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잘 돼 갑니다>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 풍자 영화로 꼽힌다.

영화 <잘 돼 갑니다>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 풍자 영화로 꼽힌다. ⓒ 한국영상자료원


1968년 제작한 조긍하 감독의 <잘 돼 갑니다>는 같은 해 만들어진 이만희 감독 <휴일>과 함께 지금까지도 필름이 남아있지만, 정작 당시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비운의 영화로 꼽힌다. 동아방송 라디오 드라마 <잘 돼 갑니다>(1967)를 영화화한 <잘 돼 갑니다>는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승만 집권 시절 경무대에 출입한 이발사의 시선으로 이승만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만 해도 별문제 없이 방송에 나갔던 <잘 돼 갑니다>는 개봉을 앞둔 하루 전 갑자기 검열 당국에 의해 필름을 압수당하고 상영을 금지당했다. 영화 제작자 집안 또한 풍비박산을 면하지 못했다. 결국, 영화는 제작 20년 만인 1988년에서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tbs TV는 영화를 제작한 고 김상윤 유족의 요청으로 지난 20일 <잘 돼 갑니다>를 특선영화로 상영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한국 최초의 정치풍자 영화'로 소개하였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이후 이승만의 하야를 다룬 영화는 이승만과 사실상 국정을 주물렀던 이기붕, 박마리아 부부. 그들의 정적이었던 조병옥, 이승만과 이기붕을 도와 부정선거를 주도했던 최인규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승만과 닮아서 캐스팅되었던 신인 최용한을 제외하곤, 김지미, 김희갑, 박노식, 허장강, 남정임, 주증녀 등 당대 인기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캐스팅도 눈에 띈다.

박정희 정권은 왜 이 영화를 탄압했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 과정을 풍자한 이 영화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 과정을 풍자한 이 영화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다. ⓒ 한국영상자료원


세상 물정에 어두운 팔순 노인 대신 실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와 그녀의 지령을 받은(?)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다. 영화 방영 전 tbs TV 측의 소개에 따르면, 극 중 김지미가 맡은 박마리아는 현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이자 실제 국정을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을 떠올리게 한다. <잘 돼 갑니다>를 제작한 고 김상윤 유족 측이 영화 방영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도 영화 내용이 현실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회 비판 영화를 쉬이 허락하지 않았던 박정희 정권 시절임을 고려해야 하지만, '정치풍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심심하게 흘러가는 감이 없지 않다. 이승만을 인정 많고 자애로운 어르신으로, 정적의 죽음에 진심으로 비통해하는 이기붕, 권력욕에 부패한 부모로 인해 고뇌하는 이기붕의 두 아들 등 한국 현대사에서 논란 많은 인물을 지극히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영화는 정치영화가 아니라 신파에 가깝다.

이승만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잘 돼 갑니다"라는 말로 그를 현혹한 주변 인물들과 그들의 몰락을 비교적 소상히 그려내고자 했음에도, 영화가 심심하게 흘러간 이유는 이미 제작단계에서 수차례의 검열을 통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들이 대거 수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박정희 장기 집권이 가속화되어가면서 영화 검열 제도도 강화되었는데, 시나리오 제작단계에서부터 검열 당국의 심사를 받고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몇 차례의 '문제없음' 확인을 받아야 비로소 상영할 수 있었다.

1967년 말부터 제작에 들어간 <잘 돼 갑니다> 또한 1962년 제정한 영화법에 따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검열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개봉 직전 필름압수에 상영금지까지 당해야 했다. 하지만 1968년에는 <잘 돼 갑니다> 뿐만 아니라 <휴일> 또한 검열 당국의 요구대로 영화를 수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영을 포기해야 했다. <휴일>은 <잘 돼 갑니다>처럼 필름이 압수당했다는 이야기는 딱히 전혀 지지 않고 있지만,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 창고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만희 작품목록에도 볼 수 없었던 영화였다.

짐작건대 이미 수많은 검열을 통해 얌전하게 이승만 정권 붕괴를 그렸던 <잘 돼 갑니다>가 필름 압수조치까지 당한 것은 4·19 혁명과 같은 시민 혁명을 통해 독재 정권이 붕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1967년 재선 이후 장기 집권을 위한 여러 단계를 밟아나가던 박정희 정권은 그 당시에도 수많은 국민의 반발에 봉착해있었고, 제2의 4·19 혁명을 막기 위해 그들이 내린 특별 조치는 시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들을 일찌감치 봉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은 영화 검열 강화를 통해 정권이 추구하는 조국 근대화 논리에 배치되거나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보이면 아예 싹부터 잘라 놓았다. 대신 <팔도강산>처럼 박정희 정권을 대놓고 찬양하거나 반공정신이 담긴 영화는 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오발탄> <하녀> 등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많았던 반면, 박정희 장기 집권 태세 이후 한국 영화가 작품성, 완성도 면에서 완전히 몰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48년 만에 다시 빛을 본 필름

일찌감치 검열을 피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 대신, 이승만과 이기붕, 이기붕의 두 아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런데도 이승만처럼 시민 혁명을 통해 정권이 무너질까 두려워했던 이들에 의해 상영조차 하지 못했던 <잘 돼 갑니다>는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2016년 TV 채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1960년 4·19 혁명 당시 이야기를 다룬 <잘 돼 갑니다>는 그 영화 상영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권력자의 딸과 그녀의 비선 실세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래도 영화 속의 이승만은 수많은 시민이 자신의 하야를 원하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고 혁명이 일어난 지 7일 만에 '하야'를 선언했지만, 2016년의 박근혜는 두 달 넘게 수백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들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잘 돼 갑니다> 필름을 압수당한 이후 오랫동안 고초를 치러야 했던 유족들이 영화의 TV 방영을 간곡히 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정권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필름을 압수하고 개봉까지 하지 못하게 했던 박정희 정권과 정권에 위협적인 영화(<다이빙벨>)를 상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국제적으로 높은 명성을 쌓고 있던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그만두게 했던 박근혜 정권.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얼룩진 독재 정권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던 그 대가를 우리는 똑똑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영화 <잘 돼 갑니다> 포스터. <다이빙벨>에 이어 이런 영화 상영을 결정한 tbs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 <잘 돼 갑니다> 포스터. <다이빙벨>에 이어 이런 영화 상영을 결정한 tbs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한국영상자료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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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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