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7년 4월 현재 미국의 북한 선제 공격설 등으로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69년 전인 1948년 4월에도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해방이 되었다지만 이념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1946년 대구 10.1 사건, 1948년 4.3 제주사건 등으로 표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상적 골이 깊어지고 사실상 분단을 기정 사실화하는 남한 단독선거가 5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는 등 민족사적 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남북 지도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와 지도자협의회를 개최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김구 선생 등은 미군정청의 반대는 물론 청년단체·학생단체·기독교단체·월남인사들의 단체들까지 결사반대하는 가운데 북행을 강행했다.

이에따라 1948년 4월 19일에서 23일까지 평양에서 연석회의가 열릴 수 있었다. 이 회의에서는 미·소양군 철병요청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동포에게 보내는 격문이 채택되었다.

역사적 가정법이지만 만약 당시 이 같은  결의가 현실화 되었더라면 우리의 근현대사는 어떻게 펼쳐졌을까? 2017년 4월 한반도 위기설은 있을 수 없는 것은 물론 1950년 6.25 등의 민족사적 불행 또한  없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에 무게가 실린다.

69주년 기념식이 열린 경교장
 69주년 기념식이 열린 경교장
ⓒ 이명수

관련사진보기


"남북연석회의 정신으로 평화협정 체결하라"

69주년을 맞는 '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기념식이 22일 오전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경교장 1층 바불마루에서 열렸다. 오늘 69주년 기념식은 김창건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추진위원이 사회를 맡아 진행됐다.

김인수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는 기념사에서 " 4월 연석회의 정신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통일조국을 건설하자는 것으로서 오늘날에도 계승해야 할 통일운동의 불멸의 이정표"라면서, "내년 70주년은 평양에서 남과북이 함께할 수 있게끔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인수 대표가 기념사를 말하고 있다.
 김인수 대표가 기념사를 말하고 있다.
ⓒ 이명수

관련사진보기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69년 전 연석회의의 의미를 새기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요구의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1948년 긴박한 정세 속에서 남과북의 애국자들은 분단이라는 민족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와 지도자협의회를 개최하여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하였다"면서, "이것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민족끼리의 자주적 통일운동의 시발점"이었다고 의미를 말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6·25 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수백만명이 희생되었고 분단체제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계속해서 "장장 분단 70여 년이라는 세월을 겪으며 이제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적극 도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남쪽에서는 수구보수세력이 외세를 이용하여 민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한편 끊임없이 반민족적 반통일적 망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현 정부는 6·15선언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남북간에 대결과 긴장을 극도로 조성하면서 민족이 언제든지 공멸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협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일찍이 민족분열의 준엄한 시기에도 우리 민족은 사상과 정견의 차이를 넘어 민족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려고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면서, "이것이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라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이 같이 강조한 후 "따라서 현재의 대결과 긴장상태의 한반도 정세를 해소하기 위하여 정부와 미국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 김구·김규식 선생의 경교장 공동성명을 적극 실천하라! △ 남북연석회의 정신으로 2(남·북)+2(미·중) 평화협정 체결하라! △ 사드 배치, 한미군사합동훈련 등 전쟁을 유발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라! △ 트럼프는 한반도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등을 요구했다.                  

다음은 69년 전인 1948년 5월 6일 발표된 '경교장 공동성명' 전문이다.

■남북통일의 기초 확정, 우리민족끼리면 협조 가능


4월19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된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남북협상회의에 참가한 후 북조선의 김일성ㆍ김두봉 양씨와 회담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둔 김구ㆍ김규식 양씨는 5월5일 오후 8시10분 무사히 귀경하였다. 그런데 귀경한 양씨는 제1성으로써 다음과 같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경교장 공동성명>

今般 우리의 북행은 우리 민족의 단결을 의심하는 세계인류에게는 물론이요,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다수 동포들에게까지 금차 행동으로써 많은 기대를 이루어 준 것이다. 그리고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는 우리 민족도 세계의 어느 우수한 민족과 같이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서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이런 행동으로써 증명한 것이다.

이 회의는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서 남조선 단선단정을 반대하며 미소양군의 철퇴를 요구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북조선 당국자도 단정은 절대 수립하지 아니하겠다고 확언하였다. 이것은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적 신발전이며, 우리에게 큰 서광을 주는 바이다.

더욱이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들의 공동성명서는 앞으로 양군 철퇴 후, 전국정치회의를 소집하여 통일적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전국 총선거를 경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정식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우리 민족 통일의 기초를 尊定할 수 있게 하였으며,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을 건설할 방향을 명시하였으며 외방의 간섭만 없으면 우리도 평화로운 국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여하한 험악한 정세에 빠지더라도 공동성명서에 표시된 바와 같이 동족상잔에 빠지지 아니할 것을 확언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이것으로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거두어진 성과를 가지고 최후의 성공을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애국 동포 전체가 일치하게 노력하는 데 있을 뿐이다.

상술한 연석회담에서 국제 협조 및 기타 수개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종래의 주장이 다 관철되지 못한 것은 우리로서는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국제 협력 문제에 대하여서는 앞으로 어느 나라가 우리의 독립을 더 잘 도와주느냐는 실지 행동에서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또 기타 문제에 있어서도 앞으로 각자가 노력하며 남북 지도자들이 자주 접촉하는데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행동으로써만 우리 민족은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사실로도 우리민족끼리는 무슨 문제든지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증명하였다.

한 예를 들어 말하면, 첫째 북조선 당국자가 남조선 당국자와의 분규로 인하여 남조선에 대한 송전을 최단 기간 내에 정지하겠다고 신문기자단에게 언명한 바 있었고, 둘째 延白 등 수개 처의 저수지 개방 문제도 원활히 하지 아니한 일이 있지만 이번 협상을 통하여 그것이 다 해결될 것이다. 앞으로 북조선 당국자는 단전도 하지 아니하며 저수지도 개방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조만식 선생과 동반하여 남행하겠다는 우리의 요구에 대하여 북조선 당국자는 금차에 실행시킬 수는 없으나 未久에 그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끝으로 우리 일행의 안부를 위하여 관심하여 주신 동포 및 우리에게 환대와 편의를 주신 남북의 당국자와 輿論界, 또 양 주둔군 사령장관에게 사의를 표한다.

대한민국 30년(1948) 5월 6일 김구·김규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