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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대는 어땠나요? 반짝반짝 찬란했나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나요. 어떤 하루를 보냈건, 누구나 공평하게 10년 동안 20대를 살아내죠. 그렇다면, 금수저 물고 태어났을 것만 같은 국회의원들의 20대는 어땠을까요. 어떤 삶을 살았기에 국회의원 자리에 올랐을까요. <오마이뉴스>가 국회의원들의 20대, 청춘 한 자락을 들춰봤습니다. [편집자말]
극단 생활을 함께 했던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과 배우 송강호. ⓒ 오신환 의원실 제공
"이선균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1기 동기다. 그 때 이선균 등 연극하는 친구들을 모아 팀을 짰는데,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불러주셨다. 서울시 전체를 맡아 <김광석 콘서트> 포스터를 나눠 붙이는 일을 했다. 한 장 당 100원이었다. 그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오디션을 보고 극단 연우무대에 합격했다. 그 때 같이 들어간 사람이 송강호씨다. 막내로 같이 심부름하고 청소했다. 작품 올리고, 조명 오퍼레이터(공연 중 조명을 조절하는 담당자)도 하다가 영장이 나왔다."

극단 동기가 내로라하는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르는 사이, 오디션 대신 공천을 택해 국회의원이 된 무명 배우. 10년을 오롯이 연극에 "미쳐 있었다"는 그의 20대가 궁금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 20여 년 전 한예종 연극원 첫 수업에서 자신이 한 독백 한 토막을 그대로 읊어댔다.

20년 전 연극 대사 술술 읊은 국회의원 오신환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 ⓒ 남소연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난,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날마다 허리를 앓거나 날마다 폭음을 하던 술꾼이라는 기억뿐이에요. 아버지는 식구들과 말도 건네지 않고 항상 골이 난 사람처럼 보였어요."
- 황석영 <한씨연대기> 중 한혜자의 독백

오 의원의 입에서 숨 한번 고르지 않고 술술 대사가 흘러나왔다. "여자 역할이라 남자들은 잘 안 하는 대사인데, 나는 굉장히 느낌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내가 왜 이 이야기에 집착했느냐, 돌이켜보니 우리 어머니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하셨다가 낙선하셨다. 어머니는 그 때 병을 얻으셨다. 평생 당뇨에 혈압에... 1년에 한 번씩은 쓰러지셨다.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오면 동생이 '엄마 119에 실려 가셨어' 하는 식이었다."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 89학번으로 대학 입학, 자퇴 후 스물다섯에 한예종 연극원 입학, 그리고 1998년 졸업하기까지. 오 의원이 긴 시간 매료된 연극은 중독성 강한 성장통이었다. 서울시의원을 지낸 엄격한 아버지, 4형제 중 나홀로 백수. 가족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다. '대학에서 취미로 하나 보다'하며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 한예종 시험을 칠 때 말도 못했다. 휴학도 몰래 했다. 1월 초순이었던 것 같은데, 합격해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 '자퇴해야 한다, 한예종에 가야 한다'고 하니 그러시더라. '정초부터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웃음)."

"내 연극으로 관객이 행복했으면" 연극에 미치다

연극을 처음 접한 것은 건국대 재학 시절 연극동아리 '건대극장'에서다. 그 시절 '흑역사'를 풀어내는 그의 얼굴엔 이상하게 생기가 돌았다.
연극 <진흙>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20대 오신환. ⓒ 오신환 의원실 제공
"대학 때는 전국 연극반 회장을 모으려고 배낭 하나 메고 부산대, 경성대 등 지역 연극반을 찾아갔다. 다른 학교 연극반 서클룸에서 잠을 자면서 전국 투어를 한 거야. 돈이 없으니 비둘기호, 통일호 표를 사서 (더 비싼) 무궁화 호를 탔어. 부산역에 내려서 그대로 도망갔던 기억도 나네. 치기지."

데뷔 무대는 <무엇이 될꼬 하니>. 엿장수 역할이었는데 "삐쩍 말라서 중심을 못 잡고 휘청휘청했던" 굴욕의 순간도 있었지만, 난생 처음 느낀 자유로움에 "평생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활 가서는 소위 '문선대(문화선전대)'로 사회 비판적 무대를 올렸고 지하철을 타고 게릴라 연극을 하기도 했다. 당시 막 해금됐던 브레히트의 연극도 공부했다.

"그때는 내 연극으로 관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삶이 변화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도 좀 변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가장 치열하게 삶에 대해 고민하고 눈물 흘리고 고민한 시기였다."
오신환 "지금도 포스터 하나는 잘 붙여요. 위 아래 좌 우 네 군데 붙이고, 마지막에 중앙 위에 붙이면 끝나죠" ⓒ 남소연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의 택시운전자격증 ⓒ 남소연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편영화 출연 경력이 전부지만 "영화를 하고 싶어 소속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배우 이정재, 박주미, 허영란이 대표 배우로 있던 회사에서 무명 배우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계속 떨어지더라고. 내가 아주 잘생겨서 주인공을 맡기도 그런 얼굴이고, 아주 못생겨서 조연을 맡기도 그렇고. 굉장히 어정쩡한 캐릭터였다. 건국대학교를 다닐 때는 MBC 탤런트 공채 시험도 봤는데 떨어졌다."

아버지는 '재수 없는 소리'라고 했지만, 오 의원에게는 지키고 싶은 꿈이었다. 그래서 포스터를 붙이고 택시 운전 자격증을 땄다. 입시철에는 연기 과외도 뛰었다. 연극만으로는 생계가 안 됐으니까.

핸디캡이었던 정치인 아버지, 같은 길을 간 이유

"지금도 포스터 하나는 잘 붙인다. 위아래 좌 우 네 군데 붙이고, 마지막에 중앙 위에 붙이면 끝난다(직접 흉내 내보이며). 탁탁탁탁 탁. 같이 붙이다가 한 명이 즉결심판에 걸려서 너무 놀란 나머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투잡'을 뛰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딴 택시 자격증은 지금도 갖고 있다."

국회의원이 된 후 '예술인 복지법' 개정에 주력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두 달 연극 연습해서 한 달 공연하고 나면 150만 원을 받기로 했었다는 오 의원. 연습 때는 돈 한 푼 못 받는 게 관례였다는 대학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그는 "당시 돈 안 준 선배를 지금도 만난다"며 "말은 안 해도 그때 생각이 계속 난다, 150만 원 안 줬거든"이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대학로 연극판에서 구르다가 '정치 일'을 제안 받았을 때는 그저 부담스러웠다. 오 의원의 부친은 바로 1991년 서울시의회 부의장(당시 민주자유당 소속)을 지낸 오유근 의원. 대학 다닐 때는 아버지가 누군지 말하길 꺼릴 정도로, 그에게 아버지는 '핸디캡'이었다. 정치가 어떤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거듭 고사했다. 아버지 선거운동 한번 뛰고 나서 손사래를 쳤던 부인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연극 배우 시절 광고 모델로 활동한 오신환 의원. ⓒ 오신환 의원실 제공
연극 <진흙>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20대 오신환. ⓒ 오신환 의원실 제공
"거절을 하다가, 마지막 하루 앞두고 결정하게 됐다. 연극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것을 정치로 하면 더 현실과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설득을 한 거다."

오 의원은 연극과 정치, 두 갈래의 문을 연 젊은 날을 "나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치열하게 한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관객과 거짓 없이 소통"하는 법을 익혀 지역 주민에게 다가가는 '스킬'을 얻었고 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감동 정도는 하게 하는" 노련함도 배웠다.

'아버지 잘 만나서'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지만 오 의원은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당당하다"고 했다. 연극에 대한 열정만큼 정치에서도 현장에서 굴렀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들은 본인처럼 나 자신의 마음에 집중할 여유가 없어 아쉽다는 오 의원.

"우리 때만 해도, 사회가 그렇게 해줬고, 선배들이 그 역할을 해줬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같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오디션을 수 차례 떨어지고, 어정쩡한 캐릭터로 괴로워하던 젊은 날을 자양분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그는 어쩐지 미안한 기색이었다. 20대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그가 하고 싶은 정치는 '공정한 정치'다.

"부모 잘못 만나 '빽'이 없어 패배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면, 청년들이 그 사회를 인정할 수 있겠나. 그 룰 속에서 실패하고 패배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기성세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태그:#오신환, #송강호, #이선균, #바른정당,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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