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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전국교수연구자 비상시국회(시국회의)와 공동으로 '2017 새 민주공화국 제안' 연재를 시작합니다. 시국회의는 지난 2월28일 국회에서 '2017 민주, 평등, 공공성의 새 민주공화국 정치사회적 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박근혜 이후 촛불 시민혁명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주권자 시민의 의지로 부패한 권력을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역사적 대선국면에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번 대선이 반드시 반영해야 할 촛불시민혁명의 사회대개혁 의제를 시리즈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번 제안은 총 9차례에 걸쳐 칼럼형식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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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 마음과 몸속에 기억되어 있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이른바 '87년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 87년 체제의 성격을 놓고 학계의 논쟁이 분분하지만 그것은 '민주화'를 향한 험한 여정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환은 정치적 영역에 국한되었다.

87년 체제의 또 다른 축이었던 노동자대투쟁이 있었음에도 기업규모별 임금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욱 확대되었다. 87년 개헌으로 경제민주화가 헌법(제119조 2항)에 명시되고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금지 등 경제력집중 방지를 위한 규제책들(공정거래법 제3조)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에도 1997년의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 규율에 기댄 재벌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정치 민주화가 점점 더 지체되고 경제민주화가 위축되면서 재벌들은 경제권력을 확대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해갔다. '재벌공화국'이란 냉소는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로 더욱 증폭되었다. 2012년 대선을 전후해 불거진 '갑질' 논란은 규제받지 않은, 더 정확히는 규제가 불가능해진 독점재벌들에 의한 부(富)의 독식구조, 비용의 사회화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전 국민적 열망을 담은 '경제민주화'가 다시 의제로 떠올랐으나, 재벌개혁과 관련된 의제들은 오히려 축소되고 말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이내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경제민주화 공약을 폐기해버렸다. 이것은 시민들의 희생으로 얻은 민주주의를 시민 없는 정치, 시민에 의존하지 않는 개인민주주의 정치로 대체해버린 귀결이며,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최순실-박근혜-이재용 게이트로 진화한 탄핵정국을 이끈 2016년 촛불은 그동안 축소, 왜곡된 민주주의를 대중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이 집단동원의 광장민주주의 경험은 통제받지 않는 재벌체제로 대변되는 현재의 경제시스템 개혁―그것을 경제민주화로 부르든 재벌해체라고 부르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엄중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거대 경제권력은 분할되고 산업적 시민권은 부활되어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의 현판이 겨울나무 사이로 보인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의 현판이 겨울나무 사이로 보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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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같은 광장민주주의가 요구하고 있는 경제시스템 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먼저 현재와 같은 '정경유착' 혹은 '정부 재벌간 공생' 프레임만으로는 경제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에 충분하게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정부-재벌간 관계는 박정희 모델, 혹은 수출주도형 발전모델이 통하던 정부와 재벌 간 발전지배연합의 국가우위 단계에서 80년대 초반의 공생 혹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는 재벌우위 단계를 지나 정치권력화한 재벌 우위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 국정농단 특검을 지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경유착' 극복 차원에서만 이번 문제를 바라보는 한 그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정경유착 극복이 재벌중심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자유주의적 과제의 해결인 동시에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한 시민경제 형성이라는 진보적 과제의 해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거대 경제권력을 그대로 둔 채 이들과 정부 간 유착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유주의적 개혁, 즉 시민 없는 제도개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거대 경제권력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과 정책이 필요하다. 순환출자금지, 제2금융권 계열사를 포함한 계열분리명령제, 기업분할명령제, 그리고 법원의 삼성물산 합병비율 재산정 판결이 나올 경우 합병무효화를 요구해야 한다.

둘째, 거대권력에 대한 공적인 통제를 통한 경제시스템 개혁을 경제민주화라고 할 때, 이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것, 예를 들면, 소비자주권, 주주권의 강화와 같은 것에 머물지 않고, 기업, 산업, 시장, 정부 등 모든 수준에서 경제주체로서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권력을 보장하고 실행하는 개혁 구상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산업적 시민권의 회복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87년 체제'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하위 법률에서 부정되었고, 기업별노조는 여러 가지 한계를 보였고, 산별교섭은 원천 봉쇄되기 일쑤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권 약화와 주주권 강화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종업원 추천 전문가 참여를 넘어 노동자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노동이사제, 현행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실효성 낮은 노사협의회 활성화가 필요하다. 개별기업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즉 기업집단 수준에서도 계열사별로 최소1명 이상의 노동자대표, 일정 수 이상의 비조합원⋅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경우 이들 대표 1명씩 참여하는 그룹노사협의회나, 그룹 차원의 공동결정법을 만들어 노동의 대항력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산별노조 수준, 노사정 수준에서 노동의 협상력과 대항력을 높이는 실질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 도입과 함께 대안적 경제시스템 구상도 병행

셋째, 시민 있는 정치의 전제조건으로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적, 제도적 토대를 복원해야 한다. 이 불평등의 해소는 개인으로서 국민들 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세대 간 불평등 등을 해소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산업적 시민권 부활, 노동의 협상력 강화를 통해 생산성 증가와 실질임금 사이의 연계를 높임으로써 새로운 성장 경로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연계가 높아지려면 기존의 재벌대기업 중심의 약탈적 산업구조를 교정해야 하고, 수출주도, 부채의존, 낙수효과에 기댄 기존의 성장패러다임과 그것을 지지하고 있던 제도나 정책들을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불평등 해소가 단순히 복지제도 개혁이나 몇 가지 새로운 제도 도입 같은 문제로 국한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경제 주체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참여와 시민권 부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재벌개혁과 보편적 복지, 두 과제는 상호 대체적인 것이 아니라 동반해야 할 문제이다. 그 이유는 ①재벌개혁을 통하여 부당하게 얻은 이익이나 상속재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②계열사 간 출자에 대한 배당과세 등을 신설하여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고, ③보편적 복지의 출발은 현재와 같이 왜곡된 노동시장을 교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왜곡된 노동시장의 근본 원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이기 때문이다.

넷째, 탄핵 정국에서 국회에 입법 발의되었다가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화되지 못한 '경제민주화법'을 빠른 시간 내에 재발의하고,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제안하고 있는 재벌개혁 관련 공약들의 실현가능성을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 이외에도 경제시스템 개혁에는 이런 당장의 개혁 대안뿐만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보는 중장기적 제안과 구상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2018년 지방선거 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시민권이 확대되고 보장될 수 있는 경제시스템 개혁 구상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참여정부 핵심 기치이기도 하였던 분권과 자치를 중앙, 지방정부 수준에서 제도화하는 것, 또 대의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참여예산제도와 같은 시민참여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권력 행사를 실효화하는 일이 그것이다. 정부 정책은 시민들에 의한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며, 정치는 이를 조직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공적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개입을 통해, 시민들의 공통감을 일깨우고, 공동체 감각을 북돋음으로써 어떤 제도나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광장민주주의로 진정한 정치공동체를 형성해야

그러나 촛불 정국으로 드러난 시민들의 자각과 엄중한 요구에 비해 경제시스템이나 재벌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실제 조건이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삼성물산 합병을 도왔던 보건복지부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보여주었듯 거대 경제권력에 포획된 정부와 관료들, 재벌체제로부터 이득을 챙겨온 기득권 세력과 이재용 체제를 만든 공모자들의 조직적 반발이 그런 경우이다.

또 재벌개혁을 '포퓰리즘'이라 하면서 권력의 통제로부터 '시장경제'를 지키자고 말하고, 민족적 정서에 기대 '국부유출'을 막자고 선동하며, 광장의 경제민주화 요구를 '가짜 경제민주화'로 매도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어떤가? 어쩌면 파우스트의 거래에 익숙해진 우리 자신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삼성의 위기를 대한민국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더 문제일지 모른다. 힘들지 모르지만 이런 오류에서 벗어날 때 광장민주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럴 때라야 거대 권력을 쪼개고, 시장을 통제하며, 산업적 시민권이 보장되는 경제시스템 개혁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광장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자신과 이웃의 이해관계를 연관 짓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이유를 설명하고 논쟁하며, 무엇을 공동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회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정치 공간을 열어간다. 이러한 연관과 토론과 주장과 관계 맺음의 핵심에 경제시스템 개혁, 경제민주화 출발점으로서 재벌개혁이 놓여있다.

*시국회의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4단체를 포함해 박근혜퇴진 촛불정국에서 전국의 4천여명 교수연구자들의 서명을 바탕으로 박근혜정권을 조기에 퇴진시키고 민주, 평등, 공공성의 방향으로 대한민국의 재구성을 위해 결성된 조직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경남과학기술대 교수입니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 민중의 소리, 레디앙, 참세상에 중복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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