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2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8회말 1사 1. 3루 상황 KIA 나지완의 3루 땅볼때 3루 주자 김주찬이 두산 수비 실수를 틈타 홈에서 세이프 되자 환호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26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8회말 1사 1. 3루 상황 KIA 나지완의 3루 땅볼때 3루 주자 김주찬이 두산 수비 실수를 틈타 홈에서 세이프 되자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시리즈라는 무대의 품격에 빛나는 명품투수전이었다. 승자는 위대했고 패자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했다. 2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KBO 한국시리즈' 2차전 경기에서 기아가 에이스 양현종의 완봉승 역투에 힘입어 두산을 1-0으로 제압했다. 양 팀은 광주 시리즈 2연전에서 1승 1패로 동률을 이뤘다.

1차전에서 외국인 우완 에이스들을 내세웠던 양 팀은 2차전에서는 토종 좌완 에이스들을 앞세워 또다시 맞불을 놨다. KIA는 20승 투수 양현종이 등판했고, 두산에서는 호랑이 킬러 장원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난타전 일색이었던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두 선발투수는 오랜만에 상대 타선을 압도하는 투구로 투수전의 진수를 선보였다.

투구내용 자체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용호상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완봉승을 거둔 양현종의 판정승이었다. 양현종은 9이닝 동안 안타 4개와 볼넷 2개만 허용하면서 삼진은 무려 11개를 잡았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치르는 동안 홈런만 14개나 때린 두산의 거포들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양현종은 8회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걸어가면서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휘저으며 응원을 유도하는 등 팀의 분위기를 북돋기도 했다. 늘 침착하기만 하던 평소보다 훨씬 열정적인 모습을 선보인 것도 한국시리즈에 임하는 에이스다운 책임감을 느끼게 했던 장면이다.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이 나온 것은 10번째, 포스트시즌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21번째다. 1-0 경기의 완봉승은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1986년 삼성 김일융이 OB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995년 롯데 주형광이 LG와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각각 기록한 바 있다. KBO 현역 최고 좌완으로 꼽히는 양현종이 정규시즌을 넘어 큰 경기에서도 강한 투수라는 것을 증명한 경기였다.

장원준의 역투도 충분히 빛났다. 양현종만큼 타자를 압도하는 피칭은 아니지만 노련한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였다. 7이닝 동안 117구를 던지며 4안타 5볼넷을 허용했으나 끝내 단 한 번의 실점도 내주지 않았다. 이날의 결승점이자 기아의 유일한 득점은 8회 장원준이 내려간 이후에 나왔다. 양현종과 장원준 모두 선발투수들이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에 양 팀 타자들은 한 번도 3루를 밟지 못했다.

흠잡을데 없는 투수전이었지만 경기의 균형은 다소 의외의 장면에서 깨졌다. 0-0으로 팽팽하게 맞선 8회말 기아의 공격에서 선두타자 김주찬이 두산의 2번째 투수 함덕주를 상대로 우익선상 행운의 2루타로 진루했고 뒤이어 로저 버나디나의 희생번트와 최형우의 볼넷으로 1사 1, 3루 찬스가 이어졌다. 세 번째 두산 김강률을 상대한 기아 나지완의 타구가 3루수 허경민 정면으로 향하며 3루주자 김주찬이 런다운에 걸렸다.

하지만 포수 양의지가 3루로 쇄도하던 최형우를 잡기 위해 송구한 사이 김주찬이 빠른 발로 순식간에 홈까지 파고들었다. 두산 내야진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와 김주찬의 재치있는 주루플레이가 맞물린 결과였다. KBO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들의 긴장감 넘치던 명승부치고는 다소 허무하게 희비가 엇갈린 순간이었다.

선발투수들의 눈부신 역투를 제외하면 양팀 모두 경기력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을만했다. 정규시즌부터 타고투저 열풍이 지속되며 화끈한 장타로 득점을 몰아치는 야구에 익숙해져 있던 양 팀 타자들은 모처럼 에이스를 상대로 1점차에 승부가 갈리는 스타일의 경기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양 팀 벤치도 경기 중반까지는 개입을 최대한 자체하고 선수들을 믿고 기다렸지만 공격이 풀리지 않아 답답해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찬스 자체는 역시 기아가 더 많았다. 하지만 고비마다 병살타와 견제사 등이 속출하며 번번이 찬물을 끼얹었다. 김주찬은 1회와 3회 말에는 두 번이나 병살타를 기록하며 8회 결승득점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이날 패배의 원흉이 될 뻔했다. 4회에는 선두타자로 출루했던 버나디나가 무리한 리드로 견제 능력이 좋은 장원준의 견제에 걸려 아웃되기도 했다. 뒤이어 최형우의 2루타로 얻은 1사 2루  찬스에서는 나지완의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허경민의 글러브로 향하는 직선타로 연결되는 불운도 겹쳤다.

8회 결승점을 뽑는 과정도 사실 운이 더 따라줬다. 1사 1.3루 찬스에서 나지완이 유리한 볼카운트에도 몸쪽 공에 성급히 배트가 나갔고 하마터면 병살을 당할 뻔했다. 포수 양의지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점수로 연결되기 힘들었을 장면이었다. 2경기에서 고작 4점을 뽑아낼 동안 기아 타선은 버나디나의 1차전 3점포를 제외하면 타점이 없었다. 잠실에서도 타격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두산은 믿었던 수비에서 발목이 잡혔다. 8회 실점 장면에서 두산 내야진은 여러 번의 실수를 한꺼번에 저질렀다. 1사 1.3루 위기에서 극단적인 전진수비 시프트를 선택한 것 자체는 좋았다. 문제는 타자 나지완과 1루주자 최형우 모두 발이 느리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병살도 노릴 수 있는 타이밍에서 허경민이 안전한 아웃카운트 하나를 노리고 홈 송구를 선택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이후의 상황 판단도 좋지 못했다. 주자를 최대한 베이스 쪽으로 몰아서 확실하게 아웃시키는 것은 런다운 수비의 기본에 해당한다. 포수 양의지는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발이 빠른 김주찬이 홈플레이트 쪽에 더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공을 3루로 재송구하는 판단착오를 저질렀고, 허경민 역시 병살에 대한 욕심에 3루로 쇄도하던 주자를 먼저 태그아웃시키고 다시 홈으로 송구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두산은 그동안 화끈한 타력에 가려졌지만 이미 NC와의 플레이오프때부터 내야 수비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거듭하며 불안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2차전은 그야말로 수준 높은 명품투수전과 기본기에 어긋난 동네야구가 혼재된 모습을 보인 비빔밥 같은 경기였다. 기대에 못 미친 양 팀 야수들이 3차전에서는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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