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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밥보다 커피를 많이 먹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인은 커피를 1주일에 평균 12.3회, 쌀밥은 7회 섭취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20세 이상 성인이 마신 연간 커피소비량은 10g을 한 잔으로 환산했을 때 2015년 기준으로 약 384잔이다. 1인당 하루 평균 1잔 이상은 마시는 셈이다. 가위 대한민국을 '커피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그 중에서도 인스턴트커피 소비는 전 세계 1위다.

흥미로운 사실은 커피믹스가 우리나라 동서식품에서 최초로 개발한 제품이란 것이다. 커피콩 하나 나지 않던 나라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어떻게 대한민국은 인스턴트커피 소비 1위의 '커피 공화국'이 됐을까?

커피의 불모지에서 탄생한 커피믹스

국내에서 처음 커피를 맛본 사람은 고종이었다. 당시 고종의 지원으로 이 땅에서 최초의 커피숍이 열렸다. 주로 개화파 인사나 외국인이 교류하기 위해 이 커피숍을 드나들었다. 커피는 서구화의 상징이자 상위층의 사교행위를 돕는 매개 수단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는 다방의 전성시대였다. 이 시기에 다방에서 팔린 커피의 95%는 미군으로부터 부정하게 입수했거나 밀수한 제품이었다. 국내에서 커피가 직접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 동서식품에 의해서였다. 1970년 동서식품이 출시한 '맥스웰하우스 코피'는 커피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최초의 인스턴트커피였다.

커피믹스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였다. 동서식품이 1회 분량의 커피 파우더와 크리머·설탕을 이상적으로 배합한 인스턴트커피인 '커피믹스'를 개발했다. 동서식품의 커피 제조 기술과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만나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다방 커피에 길들여져 부드럽고 깔끔한 맛과 향을 선호하던 한국인의 입맛에 알맞게 배합한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다.

1976년 출시된 맥스웰 커피믹스.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다.
 1976년 출시된 맥스웰 커피믹스. 세계 최초의 커피믹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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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당시 한 봉지에 45원하던 커피믹스의 탄생은 커피 대중화의 혁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방의 등장으로 커피가 대중에게 더 다가서긴 했으나 여전히 커피는 선진국의 음료, 상류층의 사치품이란 인식이 남아있었다. 간편하고 저렴한 커피믹스가 등장하면서 커피는 서민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외환위기 때 전성기 맞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커피 시장은 위축됐다. 회사에서 커피 심부름을 하던 여직원이 대폭 줄어들고 본인이 직접 커피를 타서 마시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시기에 커피믹스 시장은 오히려 급성장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냉온수기의 보급률이 높아진 것도 한 몫 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맥심 커피믹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커피 시장을 장악했다. 오죽하면 "한국인의 커피 입맛은 맥심으로 표준화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1993년 탄생 이후 지금까지 판매량 1위를 달리는 맥심의 대표상품은 '모카골드 마일드'다. 2013년 하루 평균 1922만개, 연간 총 70억개의 모카골드 마일드가 판매됐다. 판매된 커피믹스 스틱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경부고속도로(428㎞) 2616개 또는 지구 둘레(40,075㎞)를 약 27바퀴 반 이상 돌 수 있는 거리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시기를 잘 타고 나서만은 아니었다. 회사는 꾸준히 시장조사를 한 후 제품의 맛과 향은 물론이고 패키지 디자인까지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국내 소비자가 커피에 가장 기대하는 것이 향이란 사실을 간파한 동서식품은 향이 좋은 커피를 개발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힘썼다. 동서식품만의 커피 로스팅 기술과 향 손실 최소화 공법 등을 적용했다.

커피 문화 변화로 위협 받는 커피믹스

오늘날의 맥심을 만든 데는 적절한 광고ㆍ마케팅도 한 몫을 했다. 광고할 때 '맥심은 향이 좋은 커피'란 메시지와 함께 '커피 한 잔의 여유'란 이미지를 강조했다. 90년대 맥심의 광고 모델은 부드럽고 편안한 이미지의 배우가 많다. 1983년부터 30년 이상 동서식품의 최장수 모델로 활동해온 안성기가 대표적인 예다. 커피 광고가 주는 따뜻한 이미지 때문인지 지금도 연예인 사이에서 꼭 한 번쯤 찍어보고 싶은 광고로 꼽히는 것이 바로 커피 광고다.

'커피' 하면 제일 먼저 배우 안성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맥심의 광고는 커피에 따뜻한 이미지를 입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커피' 하면 제일 먼저 배우 안성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맥심의 광고는 커피에 따뜻한 이미지를 입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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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 커피믹스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이정재·이미연·장동건·이나영 등 당대 수많은 톱스타 남녀 모델이 등장했다. 이런 지속적인 광고로 맥심의 브랜드 이미지는 높아졌고 이는 시장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커피믹스의 전성기였다. 2012년을 정점으로 해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정체기를 걷고 있다.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았던 커피믹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IMF 이후 커피믹스의 급성장과 동시에 커피 전문점이 생겨났다. 이때 커피 전문점을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커피가 빠르게 확산됐다. 테이크아웃 문화가 확산되면서 한 손엔 커피 잔, 한 손엔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젊은 층에서 패션처럼 번져나갔다. 2007년 방영된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흥행 성공은 카페와 바리스타 문화의 유행에 더욱 불을 지폈다. 이후 캡슐 커피머신이 등장하면서 회사 다과에서 빠지지 않던 커피믹스 스틱은 커피머신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동서식품의 맥심으로선 2010년 경쟁사의 카제인나트륨과 인산염 마케팅도 위협적이었다. 경쟁사가 화학적 합성 성분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고 광고하며 동서식품을 깎아내렸기 때문이었다. 해당 업체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동서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오해가 쌓인 후였다. 이 사건은 동서식품의 시장 점유율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전체 커피믹스 시장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논란이 확대되는 동안 커피에 부적합한 화학물질과 설탕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변화된 소비자 입맛에 맞는 제품군을 새로 출시하고 고급화 전략을 시도했다. 설탕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에 대응해 설탕을 줄이고 자일리톨ㆍ벌꿀을 넣은 '맥심 모카골드 S'와 칼로리를 줄인 '맥심 1/2 칼로리'를 출시했다. 원두커피 붐이 일자 2011년에는 새로운 수익원으로 인스턴트 원두커피 '카누'를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커피믹스가 출시된 지 약 40년이 지났다. 오랜 노력 끝에 동서식품의 맥심 커피믹스는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의 1등 자리가 쉽게 바뀔 것 같진 않다.

※ 비하인드 스토리 ※

한국에서 일한 동남아인이 고향에 돌아갈 때 사 가는 기념품 1위가 커피믹스일 정도로 커피믹스는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은 제품이다. 실제로 한 여행사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맛있는 한국 차로 전체의 53%가 커피믹스를 꼽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동서식품 맥심은 국내에서만 판매가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이채영 기자 chylee99@foodnmed.com (저작권 ⓒ ‘당신의 웰빙코치’ 데일리 푸드앤메드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푸드앤메드 , #이채영, #커피, #맥심, #동서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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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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