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이 지난 7월 2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6회 초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김성민을 상대로 좌익수 쪽 2루타를 터트려 KBO리그 최초로 4천 루타를 달성했다. 사진은 이승엽이 4천 루타를 친 후 그라운드를 달리는 모습.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이 지난 7월 2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6회 초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김성민을 상대로 좌익수 쪽 2루타를 터트려 KBO리그 최초로 4천 루타를 달성했다. 사진은 이승엽이 4천 루타를 친 후 그라운드를 달리는 모습. ⓒ 연합뉴스


한국 프로야구가 '살아있는 전설' 이승엽(40·삼성)과의 작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KBO는 11일 이승엽의  올시즌 마지막 대전 원정 경기(대전 한화이글스파크)를 시작으로 저전국 구장에서 이승엽의 '은퇴 투어'를 전국 구장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이승엽의 소속팀 삼성을 비롯하여 프로야구 10개 구단 전체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레전드의 마지막 은퇴 무대를 빛내는 데 동참할 예정이다.

은퇴투어는 은퇴를 앞둔 선수가 세운 그간의 업적과 공로를 기리고 팬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아름다운 피날레를 장식하는 여정이다. 그동안 각 구단별로 큰 공헌을 한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열어주는 '은퇴식'은 많이 있었지만,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야구계 차원에서 공통으로 특정 선수의 퇴장을 기념해주는 문화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영광이다. 그만큼 그 선수가 특정 팀만의 스타를 넘어 해당 종목과 리그 전체에 큰 업적을 남긴 진정한 '레전드 중의 레전드'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KBO 리그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투어를 치르는 선수는 이승엽이 사실상 최초다.

이승엽은 '국민타자'로 불려질 만큼 특정 구단-세대-지역을 넘어 모든 야구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홈런 기록은 물론이고 타격 부문에서 한국야구의 역사를 바꾼 전설임은 물론이고, 나라를 대표하여 국가대표와 해외 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국제적인 선수였다. 여기에 한 개인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인품과 깨끗한 사생활을 바탕으로 수많은 야구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이승엽이라면 충분히 은퇴투어 정도의 예우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하는 이유다.

이승엽은 그동안 야구계와 팬들의 배려에 감사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은퇴가 지나치게 이슈가 되는데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소속팀 삼성이 올시즌 가을야구 진출이 멀어지며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만 대우받는 듯한 모양새도 미안하고, 타 구단들에게도 자칫 민폐가 될까 봐 조심하는 모습이다. 이승엽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의 은퇴투어를 최대한 간소하게 했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어쩌면 가장 이승엽다운 처신이고 그래서 많은 팬들이 이승엽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한국 스포츠계의 전설들 퇴장은 어땠나

하지만 지나친 겸손이 꼭 미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이 자신을 향한 예우에 그리 욕심을 부리지않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이번 은퇴 투어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이승엽이라는 한 선수를 부각시키는데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야구계에 이승엽 이전에도 그에 못지않은 전국구 스타나 레전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동열, 고 최동원, 고 장효조, 이만수, 양준혁, 박찬호 등등, 하지만 이중에는 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했거나 심지어 팬들에게 변변한 작별인사도 남기지 못 하고 쫓겨나듯 사라진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들이 정작 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한국 스포츠 문화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했다.

프로스포츠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한 분야에서 누구나 인정할만 한 큰 업적을 남긴 선수를 예우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치퍼 존스(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데릭 지터·마리아노 리베라(이상 전 뉴욕 양키스), 데이빗 오티즈(전 보스턴 레드삭스), NBA의 코비 브라이언트(전 LA 레이커스) 등은 당시 프로스포츠의 '은퇴 문화'를 바꾸는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공과가 나뉘고 호불호가 갈리는 면도 있지만, 적어도 해당 종목과 리그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으며, 자신이 떠날 시기와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고 팬들의 박수 속에 명예롭게 퇴장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에게 가장 많은 손해를 봤던 라이벌 구단이나 팬들조차도 과거의 앙금을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 시대를 빛낸 레전드와의 작별을 존중하고 예우해주는 전통을 만들었다.

한국 스포츠계에서 은퇴투어의 원조는 프로농구의 서장훈(현 예능인)이다. 현역 시절 최고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외모와 잦은 판정 항의 때문에 유독 '비호감' 이미지가 강했던 서장훈은 말년으로 갈수록 오히려 그 진가와 업적이 재평가받은 독특한 케이스다. 서장훈은 부산 KT에서 은퇴한 2013년 마지막 시즌 은퇴 투어를 통하여 가는 곳마다 농구팬들의 박수와 존중을 받으며 성대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다.

서장훈은 사실 말년에 저니맨 이미지가 강했고 마지막 소속팀인 KT에서는 은퇴 직전 단 1시즌을 뛰었을 뿐이지만 구단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장훈을 받아들이고 은퇴식까지 성대하게 치러주며 전설의 위상에 걸맞는 예우를 다했다. KT의 배려와 희생이 있었기에 서장훈의 마지막 유종의 미가 빛날 수 있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KBO 사상 최초로 2014년 올스타전에서 특별 은퇴식을 치렀다. 박찬호는 현역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에 국내 무대에서 별도의 은퇴식이나 은퇴투어를 가지기는 어색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야구계는 박찬호가 한국야구계 전체에 남긴 상징성과 위상을 고려하여 올스타전 은퇴식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하여 박찬호의 고별무대를 야구계 모두가 함께 기념할수 있는 의미있는 무대로 만들었다.

이승엽의 길이 주목받는 이유

 삼성라이온즈 이승엽이 지난 4일 포항에서 열린 롯데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회말 2점 홈런과 7회말 1점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해 10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말 2사 1루 때 삼성 이승엽이 2점 홈런을 쳐내고 있다.

삼성라이온즈 이승엽이 지난 7월 4일 포항에서 열린 롯데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회말 2점 홈런과 7회말 1점 홈런을 터트렸다. 지난해 10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말 2사 1루 때 삼성 이승엽이 2점 홈런을 쳐내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이승엽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승엽의 마지막 시즌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야구사에 은퇴 문화의 아름다운 모범사례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프로 선수에게 있어서 최고의 정점에 있을 때 자신이 떠날 자리와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모든 팬들의  박수와 존경을 받으며 마무리하는 것 만큼 행복한 피날레는 없다. 언젠가 또다른 레전드가 은퇴를 앞두고 있을 때 '이승엽의 선례'를 거울삼아 똑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은퇴 투어라는 방식 자체가 공통의 축제이자 아름다운 전통이 되어가는 것이다.

한국스포츠를 빛낸 영웅이라면 그에 걸맞는 예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정착되어야한다. 이승엽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배들의 모범을 위해서라도, 이승엽의 은퇴 투어가 좀더 성대하고 풍성한 축제가 되는 것은 결코 과하지 않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이승엽 은퇴투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