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중 가장 뜨거웠던 그때 1987년 상반기다. 지난 2017년 상반기로 그만큼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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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 운전사>가 주었던 감동이 채 사라지기 전에, 대한민국 사회에 또 다른 영향을 끼칠 영화 < 1987 >이 개봉했다. < 1987 >은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장준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윤석, 하정우 등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의사와 간호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긴급히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의사는 시신에 소생불가판정을 내리고 경찰들은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로 발표한다. 시신은 다름 아닌 서울대생 박종철이었고, < 1987 >은 박종철의 죽음을 중심으로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통해 시대상을 보여준다.

정의를 추구하는 소수의 사람들, 그들이 만든 오늘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죽음은 '고문치사'가 아닌 '쇼크사' 즉 심장마비로 발표된다. 건장한 대학생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사회와 언론의 관심은 빗발치지만 정부에서는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궤변으로 국민들을 공분케 한다. 당시 정부는 보도지침을 내려 관련기사가 일체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언론을 통제한다. 보도지침으로 인해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민들은 진실을 알지 못하며 알 권리를 침해 받는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과, 부조리한 권력에 저항하면서 올바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영화 속의 윤 기자(이희준 분)와 최 검사(하정우 분)의 모습으로 대표된다. 진실을 가두고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진실은 가둘 수 없다고 항변하는 모습, 진실을 알아내려 온몸으로 부딪히는 윤 기자 모습은 언론통제가 극심하던 당시 언론정신을 수호하기 위해서 언론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려준다. 이러한 언론인들은 끊임 없는 언론통제와 거기에 복종하는 언론사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송건호 기자를 중심으로 1988년 <한겨레>를 창간한다.

 1987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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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검사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그는 부정의한 권력에 대놓고 반항한다. 자신이 옷을 벗더라도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단순히 법률 실증주의만을 추구하는 모습처럼 보일지라도, 권력에 저항하는 최 검사의 모습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박 처장에게 농담으로 모욕을 주는 장면, 마지막에 능글맞게 변호사 명함을 건네주는 모습을 통해 시원함을 넘어 통쾌함까지 느끼게 해준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당시 최고권력에 복종하고 굴복했지만 최 검사같은 사람은 존재했다. 이는 정의를 추구하는 소수, 바로 그 사람들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주축이었음을 보여준다.

세상물정 모르는 연희(김태리 분)는 가수 유재하와 미팅 그리고 잘생긴 남자에만 관심있는 갓 스무살 신입생이다. 가끔 민주화 운동하는 삼촌의 비둘기가 되어 중요문서를 전달하지만 정작 현실에는 관심이 없다. 우연히 광주 사건의 참혹한 진실을 알게된 연희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선배, 삼촌과 갈등을 겪게 된다.

소중한 사람이 다친다는 단순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연희와 삼촌의 대화를 통해, 연희에게 아버지와 관련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촌은 교도소 내에서 노조를 만들려다가 정직당했고 연희의 아버지 또한 1970년대 노동운동으로 인해 사망했다. 아버지와 삼촌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다가 겪은 수모와 아픔은 연희에게 상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연희는 일부러 사회 현실에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잘못된 걸 알지만 피가 끓어오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악물고 현실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상실을 경험하기 싫어서.

1987년의 대학생, 그리고 2017년의 대학생

 1987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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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 >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시위는 대부분 학생들이 주도한다. 군부정권에서도 주요 대학을 점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대학생들의 가방을 뒤지고, 학생들이 숨어서 운동을 계획하는 모습을 통해서 대한민국 민주화의 근간은 학생들의 희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한 치 앞길을 계획해서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어 이 나라를 살아갈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미래 세대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염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수많은 청년들의 자기희생과 용기는 자기 한 몸 희생해서 자식들이 살게될 '그 날'에 대한 소망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청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6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1987년 6월 29일 전두환 정부는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하며 7년간의 독재정권에서 물러나게 된다.

2017년 대한민국도 유난히 추운 겨울을 경험했다. 지도자답지 못한 지도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상처를 경험했다. 시민의 힘은 무능한 지도자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했고, 좀 더 따뜻한 봄날을 기대하며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다. 그 민주시민의 힘의 시발점은 학생들이었다.

부당하게 침해당한 권리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인해 작은 틈이 벌어졌고, 그 틈이 갈라져서 진정한 민주시민의 힘을 보일 수 있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청년은 분노해야 한다. 청년의 거룩한 분노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능력이 나타난다. 이 시대의 청년으로서 분노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영화는 '그날이 오면' 노래를 배경으로 실제 6월 민주화 운동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염원했던 그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2017년의 대한민국은 시민의 힘으로 무능한 지도자를 내려오게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현실로 이행된 일이기에, 30년 전의 시민들이 원하는 '그 날'은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그날은 오지 않았다.

5.18민주화 운동과 6월 민주화 운동,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책임자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진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분단국가의 현실을 이용하여 민주주의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모독하고 있다.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전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예우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지난 12월 29일, 독일 사법부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나치 유대인 수용수의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현재나이 96세의 오스카 그뢰닝에게 실형 4년형을 결정했다. 나치의 유대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유대인 학살을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밝힌 오스카의 죄는 한국법으로는 정상참작이 가능하고, 96세의 노인에게 4년의 실형은 옥사하라는 소리와 다름없다라는 반론이 있지만, 독일 헌법재판소는 단호했다.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당사자가 뉘우쳐도, 단순히 지시를 따랐어도, 지위가 일개 말단일지라도 엄벌에 처한다'는 정신은 75년 전의 단순가담도 국가적인 범죄는 준엄하게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는 공동체 정신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에게 가장 필요한 공동체 정신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에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것, 그래서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이 시민의 힘으로 국가권력을 건네받은 현 정부가 우선순위에 두고 이행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새해, 지금의 대한민국, 그리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에게 온전한 '그 날'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영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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