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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서 일어난 여성행진
 워싱턴 DC에서 일어난 여성행진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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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500만, 전 세계인이 하나의 행사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바로 얼마 전 개최된 '여성 행진(Women's March)' 이야기다. 그야말로 온 지구를 들썩였다 할 이 거대한 행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바로 다음날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이 행사에 주목한 국내 언론들은 '트럼프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시위'라고 이 행진을 명명했다. 물론 이 행진의 큰 계기 중 하나가 트럼프의 당선이었으며 그가 지난 시간 여성 혐오적 언사를 늘어 놓았고, 여성의 권리에 명백히 위태로운 정책을 약속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신 보도가 그랬던 것처럼, 이 행진의 의의를 단지 '트럼프 반대'에만 놓는 것은 다소 협소한 시각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행사는 보다 폭넓은 여성주의 정치의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차별을 질문하는 데서 차이를 탐구하기까지 나아간 여성주의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은 각자의 차이가 아니다. 그 차이를 인식하고, 수용하고, 축복하지 못하는 무능함이다." - 여성 행진 홈페이지에 인용된 오드리 로드의 말

많은 경우 여성주의는 사회의 새로운 바람처럼 여겨지며 때문에 역사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과 달리 페미니즘도 나름의 계보가 있었고 변화의 흐름이 존재했다.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역사 속에 등장했지만, 여성들이 하나의 입장을 가지고 뭉쳐 가시화 된 첫 사례는 여성 참정권 운동일 것이다.

이 시기에는 민주주의와 만민 평등을 기치로 한 국가들이 수립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공간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권리를 지니지도 대우를 받지도 못함이 드러났다. 때문에 이 시기 여성 운동은 여성이 국민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는 데 집중했고 관련한 저서들을 남겼다.

지난해 6월에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지난해 6월에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 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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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정치권 부여가 모든 차별을 종식시킬 리는 만무했다. 참정권 쟁취 이후 잠시 잠잠했던 여성주의적 목소리는 1960년대 서구권에서 새로운 물결과 함께 부상한다. 이들은 투표권이 여성에게 부여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국가는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제도적 차별이 존재함을 지적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일상을 포함한 전 사회와 문화 속에 여성을 부차적이며 종속된 존재로 만들고, 그리하여 취약한 계층으로 만드는 성 정치가 작동함을 드러냈다. 이 시기 페미니즘은 여성 전반을 대상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 억압을 폭로하고 그것에 저항했다. 공/사 영역의 젠더화된 분리와 성폭력과 인신 매매, 포르노그래피 등 다양한 이슈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 시기 여성주의가 일구어낸 성과는 눈이 부실 정도지만 비판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일 여성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차별의 대상이 될 때, 그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이 동일한 억압을 겪느냐는 질문이 대두된 것이다. 그리고 도출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성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계급, 종교, 인종,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등을 지니는가에 따라 놓인 상황은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여성주의는 양성(兩性)의 문제를 넘어선다. 페미니즘은 어떻게 사회가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분할하고, 어떤 필요에 의해 전자를 종속적인 것으로 후자를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냈는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사한 기제를 통해 서구가 비서구를, 이성애가 비이성애를 종속시켰음을 드러내고, 또 그 집단 내부의 여성들이 어떠한 중층의 억압을 겪는가를 이야기했다.

여성주의 정치가 실현된 '여성 행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여성행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여성행진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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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작업이 도출해낸 결과가 하나의 단일하고 단순한 권력 기제가 전 사회적인 영향력을 펼쳐 소수자 차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니었다. 권력들은 여러 공간에 분산되어 있었으며 작동에 있어 차별점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만약 여성이,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비백인이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 중층의 억압을 겪는다면 차이를 인정함과 동시에 연대할 조건은 충분하다. 정리에 있어 누락과 비약이 있었지만 나는 이것이 지금의 여성주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번 여성 행진이 그런 정치가 실현된 장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성 행진의 주최측은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목표를 설명하며 지난 선거에서 '우리'는 모욕 당하고 위협을 받았으며 악마화되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 '우리'란 이민자,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 성소수자, 미국 선주민, 흑인과 동양인, 장애인, 성폭력 피해 생존자임을 명백히 했다.

또한 이들은 다양성으로 결집해 절대 자신들이 무시할 만한 숫자가 아님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이렇게 모인 거대한 우리들 중 하나를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방어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세력화를 통해 정치적 힘을 발휘할 것과 동시에, 이를 동질적 집단화가 아닌 차이를 경유한 연대로 추구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 같은 행진의 비전은 참여한 유명 인사들의 연설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행사의 명예 회장을 맡은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 행진의 힘이 깊은 다양성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며 '우리를 분열시키려고 들지말라',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 서열화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권운동가인 안젤라 데이비스는 이 행사가 치명적인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주의의 약속을 대표함과 동시에 포괄적이고 교차적인 페미니즘이 우리 모두를 이슬람 혐오, 반 유대주의, 여성 혐오, 자본 착취에 대항토록 결집시켰다고 연설했다. 보다 간결하게 마돈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혁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항을 통해 여성으로서 이 억압의 시대를 거부하는 거예요. 단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곳에서요. 단지 누군가 특별하게 다른 것이 범죄로 여겨질 곳에서요."

한국 사회에 남겨진 과제

21일 강남역에서 진행된 '세계 여성 공동행진'의 참가자가 "Don't grab me by the pussy" 피켓을 들고 있다.
 21일 강남역에서 진행된 '세계 여성 공동행진'의 참가자가 "Don't grab me by the pussy" 피켓을 들고 있다.
ⓒ 이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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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번 여성 행진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트럼프에 반대하거나 그를 지지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시위가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의 시대와 그것의 도래가 가능케한 힘에 의해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났고 억압받았으며, 큰 위험에 노출되게 된 이들이 연대를 통해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한 행사였다.

그리고 그 행진의 이름이 '여성 행진'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처음에는 차별을 확인했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 차이로 규정되고 어떻게 차별로 구성되었나를 인지하고, 그 기제가 어떻게 사회 각 공간에 퍼져 다양한 억압들을 만들어 냈는지를 드러낸 여성주의의 역사가 있었다. 물론 이런 식의 연대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 무엇보다 거리에서 전 세계적인 결집이 이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이 행진이 드러낸 정치적 도전이 미국만의 일이 아님을 언급하고 싶다. 한국 역시도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큰 정치적 격변이 다가올 것임은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잇따른 정치 인사들의 여성혐오적 행태, 특히 한 언론사가 실시한 정책 설문에서 그 어떤 대선 주자도 지난해 주요한 이슈였던 '임신중단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았음을 볼 때 정치적 의제 속에 얼마나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는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대하고 모이고 세력화를 해야할까. 나는 이번 여성 행진의 의의가 이 질문에 대한 모종의 답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태그:#여성 행진, #여성주의, #페미니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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