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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포장
 두부 포장
ⓒ 이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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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여자 두부"

마트에 반찬거리를 사러 가서 매대에서 이 상품을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필자는 별 생각 없이 이 상품을 장바구니나 카트에 넣은 후 계산대로 향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상품의 사진을 가까운 지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보았다.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글쓴이는 이런 광고가 일으키는 마음의 부대낌을 언급하며 우리가 살아온 환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불행히도 우리들은 젠더 인식의 측면에서 미세먼지 '아주 나쁨'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간다' 고 징징거리는 님들에게 이것을 말로 글로 가르쳐서 납득시켜야 하는 매우 피곤하고 비효율적인 위치에 있다."

필자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간다'고 징징거리는 님들에 포함된다. 페미니스트인 아내와 오랜 대화를 통해 약간은 개조된 의식을 가지게 된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필자는 분명히 '왜 저게 불편하게 하는거야?'라 물으며 글쓴이를 또다시 피곤함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이런 피곤한 물음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까지는 간신히 도달한 듯하다.

극단적인 가부장 문화가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우리 부모세대만큼은 아니지만 필자 역시 공고한 가부장적 체제가 당연한 환경에서 전형적인 남성으로 성장했다.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가부장 문화의 혜택을 맘껏 누리면서 말이다. 다행히 페미니스트인 아내를 통해 최근에서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아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접했던 것은 90년대 말 대학 교양 과목을 통해서였다. '여성학 개론'이라는 강의였고, 교재는 시몽느 드 보브아의 <제2의 성>이었다. 강의의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엔 나름의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꼈었던 것 같다. 부모세대와는 다른 관점으로 오랜 세월 차별받고 억압 상태에 있던 여성을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

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이런 류의 강의는 필자의 성 의식을 정상화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성차별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남성 우월 관점에 물든 발언이 튀어나와 주변 페미니스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고맙게도 그들은 필자의 왜곡된 관점을 교정해 주었다. 최근엔 메갈리아, 강남역 살인사건, 미스박 논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필자의 성 의식이 느리게나마 '정상화'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필자의 무의식적인 성차별적 발언에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강력한 비판을 가할 때는 솔직히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요즘엔 여성들이 꽤 대접받지 않나?', '이건 오히려 역차별 아니야?'라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남자라는 성별로, 가부장제라는 공기를 마시며,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필자가 누려왔던 것들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을 지금은 안다.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서야 깨달았다

여성은 여전히...
 여성은 여전히...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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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가정에선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모든 면에서 대접을 받았으며,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아무런 제약이나 사회적 장벽도 느끼지 못했다. 밤길을 다닐 때 무섭고 위협을 느낀다는 아내의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 생각하는 사회를 필자가 살아왔다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다.

그동안 페미니즘이 단순히 소외되었던 여성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운동 정도인 것으로만 알았다. 때론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 아닌가, 이제 남성을 아래에 두자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여성의 존재 이유가 종족 보존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성은 고질적인 성차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페이스북에 최근 '미스박' 논쟁에 대해 글을 쓰신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의 글에서 필자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을 발견했다.

"내가 차용하는 개념은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주장(feminism is the radical notion that women are people)'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페미니스트(feminist)'란 '생물학적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관한 것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성차별과 가부장제적 가치체제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며, 남성이라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당연히 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니라, 인종, 계층, 나이, 신체적 능력, 성적 성향 등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며 그 다양한 '소수자'들도 '인간'이라는 이해를 담고 있다.(강남순 교수)"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그 속도가 느릴 수는 있겠지만 페미니스트가 되어가기로 결심했다. 페미니즘을 말하는 글과 책의 도움을 구하며, 그리고 주변 페미니스트들과의 부딪치는 삶을 통해서.

강남순 교수가 <한국일보> 칼럼에서 썼던 것처럼 "여성에 대한 고질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이 사라져서 더 이상 '페미니스트'라는 언어가 필요 없을 때까지"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페미니즘, #성차별, #가부장제도, #페미니스트,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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