 했다. 바깥일을 하고 늦게 귀가 했다가, 우연히 병찬씨가 아이를 재우면서 하는 자장가를 엿들었다. "엄마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 하는 분이라서 늦게 오시는 거야. 우리 아기 잘 자라"고 하는 말이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엄마가 늦게 오더라도 항상 "우리 엄마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하다가 늦게 오는 것"이라고 인식하며 자랐단다.

큰아이가 5세, 작은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곧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며, "성실히 돈을 더 벌겠다"가 아니라, 대책 없이 국악과에 편입해 공부하고자 할 때도, 보라씨는 시원하게 "당신이 원하면 오케이"라 했다.

한번은 병찬씨가 "여보 이 문제 때문에 고민 되네. 어떡하면 좋지요"라고 하니, 보라씨는 "뭘 그리 고민해요. 딱 봐도 그걸로 하면 되겠구만"이라고 하더란다. 병찬씨는 "당신은 참. 누가 답을 몰라서 그러나. 그냥 당신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그랬지요"라고 대답했다.

보라씨(경기도의원 안성)는 위의 가족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다닌다. 
그녀는 정치인이지만, 모성애가 충만하고 가족애가 남다른 엄마이자 아내였다.
▲ 가족사진 보라씨(경기도의원 안성)는 위의 가족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다닌다. 그녀는 정치인이지만, 모성애가 충만하고 가족애가 남다른 엄마이자 아내였다.
ⓒ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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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원동력은 '포기와 존중'의 철학이었다

병찬씨는 안전하게 세팅이 되어야 일을 시작하고, 보라씨는 일단 일을 시작해놓고 해가면서 생각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사람의 맞벌이 역사가 평탄했던, 진짜 원동력이 무언지 궁금해졌다.

일단 두 사람은 모두 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기념일이나 생일 등을 챙겨주지 않아도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22년차 동갑내기 이 부부는 지금도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고 했다.

이 부부의 비결은 '포기와 존중의 철학'을 평소 실천하는 데 있었다. 덕분에 아빠보다 더 살림 잘하는 19살 아들과, 엄마보다 더 야무진 22살 딸로, 자녀들이 잘 자라줬다.


태그:#김보라, #김보라도의원, #최병찬, #김보라 경기도의원,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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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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