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선동열 감독이 숙적 일본에 7-0 완패 한 후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선동열 감독이 숙적 일본에 7-0 완패 한 후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선동열호가 희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첫 항해를 마감했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지난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결승전에서 0-7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초의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선동열 감독은 사령탑 데뷔전이었던 APBC에서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려 도전장을 던졌다.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이 24세 이상 와일드카드를 적극 활용하며 전력을 극대화한 것과 달리, 선동열 감독은 와일드카드도 포기했다. 장기적으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도쿄올림픽 등을 대비하여 '세대교체'를 시작한 야구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당장의 성적보다 젊은 선수들에게 국제경험을 쌓게 해주는 데 의미를 둔 포석이었다.

APBC에서 선동열호가 거둔 성과에 대한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그만하면 선방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한국야구의 현 주소를 확인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저마다 나름의 일리가 있는 분석들이다.

일단 선동열호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로는 대표팀 출범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 꼽힌다. 이번 대회가 시작하기 전만 해도 한국 대표팀은 성인무대에서 국제경험을 갖춘 선수가 거의 없었다. 부담스러운 한일전과 도쿄돔 원정 경험 역시 전무했다. 하지만 한국은 에선전에서 일본과 대만을 상대로 연이어 팽팽한 한점차 승부를 펼치며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했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많은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의 미래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가장 우려했던 선발진에서 지난 16일 일본과 개막전에 나선 장현식이 5이닝 4피안타 2볼넷 2탈삼진 1실점, 17일 대만전에서 임기영이 7이닝 2피안타 3볼넷 7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여줬다. 일본과의 결승전에 나선 박세웅은 3이닝 3피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그나마 실점을 최소화하며 버텨냈다. 또 다른 취약 포지션으로 꼽히던 포수에도 3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든든하게 안방을 지닌 한승택의 안정감이 돋보였다.

상대적으로 타선과 수비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몇몇 원석을 발굴했다. 3경기에서 모두 톱타자로 나선 박민우는 10타수 4안타 3볼넷으로 활약하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다운 기량을 과시했다. 막내 이정후는 타율(0.154, 13타수 2안타)은 낮았지만, 16일 일본전에서 2타점 적시타를 치고 17일 대만을 상대로 1타점 결승 3루타 등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때려내는 클러치 능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하성은 16일 개막전 솔로포, 19일 결승전 2루타로 일본 투수진을 괴롭히며 11타수 3안타(타율 0.273) 1타점으로 대표팀의 장타 가뭄을 그나마 해갈해줬다.

하지만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적지 않았다.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게 두 번이나 패하며 실력차를 절감한 것은 찜찜한 마무리다. 특히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개막전에서 김윤동-함덕주 등 믿었던 불펜의 집단 난조로 당한 역전패가 유독 뼈아팠다. 당초 적재적소의 투수 운용과 '지키는 야구'가 강점으로 평가됐던 선동열 감독이지만 적어도 이번 대회에서는 이런 장점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선동열호, 다음 무대에서는 성장한 모습 보여줄까

앞서 선전한 예선 일본-대만전에서는 모두 선발야구가 빛을 발한 반면 불펜의 활약은 저조했다. 심지어 결승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상대로는 마운드가 일찌감치 무너지며 오히려 예선보다 더 처참한 완패를 당했다. 오히려 선수들이 의지를 보인 데 비하여 코칭스태프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나 치열함이 떨어져 보일 정도였다.

선동열 감독은 점수 차가 벌어질 조짐을 보이자 개막전에서 마무리에 실패한 김윤동을 비롯하여 그동안 투입하지 않았던 투수들을 두루 활용했는데 일각에서는 완패에 대한 부담을 젊은 선수들의 '경험 쌓기'라는 명분으로 무마하려던 게 아니었냐는 곱지않은 시각도 나왔다.

 지난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이민호 7회말 일본 니시카와에 우월 솔로 홈런을 맞고 아쉬워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 이민호 7회말 일본 니시카와에 우월 솔로 홈런을 맞고 아쉬워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패배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도 많지만, 일본 같은 강팀을 상대로 승리의 경험을 통하여 얻는 자신감과 상승세는 더욱 크다. 어차피 이번에 뽑힌 25명의 선수들 모두가 다음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까지 변동없이 그대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보다 전력이 앞선 일본도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팀'을 꾸리기 위하여 와일드카드를 활용했다. 한국도 일본이나 대만처럼 와일드카드를 사용했다면 장타력을 지닌 우타 거포나 1루수, 불펜 필승조 보강 등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굳이 '경험을 핑계로' 처음부터 불필요한 '핸디캡'을 자초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가는 평가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선동열 감독 개인의 역량 문제보다 한국야구의 구조적인 한계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우승을 차지한 일본에 비하여 전반적인 선수들의 기본기와 선수층의 깊이 면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압박감이 큰 국제대회에서 상대를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는 대형 에이스의 부재와, 위기 상황에서 투수들이 원하는 곳에 자신있게 공을 뿌릴 수 있는 '제구력'의 차이가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한국이 실제로 일본에 2연패를 당하는 과정에서 승부처마다 한국 투수들의 볼넷 남발이 실점의 빌미가 됐다. 몇 년째 기형적인 '타고투저' 현상이 지배하고 있는 KBO리그는 물론이고, 아마야구부터 투수 육성책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대목이다.

대표팀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선동열호의 첫 항해는 희망과 논란이 교체하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선동열 감독의 '빅 픽처'대로 이번 대회를 통하여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다음 무대에서는 훨씬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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