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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우리 집에 비상이 걸렸다. 어머니가 사라지셨다. 화장실에도, 베란다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세탁기까지 열어 보았다. 출입문이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가출하신 것이 분명했다. 전날 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누가 온다고 했는데?"
"어머니, 밤에 올 사람 없어요. 주무세요."
"아니야. 온다고 했는데. 그럼 내가 가야지."
"가기는 어디를 가세요. 어머니, 별일 없으니까 나가시면 안 돼요. 아셨죠?"
"꾸어준 돈 받아야 하는데."

족두리 쓰신 것처럼 연출한 사진
 족두리 쓰신 것처럼 연출한 사진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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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설마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 혹시나 해서 어머니방을 들여다보니 어머니의 온기가 없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것이다. 어머니가 아끼는 보물상자인 성경책 가방이 안 보였다. 그리고 갈색 니트도 없었다. 틀림없이 집을 나가신 것이다. 당황해 아파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을 하셔서 다리가 불편하셨다.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데' 하며 마음을 졸였다.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새벽 일찍 나가신 것이 분명했다. 아파트 층수도 어머니는 예전에 살던 12층을 기억하시는데, 새로 이사 온 우리 집은 16층이다. 당신 혼자서 다시 돌아오실 확률이 적었다.

어머니의 낡은 가방과 기도수첩

나는 차를 몰고 버스 정거장을 살폈고, 도로를 따라 주위를 살피며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너무 당황해 마음이 저려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나 본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이다. '내 불찰이구나. 조금 더 신경썼어야 하는데..." 자괴감이 엄습했다. 이리저리 헤맬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1시간가량을 헤맨 것 같다. 아파트 경비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어머니의 낡은 가방
 어머니의 낡은 가방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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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시 아침 일찍 가방 든 할머니 한 분 못 보셨나요?"
"아, 그 할머니요."
"보셨어요?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파출소로 가셨습니다. 댁이 어딘지 기억을 못하셔서 저희가 경찰을 불렀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쏜살같이 파출소로 향했다. 그런데 멀리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 경찰차가 보였다. 직감이 어머니 일로 온 것 같았다. 어머니가 차에 타고 계셨다.

"어머니!"
"선생님 어머니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가끔 기억이 없으셔서요. 그런데 어떻게 저를 찾으셨나요?"
"할머니 가방 속에 있는 수첩에 이름이 있어서 누구냐고 했더니 아들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이름으로 조회했더니 이 아파트 주소가 나와서 모시고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수첩에 내 이름이 쓰여 있는 사연은 이렇다. 어머니는 날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수첩에 조목조목 기도제목을 적으시고 맨 밑에 "우리 아들 나관호가 기도대로 될 줄 믿습니다, 아멘." 하고 써 놓으신 것이다. 경찰서에서는 그 이름을 근거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메모로 소통하다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고마웠다. 어머니의 머릿속 지우개로 인해 당황스런 일이 벌어졌지만 나를 위해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와 그 수첩이 고마웠다. 어머니는 당신이 가출하셨다는 사실을 금방 잊으셨다. 그 순간은 어머니 머릿속 지우개가 고마웠다. 어머니 자신에게 힘들었던 기억을 잊게 해주었으니까.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메모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메모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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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돈 받을 사람 만난다고 새벽부터 여기저기 헤맸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양말도 신지 않고 불편한 신을 신고 다니셨던 어머니를 위해 따뜻한 물로 발을 씻겨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발을 만져 보니 차가운 기운이 돈다. 그러다가 문득 문 앞에 메모를 붙여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니와 메모로 소통하고 싶었다, 발을 씻겨드린 후 아파트 출입문 안쪽 입구에는 이렇게 써 놓았다.

어머니! 
1) 혼자서 밖으로 나가시지 마세요.
2) 집을 지키셔야 해요.
3) 아들 말을 들으셔야 해요. 

'문 잠그지 마세요' 메모
 '문 잠그지 마세요' 메모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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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1) 문 다시 잠그지 마세요?
2) 막대기 손대지 마세요.
3) 문 열어주지 마세요.
매일 3번 웃기 스마일

그리고 욕실에는 이렇게 써놓았다.

어머니!! 
거울보고 한번 웃으세요. 
치약으로 이를 닦고 비누로 수건 빨아주세요.
어머니 최고로 예뻐요.

욕실에 붙여놓은 메모
 욕실에 붙여놓은 메모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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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옷, 주머니마다 연락처 메모를 넣어두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마치고 방으로 가시더니 찬송가를 부르신다. 가출 사건도 당신이 고생했던 일도 기억이 없으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위안을 찾았다. 낙천적인 생각은 어머니와 나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촉매였다. 수첩을 생각하다가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머니 옷 주머니마다 연락처 메모를 넣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작은 메모지 여러 장을 만들어 이렇게 써서, 어머니 주머니 여러 곳에 넣어 놓았다.

안녕하세요. 
예쁜 우리 어머니가 치매환자세요.
어머니 놀라지 않게 해주시고 
연락 부탁드려요.
아들 : ooo – ooo - oooo 

치매 어르신들의 가출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가출을 하셨다면 평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가출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다. 가족들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어르신들을 찾는데, 편하게 모셔오는데 집중하면 된다. 가출을 언제나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가둬 놓듯이 문을  잠그지 말았으면 좋겠다. 같은 대비 행동이라도 공경의 태도는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메모로 소통하고 메모를 주머니에 넣어두는 아이디어도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다.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대중문화연구를 강의하고 있으며, '생각과 말'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로 기업문화를 밝게 만들고 있다.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태그:#치매 어머니, #나관호, #환자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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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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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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